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순간은 지켜져야 한다.
최근에 '나 혼자 산다' 프로에서 이종원 배우 편을 봤다. 모르는 사람인지라 생소했다. 그의 일상은 소위 말해 낭만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굳이 로브를 걸쳤고, LP 판으로 노래를 틀었으며, 필름 카메라로 출사를 나가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종이 한 장 차이인 허세와 낭만 그 중간에서 어떤 느낌으로 정의 내려야 할지 모르던 중, 나는 결국 낭만이라 결론 내렸다. 단골 LP 음반 가게에서 익숙한 듯 사장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왔다. 서로 푹 빠져있는 공통분모가 같은 이 둘은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를 직접 들어보기도 했다. 얼굴에는 한없이 해맑음이 가득했다. 구매한 여럿 LP 음반을 챙겨 취미가 같은 절친의 집으로 향했다. 지인과 저녁을 차려먹은 후, 짱짱한 스피커가 자리한 지하실로 내려가 경건하게 소파에 나란히 앉는다. 둘은 음악 감상실이라는 공간에서 새로 구매해온 LP 음반을 틀었고, 노래가 흐르자 찐으로 감탄하며 음악에 대한 활발한 평론을 나눈다.
문득 나의 주된 낭만도 떠올려본다. 나도 음악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특정 장르의 음악을 들을 때 세상은 순식간에 달리 보인다. 내 취향으로 가득 꾸며진 공간 속에 머무는 것 또한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늘 집을 꾸미는 것에 진심이었다. 집 외에도 내 스타일의 실내 공간 속에 있을 때면 마음이 차는 자극을 느끼곤 한다. 하물며 공간과 음악 둘을 섞는 건 최고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내 취향의 공간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어떤 일에 전념하는 것, 그 순간이 내겐 낭만의 정의가 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나만의 낭만은 한동안 등한시되었다. 애기가 어지른 잔해를 수습이라도 제대로 하면 다행인, 살림을 미루지만 않아도 중간은 가는 그런 일상. 언제부턴가 낭만적 순간은 사치로 변질되었으며 마음마저 어쩐지 투박해진 것만 같다.
낭만이 필요할 때가 있다. 푸석한 일상을 살다가도 간혹 기분이 내켜 의도적으로 낭만을 연출할 때가 있다. 취향을 가득 넣은 공간을 다시 실감하기 위해 난잡해진 공간을 청소해 보기도 하며, 음악도 평소보다 정성스럽게 선별해 틀어보는 날. 이런 연출은 늘 성공적이다. 망각해왔던 낭만의 감정을 즉시 불러일으키는데 부족함이 없다. 괜스레 낭만적 느낌에 흠뻑 빠져보는 건 단순히 좋다는 기분을 넘어선다. 알맞은 공간과 노래 덕분에 생뚱맞게도 내 앞날이 더 밝게 느껴지기도 한다. 현재의 잡스러운 걱정은 사라지게 하는 힘이 있는가 하면, 눈에 담기는 장면에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필터가 씌인 듯하다. 가만 생각하니 낭만은 전혀 궁상맞지 않다. 티비에서 본 그 배우의 행복이 깃든 모습이 여과 없이 말해주듯, 어느 누군가에게는 낭만이 주는 원동력으로 일상이 작동되기도 한다. 무엇에 그리 정신 팔렸던 건지 낭만이 주는 묘미를 까맣게 잊은 채 살았다. 내일부터는 슬슬 낭만적 모드를 작동시켜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