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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Apr 29. 2017

그리고, 아테네 / Ep. 02

[ Don't be panic ! ]


I'll find my way
If I can strong

Hercules OST,
 <Go To Distance>








나쁜 놈

- 걸리면 가만안둔다!



눈을 떴다. 여행지에서 눈을 뜰 때 이 기분이 참 오묘하다. 내 집이 아닌 곳에서 느끼는 편안함 때문일 것이다. 남편을 전장(일터)에 보내놓고 오늘은 어디로 가볼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아, 오늘은 또 어떻게 내 가방과 주머니를 지킨담. 일단 그 전에 비즈니스 라운지에 배나 채우러 가볼까. 그리고 물어볼까, 삐삐의 의미를...



한가운데 우뚝솟은 아크로폴리스

비즈니스 라운지에 들어가 음식을 적당히 먹고 테라스로 보이는 아크로폴리스를 감상한다. 아, 그래 오늘은 저기를 한 번 가보는 것도 좋겠다. 런던의 날씨와는 판이한 이 곳 아테네의 날씨는 쨍한 것이 매일 아침 내가 나갈 동기를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좋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아테네의 치안만 생각하면 숙소에서 나가는게 영 내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여행와서 호텔 라운지 음식만 축내고 있으니 이런 쫄보가 또 어디있을까. 30년 동안 끌어모은 나의 극기는 다 어디로 간건지, 어쩌면 애초부터 그런게 있긴 했는지 의문을 가지며 객실로 돌아가는 길에 호텔 스탭과 인사를 했다. 아, 그래. 영어가 통하지. 물어보자.


"May I ask you a question?"

"Sure, What is your question?"

"E...eum... What is the meaning of 삐삐?"

"What?"

"(안들리나...)삐삐! What is the meaning?"


순간 나는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정처없이 흔들리는 것을... 그녀 뒤에서 식사를 하고있는 비즈니스맨들도 흘끔 쳐다봤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봤다. 누가 나에게 그랬느냐는 것이다. 어제 택시기사가 그랬다고 하니 그녀가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그거, 안좋은 욕이야 ..."


아, 그래? 이 드라이버놈을 어쩐다. 나는 비집고 나오는 실소를 숨길 수 없었다. '삐삐'는 'Go to Toilet'이라는 의미의 욕이란다. 호텔과 계약되어있는 기사가 그랬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이야기 했다. 그건 아니었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한 뒤,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어제 10유로를 줬던 나의 택시비에 관한 것이었다.


"How much is fare fee from Syntagma to here?"

"Veeeeeeeeeeeeeeeery maximum 5 euros."


아, 그래? 어어어어어어엄청 많이 줘도 5유로라고? 아, 그래? 나 따블로 줬네? 웃음이 절로 났다. 어쩐지 아-무일도 없을리가 없지... 그래도 5유로 사기당한게 어디냐... 가방이고 뭐고 안털린게 어디냐... 생각했지만 왜 욕을하냐, 이 나쁜놈아. 우씨...욕한놈한테 돈도줬군.. 분하다.


생각해보니까 어제 열심히 '삐삐'를 주고 받았다. 택시기사도 적잖이 불쾌했겠군...심지어 내가 가가멜 닮은 그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열심히 '삐삐'를 외쳤으니 어쩌면 '아 이 친구 보통이 아닌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쩐지 어제 미터기도 안키고 달리더라... 이런 양아치가 있나... 그래, 한국이나 그리스나 택시라면 말이 달리든 개가 달리든 뭐가 앞에서 달리고 있어야 하는거였다. 여행내공이 부족한 티가 여기서 난다.



도차ㅡ악



어쨌든 아침부터 상큼하게 진실을 밝히고나서 찜찜한 마음을 안고 객실로 돌아와 아크로폴리스에 갈 준비를 한다.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엔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인들이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것이다. 신전의 비례미와 규모가 대단하다고 하니 한번은 보고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진중권 교수의 <서양미술사>에서 이집트와 그리스의 비례론에 관해 비교해 놓은 글이 생각났다. 이집트는 전제군주의 나라였기 때문에 창작의 자유가 없었다. 그래서 예술가들도 '장인'에 가까웠던 반면, 민주주의를 구현한 그리스의 경우 예술가 개개인의 창의성이 존중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역동적이고 개성있는 작품들이 대거 탄생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곳이 원래 그런 곳이었다. 소매치기와 사기꾼들이 있기 이전에 서양인들의 뿌리가 여기 있었고 고대 문화의 산실이었건만 어쩌다 이런 곳이 되었을까.






고대로부터의 초대

- 아크로폴리스



아크로폴리스는 숙소에서 걸어갈만한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호텔에서 받은 지도를 하나 들고 가방을 앞으로 맨 뒤 바짝 긴장하며 걷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만약에 퍽치기가 날 친다면 가방이 있는 앞에서 칼을 대는 것보다 뒤에서 칼을 대는게 덜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럼 뒤로 가방을 멜까...근데 뒤로 가방을 매면 뒤에서 슥 가져가도 느낌이 없어서 눈치챌 수 없을 수도 있는데... 그럼 앞으로 멜까....'


노답인 이 쫄보본능에 맹구같이 앞으로 뒤로 번갈아가며 가방을 메고 걸어간다. 우습지만 나도 지키고 배낭도 지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한 삼십분쯤 걸어가니 아크로폴리스로 향하는 길이 나타난다. 여행기간 중 아테네의 유적지를 여기저기 돌아다닐 것이라면 5일 패스가 적당하다. 사실 나도 몰랐는데 앞에 있는 외국인들이 아크로폴리스 매표소에서 5일 패스를 주문하는 것을 흘끔 보고 나도 그걸로 달라고 했다. 이거면 아고라도 무료입장이었고 박물관도 무료입장이었다. 아직 아테네와 내외 중이라 거침없이 다닐 자신은 없었지만 왠지 아테네에 머무는 동안 5일 패스가 상대적으로 저렴할 것 같았다.


디오니소스 극장

그렇게 티켓을 끊고 아크로폴리스 안으로 들어와 관람을 시작했다. 가다보니 디오니소스 극장이 나온다. 풀이 듬성듬성 나있는 계단식 좌석 들이 촘촘히 극장 한가운데를 감싸고 있다. 디오니소스가 술의 신이니 흥오르면 극장에서 공연도 즐기고 했겠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상상력은 정말 뛰어나다. 신을 마치 인간처럼 대하는 것 부터가 파격적이다. 신이라면 모름지기 우리가 구별할 수 없는 무엇, 가령 빛으로 존재한다든지 바람으로 존재한다든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텐데도 말이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지나가며 웅장한 규모의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음악당이 보이는데 현재도 7~9월이 되면 주말에 오페라나 연극 등의 공연이 진행된다고 하니 대단하다. 요즘에도 공연을 한다는 것은 현재에도 손색이 없는 음향시설이 갖춰져 있음을 의미한다. 약 2000년 전부터 이미 이런 기술을 갖춰뒀다는 것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계속 올라가본다. 니케의 신전 앞에서 잠깐 쉬어가기로 한다. 이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압권이다. 탁 트인 시야에 숨을 한번 고르며 신전 앞 계단을 유심히 살폈다.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깎아서 조립할 수 있단 말인가.


정교한 석재들의 조합

'니케의 신전'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건축되어 있다. 이오니아양식은 기둥과 지붕이 맞닿는 부분에 양머리처럼 돌돌 말린 조형물이 특징이다. 기둥들도 신들의 특징을 따라간다. 승리의 여신 '니케 신전'의 기둥은 곡선미가 있는 이오니아식이지만 전쟁의여신 아테나의 신전인 '파르테논 신전'은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도리아식이다. 그리고 그 옆에 알 수 없는 '에레크테이온 신전'을 보면 여섯명의 소녀가 기둥이 되어 지붕을 떠 받들고 있다. 아크로폴리스 내에서도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건축물들을 보고 있으니 예술에 있어서 정치적 제약이 없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실감한다.

니케의 신전 입구
에레크테이온 신전


파르테논 신전, 오스만제국군이 화약창고로 사용하다 베네치아의 공격을 받아 지붕 날려먹고 내부에 있던 볼만한 대부분의 조각들은 오스만제국의 영국대사였던 엘긴에 의해 영국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대영박물관에 가보면 파르테논 신전에 있어야 할 것들이 다 그 쪽에 가있다. 대영박물관에 가보면 가져가도 너무 가져갔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기둥뽑아가고 지붕가져가고 조각상가져가고 그랬으면 어느정도 돌려줬음 좋으련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과연 그리스에 돌려줬을 때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잘 지켜낼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살짝 남는 것이 사실이다.


파르테논신전

내가 갔을 당시엔 파르테논 신전의 복구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앞에 대형크레인과 지지대, 건축자재들이 널부러져있어 온전히 그 모습을 감상하긴 어려웠다. 그리스의 경제위기로 임금체불이 되는 경우도 많아 복구작업이 더 늦어지고 있다고 하니 언제 이 전체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파르테논 신전에서 드러나는 비례미와 건축술은 감탄할 만 하다. 그 중 하나는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들을 하늘로 연장시킨다고 할 때, 한 점에서 만나도록 안쪽으로 향하게 설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지었는지는 언덕 아래에서 바라봤을 때 알 수 있는데, 똑바로 짓게 되면 언덕아래에서 봤을 때 언덕의 굴곡과 건물의 바닥부분에 의해 신전-언덕 전체의 실루엣이 볼록한 형상을 띄게 되어 그것을 막기위해 고안한 방법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들은 파르테논 신전 외에도 조각상에도 이런 기법을 반영했는데, 거대한 석상을 지을 때도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상대적으로 작아보이는 얼굴 부분을 크게 만들어 시각적으로 왜곡되는 것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그 때 부터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비례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고대그리스인들의 발상이 대단하다.






유랑견과 유랑묘

- 어디서 밥을 그렇게 먹은거야?



잠이온다냥



신전들을 한참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고양이 한마리를 만난다. 여행을 하면서 알게됐는데 이 동네 개와 고양이들은 도통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 심지어 개 한마리는 그늘에서 사지를 쭉 뻗고 자고있고(죽은 줄 알았다.), 고양이들은 사람이 오건말건 볕을 받으며 끔뻑끔뻑 졸고있다. 그리고 이들은 유기견, 유기묘이면 마르고 불쌍해 보여야한다는 편견도 과감히 깨주었다. 거리 곳곳을 다니다보면 다 큰 진돗개처럼 거대한 녀석들이 눈길이 닿는 곳에 거의 있었다. 고양이도 뒷태가 푸근한게 개라해도 믿을 정도로 포실포실하게 살이쪘다. 여행 중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는 이 녀석들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건들지마라냥



신타그마광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셔틀버스 정류장을 찾는 데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이정도라면 나름 오늘의 여행은 선방한 것이었다. 어쩌면 내일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내일이 되어봐야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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