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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Apr 26. 2017

그리고, 아테네 / Ep. 01

[ 숙소 가는 길 ]


And we take them out
and show ourselves
when everyone has gone

그리고 모든 이들이 떠나가면
우리는 그 모습을 드러내죠.

Billy Joel, < The stranger >








Take it easy

- 그건 나의 바람이고



대낮의 길가



공항에 들어서니 이전의 국제공항들과는 사뭇 다른 규모다. 어딘지 모르게 시골의 시외버스터미널에 와있는 듯한 느낌은 약간 퀴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재빠르게 공항에서 나와 X.95버스 티켓부스로 이동한다. 맞게 가는지 확인하고 싶어 정류소에 나온 경로들을 보고 있자니 나는 까막눈이었고 숫자도(영어로만) 말할 수 있었지만 이걸 매표소 직원이 알아들을까 걱정도 되었다. 일단 호텔과 인접한 유명지인 "신타그마!"를 티켓부스에서 외쳤더니 개떡같은 예의에 찰떡같이 반응하고 X.95버스티켓을 주는 매표소 직원이 신통방통했다.


버스를 타서 펀칭을 하고나니 한시름 놓았다. 혹시 버스에 소매치기가 있진 않을지 사람들이 승하차 할 때마다 걱정이 되었지만 가방도 짐도 철통수비 중인 내가 할 걱정은 아니지 않나 싶었다. 누가봐도 아테네에서 나는 낯선 곳에 똑 떨어진 쫄보여행자였다. 어느 것 하나 힘이 들어가지 않은걸 찾기 힘들 정도로 바짝 긴장한 이 초보여행자의 사지와는 별도로 눈은 정신없이 창 밖의 아테네 풍경을 살폈다. 건조한 건물들이 듬성듬성 있었고 조명도 간간히있는 길거리엔 행인이 별로 없었다. 나와 아테네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긴장 속에 진행되고 있었다.



신타그마 광장의 벽면 분수대



신타그마 광장에 도착하여 호텔 셔틀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신타그마광장 주변은 아테네를 대표하는 번화가다. 흡사 명동같은 이 플라카지구에서 이렇다 할 이정표도 없이 셔틀버스 정류장을 사진으로만 찾는다는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게다가 한 밤의 신타그마는 우범지역이니 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는 싶고 뜻대로는 안되고 패닉상태였다.



플라카지구



그래, 언제까지 이럴 순 없으니 택시를 도전해보자는데 생각이 닿을 즈음 영어가 안통하는 택시기사가 태반인 이곳에서 어떻게 'Intercontinental Hotel'을 말할 것인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냥 목적지만 말하면 아테네 택시 기사들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걸 알고 빙빙 길을 돌아 갈 수도 있고 여차하면 납치되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는 일이니 여간 혼란스러운게 아니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내 정신 속에 느낌표 딱 던지는 그곳은 바로 신타그마광장 인근의 약국이었다. 왠지 약사라면 영어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혼란한 정신상태도 이 곳에서 치료될것 같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 그녀(약사)를 믿어보자.


그녀에게 영어를 할 수 있냐고 묻자 단번에 물론이란다. 아, 됐다. 내가 호텔을 가야하는데 정보가 없다는 것과 그리스어를 못한다는 이야기를 어렵사리 꺼냈더니 그녀가 컴퓨터로 호텔 주소를 찾아 그리스어로 옮겨 써줬다. 너무나 고마운 그녀의 약국이 늘 번창하길 빈다.


그녀가 적어준 주소를 소중히 집어들고 쭈뼛거리며택시기사에게 보여줬다. 택시기사는 나와 테디베어의 뒷덜미를 번갈아 보았다. 아, 약간 모자라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던 나는 냉큼 인터콘티넨탈을 아냐 물었고 택시기사의 답변 '인떠꽁티넨딸'로 갈 수 있었다.







삐삐와 10유로

- 삐삐란 무엇입니까?



택시기사와 숙소로 가는 길, 택시기사가 동승한 테디베어를 보며 다짜고짜 "삐삐!"를 외친다. 뭐? 말괄량이삐삐 그거 말하는건가? 귀엽다는 건가? 도통 알 수 없는 그의 "삐삐"를 듣고 있자니 물어보고 싶은데 영어로 말해봤자 알아듣지도 못할거고..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좋은 뜻이라면 택시기사 기분도 좋으라고 같이 "삐삐!"라 외쳤다. 그렇게 삐삐가 오고가는 택시를 타고 얼마나 갔을까, 호텔이 눈이 들어왔다. 아, 감사하다. 이 택시기사가 납치범이 아님에 말이다.


그런데 이 택시기사 하는 행동이 어딘가 어색했다. 보통 호텔로 가는 택시들은 호텔 정문 바로 앞에서 세워주건만 이상하리만치 호텔 정문에서 멀찍이 떨어져 차를 정차하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나 내리냐?'는 눈빛을 보내자, 재빨리 내려 내 짐들을 내려준다. 일단 내리라해서 내리긴 했는데 요금이 얼만지도 몰라서 물어봤더니 10유로란다. 재촉하는 모양새가 영 찜찜했지만 일단 돈을 주고 보냈다.





아, 오래 걸렸다. 호텔에 들어오니 온몸에 바짝 들어가있던 긴장이 탁 풀렸다. 마중나온 남편이 내 모습을 보고서 크게 웃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내 너덜한 모습에서 이미 스캔을 끝낸 것이 분명했다. 어디서 업둥이(테디베어)는 들고 나타나 백팩과 트렁크와 함께 로비에 널부러진 나의 모습은 내가 봐도 고생한 티가 났다. 또 남편은 내가 이렇게 아테네까지 온 것 자체를 신기해하기도 했다. 하긴, 둘이 함께 여행을 다닌 적은 많았어도 아내의 단독플레이는 본 적이 없었으니 그럴 만 했다.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보내놓고 얼마나 걱정을 했을까. 말하지 않아도 안다.


호텔방에서 남편한테 약사와 택시기사, 삐삐, 10유로 등의 에피소드들을 주아악 쏟아냈다. 남편은 '10유로까지 안받을 것 같은데 사기같다.', '삐삐가 좋은 소린 아닐 것이다.' 같이 신통하게 맞는 의견을 내놓았다. 어쨌든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 중 그가 너무 반갑다. 이 영어도 한국어도 안통하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말이 통하기만해도 정이 넘칠텐데 함께 사는 가족은 오죽할까.


남편과 대화를 나누며 짐을 정리하니 어느덧 잘 시간이다. 남편은 남편의 일정이 있으니 내일 나 혼자 아테네를 돌아다녀야 했다. 한바탕 시달리고 오니 계획이고 뭐고 일단 자고보자는 생각이 몰려왔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내일 호텔 스탭들에게 삐삐가 뭔지 물어봐야겠다. 갑자기 너무 궁금해졌으니까...

넓고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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