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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찰하는 보통여자 Apr 17. 2024

몸 사리지 않아도 별일 없다

몸 사리지 않아도 별일 없다. 


신혼 시절 어느 날 밤, 남편과 대중교통으로 중랑천이라는 곳에 간 적이 있다. 벚꽃이 활짝 필 무렵으로 기억한다. 생소한 동네였는데 무심코 검색해 가본 즉흥적 외출이었다. 꽃 구경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예고에 없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외진 곳이라 당장 비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급히 근처에서 킥보드를 찾아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를 찍었고, 그 사이 순식간에 거세진 비를 쫄딱 맞아가며 10분 넘게 킥보드를 탔다. 처음에는 비를 피해보고자 후드티에 딸린 모자도 주섬주섬 써봤지만 폭주하는 비 앞에서 별 의미는 없었다. 나와 남편은 슬슬 해탈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비를 즐기고 있었다. 순식간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이 사태가 그저 어이없어 실소와 함께 깔깔댔다. 꼬라지는 웃겼지만 재밌는 추억거리 하나 탄생한 듯 말이다. 비를 흠뻑 맞으며 킥보드로 탈 때 이상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분명 상황은 잘못된 것이 맞는데, 일어나선 안 될 일을 도리어 환영해 보는 일종의 해방감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된다. 과거 직장인 시절, 업무 특성상 외국인 임직원과 어딘가로 이동할 일이 있었다. 갑자기 비가 살짝 내렸을 거다. 나는 습관처럼 우산을 폈지만 외국인은 괜찮다며 아랑곳하지 않고 흔쾌히 비를 맞았다. (검색해 보면 외국에서 우산을 잘 안 쓰는 이유는 여러 추측이 있지만, 보통 귀찮거나 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유에서 오는 하나의 문화 차이인듯하다.) 

어제도 하원 한 애기와 스쿠터를 타고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놀이터 벤치에 사이좋게 앉아 같이 고구마 말랭이 먹방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는 한 엄마가 아들에게 미세먼지가 최악이니 얼른 집에 가자며 재촉하고 있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만 어차피 늦은 일이다. 먼지는 이미 들이킬 만큼 충분히 들이켰을 거다. 좀 더 들이키고 덜 들이키고의 차이일 뿐, 달라지는 게 있을까. 날이 어떻다 한들 나는 그 순간은 밖에서 애기와 뛰어놀고 싶었다. 작은 제약으로 굳이 몸 사리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반항심이었다. (그래도 애기는 나보다 소중하니 가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애기 마스크를 씌워주었다.) 이날 밤 뿌린 대로 거두듯 목이 칼칼해져 왔지만 즐거웠던 외출에 목 아픔은 까짓것 대수롭지 않았다. 


열심히 몸 사리지 않아도 된다. 미세먼지든, 비든, 내 인생에 어떤 새로운 시도이든, 그게 뭐든 간에 대수롭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아니 대부분의 경우 몸 사리지 않으면 생각보다 별거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별일 아니었다는 깨달음 그 이상으로 그간 느끼지 못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비가 와도 그래봤자 비다. 비 맞아도 집에 와서 샤워하는 일이 추가되는 것 말고 큰일 날 것은 없다. 나를 보호하는 일을 포기함에서 오는 해탈감이 뜻밖의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을 안다면, 크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정작 대수롭지 않음을 알게 된다면, 일상은 조금 더 재밌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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