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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서 May 11. 2023

[외면일기] 2023. 05. 10


나는 시인지망생이다. 작년까지는 대체로 11월부터 공모 시작하는 신문사 신춘문예에만 의지했는데, 올해부터는 문예지 투고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3월 말에 'H' 출판사 문예지 신인상 공모에 응모하고, 오늘 'M' 출판사 신인상에 출품했다. 당장 다가오는 6월에도 큰 건이 있다.


요즘은 독립출판으로도 시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나는 기성시인들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여 신인을 가려내는 '등단'이라는 제도에 수 년간 천착하고 있다. 다른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 결국 기성 문단이 인정하는 메인 출판사를 통해 시집을 내야 독자들에게 닿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시를 그저 쓸 뿐이지, 편집부터 디자인, 유통까지 직접 공수를 들여 작업할 마음은 없다. 그럴 능력이 안 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독립매거진을 만들어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독립출판으로 자기 창작물을 내시는 분들 보면 그저 대단하게 느껴진다.)


원래는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오면, 신문사 두세 군데에 신춘문예 응모작을 제출하러 우체국에 방문하곤 했다. 연례행사였다. 올해는 겨울은 물론이고 시즌별로 들락거려야 할 판인데, 집 근처에는 우체국이 없어 골칫거리다. 그래서 보통 볼일이 있어 멀리 나간 김에 다른 동네 우체국에서 응모작을 부친다. 3월에는 이태원점을, 오늘은 연희동점을 이용했다. 두 곳 모두 친절했지만, 이태원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스테이플러가 당연히 우체국에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신춘문예 응모 N년 차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작품을 묶지 않은 것이다. 당황해서 두리번거렸지만, 버려진 클립도 찾을 수 없었다. 나의 난처한 기색을 발견한 것인지 한 직원분이 서류용 집게 작은 것을 그냥 주셨고 그덕에 무사히 제출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나의 상황을 살뜰하게 챙겨주신 직원분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응모작을 넣은 봉투에 선명하게 "신춘문예 '시 부문' 응모작"이라고 적혀 있으니 내 간절함을 모를 수가 없다. 그것을 볼 때마다 바쁘지 않다면 모두들 한 마디씩 얹어줬던 것 같다.


"빠른등기로 보내시는 게 낫겠죠?"

"주말이 껴 있는데 어쩌죠? 괜찮으시겠어요?"

"이거보다 글씨를 크게 적어야 '응모작'인 게 더 티날 거 같은데. 빨간펜 줄까요?"


음, 설레발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 시인이 된다면 수상소감에 우체국 직원분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꼭 남기리. 15년도부터 시작된, 나의 외로운 '지망생 라이프'에서 그들의 존재를 지울 순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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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면일기는 각자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사람, 동물, 사물 같은 외적인 세계로 눈 돌린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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