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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찰하는 보통여자 Apr 25. 2024

여유를 다시 정의하고 싶다

여유를 다시 정의하고 싶다.



같은 동네에 사는 지인과의 점심 약속이 있었다. 애기 어린이집 등원 후 집에 들렀다 나올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다소 번거로운 동선이었다. 약속시간까지 잠시 뜨는 시간을 차라리 근처 카페에서 때우기로 해본다. 



이 미니멀함이 익숙지 않지만 싫지만은 않다. 빈손으로 어떤 목적도 없이 카페를 간 적이 있었나 싶다. 카페를 갈 이유는 늘 노트북을 챙겨 무언가를 하기 위함이었다. 커피 한 잔 시켜 기다리고 있자니 비가 와 칙칙하던 바깥은 때마침 맑아졌다. 완벽한 타이밍에 맞게 하늘은 참 깨끗하기도 했다. 챙겨 나온 소지품이라곤 지갑과 핸드폰, 립밤이 다였다. 읽을 책이라도 챙겨 나왔으면 나았을까 싶은 무의식적 생각이 튀어나오지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이놈의 습관적 강박을 지긋이 눌러본다. 집중할 것 없는 빈 데스크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는 색다르기만 했다. 순간 인터넷에서 본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오늘 스타벅스에서 어떤 남자를 봤는데, 폰도 없고 태블릿도 없고 노트북도 없이 그냥 자리에 앉아서 커피만 마시고 있었다. 싸이코패스 같았다.' 웃프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되려 낯설게만 느껴질 만큼, 여유는 등한시됨이 당연시된 것만 같다. 



진짜인 여유로움을 느낀다. 여유로움보다 더 여유로운 것만 같아 여어유우우롭다는 표현이 아니고서야 달리 생각나지 않는다. 마치 여유에도 단계가 있는 듯, 이 시간은 평소의 것보다 한없이 너그러웠다. 그간 여유라 칭했던 시간은 과연 내게 여유였을까? 가만 들여다보면 뇌는 무언가를 위해 가동되고 있는 상태인 포장된 여유는 아니었을까. 별생각 없이 앉아 바깥을 넋놓고 쳐다보고, 커피를 홀짝이는 이 30여분의 시간은 진실한 포근함이었다. 나에게 있어 여유가 무엇인지 다시 정의되는 것 같이 말이다. 여유를 내 것으로 체화하는 것에도 숙련이 필요한가 보다. 요즘은 대부분의 날들이 편안하다. 진짜 내 것의 여유를 즐긴다는 건 무엇인지 감이 잡혀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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