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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존재 Nov 26. 2015

내가 잘 하는 게 있을까?

오늘 함께 일하는 똘똘한 후배와 함께 퇴근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옆 팀의 팀장의 화려한 스펙이나 대기업 출신 다른 회사의 팀장 스펙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했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즉슨, 나의 미천한 스펙- 중소기업만 전전한 경력, 딸리는 외국어 능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이는 팀원들에게 뭔가 다른 팀에가서 팀장을 자랑할 만한 요소가 있거나 스스로 좀 더 일을 할 때 불안감을 종식하고 잘 배우고 있는 것 맞다라는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이야기인데... 뭔가 한 마디는 똑 부러지게 말해줘야 할텐데...


내가 잘 하는 게 뭘까?


조물주가 누구나 잘 하는 능력 하나는 준다고 하는 데 정말 난 내가 뭘 잘 하는 지 모를 때가 더 많다. 학창시절에는 꽤 내가 창의적이고 꿈이 많고 다재다능하다는 자뻑에 살 때가 많았는데, 차라리 주제 모르고 자뻑을 할 때가 행복지수는 좀 더 높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대학 때 함께 교외 활동을 했던 친구들은 지금 신문에서나 만나볼 사람들도 수두룩 한데... 나는 늘 비슷한 자리만 비슷한 능력만으로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 한심스러울 때도 많다. 비슷한 분야에서 일을 7년 정도 했으면 뭔가 득도한 듯 보이거나 사람들을 많이 사귀어 놓아 라인이라도 탔어야 했는데, 이도 저도 아니다.


회사생활을 할 때도 내가 생각하는 나는 곧 죽어도 책임감은 있어서 일은 열심히 하는 데 뭐 하나 뛰어나지 못하고 자기 셀링 능력이 많이 부족하고 무뚝뚝한 성격에 늘 계륵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일이 잘 되거나 시간이 흐르면 하나 둘 씩 선배 후배들은 소이 남들이 부러워 하는 대기업에 가거나 연봉을 뻥튀기 해서 이직을 하곤 했다. 너무 부러워서 더욱 자기계발에 정진할라치면 그들의 자리를 메우느라 야근하며 위장이 상하는 건 자주 내 몫이 될 때도 있었다. 누군가도 또 나의 이직 때문에 이런 일들을 했을 것이다. 바로 나같은, 보통의 존재들이 말이다.


사원이 되면 대리가 되면 좀 더 알고 있겠지 했으나, 대리가 되니 사원이 나만큼 하는 것 같고 과장이 좀 더 내공이 있는 것 같아 좀 더 시간 흐르면 나을 것 같았고, 과장이 되니 팀장이 되어야 나을 것 같고, 팀장이 되니... 이제 뭐가 되도 그저 그러려니 싶다. 그저 하루하루 내가 가진 역량이 회사에 도움이 되기를 관세음보살,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아멘, 고객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옴마니밤메움.. 기도하 면서 그저 앞으로의 모든 시간은 운명에 맡기고 출근할 뿐이다.


주니어 때는 밤낮없이 일이 안 될까봐 전전긍긍하며 노트북 싸매고 살았던 나에게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나 선배들은 이 모든 일은 너로 인해 안되고 있다는 말을 365일 중에 300일 넘게 하더니, 잘 되서 떠날 때는 너 때문에 내가 성과를 잘 낼 수 있었고 너의 가장 큰 강점은 추진력과 책임감이다라는 말을 강조하거나,


팀장이 되었을 때 역시 못나 보이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남몰래 발버둥 치지만, 함께 일 하는 후배들에게는 나쁘지는 않은데 늘 어딘가 아쉽고 모자라 보이는 선배랑 일하느라 배울 게 없다는 둥, 힘들다고 매일 뒷담화 곡소리를 하는 말에 상처도 많이 주더니 막상 떠날 때가 되면, 나에게 많이 배워서 정말 잘 풀렸다며 굳이 연락을 안 해도 되는 데 자꾸만 연락해서 종종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내 강점은 추진력? 책인감? 너무 뻔하다. 잘 가르쳐 준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잘 못해도 잘 뒤집어 써 준다? 멘트가 없어 뵌다...


후배와 가는 길이 달라 헤어져야 할 곳까지 다다라서야 나도 모르게 무심결에 툭, 아주 어이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똘똘씨, 저와 일하면 사람들이 모두 잘 됩니다.
 (저 빼고요..)
그 이유는 다 달라서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똘똘씨도 잘 될 겁니다.
 

후배는 아 네... 하며 알 수 없는 대답을 한 뒤 내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집을 향해 걸어갔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후련했다. 정말 내가 잘 하는 것을 찾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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