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숲 속 오두막은 동굴 같던 숲을 벌건 대낮보다 밝게 했다.
아이는 동생을 꼭 끌어안은 채 불길 속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눈물은 볼을 타고 길게 이어졌다.
이글거리는 불길은 피눈물인지 그냥 눈물인지 모르게 했다.
***
다음날 상습성폭행자가 불에 타 죽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
요즘에도 두메산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빛이라곤 초승달과 별빛뿐인 깊은 숲이다.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과연 길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신경 쓰고 잘 들여다보면 풀이 쓸린 자국이 있긴 하다.
최근 수레를 끌었는지 땅이 패인 곳도 보인다.
겨울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한기는 겨울 못지않다.
강원도의 가을은 겨울을 무색하게 한다.
그나마 가을이라는 것을 알리는 건 스산한 바람을 간신히 버티는 갈색 밤송이들 뿐이다.
바람이 낙엽을 비벼대는 소리 사이 아이들이 작게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좀 더 깊은 숲 속이다.
성인 다섯 명이 팔을 둘러도 모자랄 것 같은 커다란 둥치의 나무 아래 삼각형 군용 텐트 한 동이 있다.
가까이 다가서야 보일 정도로 흐린 불빛이 두꺼운 텐트 천을 간신히 뚫고 나왔다.
어린 두 딸을 둔 가난한 아빠는 오두막 한 채를 짓기 시작했다.
십수 년을 홀로 살아왔다는 나이 많은 땅주인 덕분이다.
사실 아빠에게는 오랜 지병이 있었다.
그게 무슨 병인지는 본인도 모른다.
병이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복부 깊숙한 곳에서 아린 통증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의료보험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도 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인근 마을에서는 그들을 경계했다.
어디서 흘러 들어온 가족인지, 정체가 무엇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의 가족에게 선뜻 온정을 베풀지 않았다.
그의 고향이 어딘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항간에는 그가 고아 거나 탈북민일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오두막이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이었다.
겨울이 깊고 깊은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죽고 말았다.
사인이 무엇인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두 딸은 그가 저녁에 잠든 후 깨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영원의 잠에 든 것이다.
그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아이들 아침밥을 준비한 후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가 공사장에서 일을 했다.
일용직인데 그마저도 떼이기 일쑤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두 딸에게 늦은 저녁 식사를 차려준 후 오두막을 지었다.
오두막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집의 형태를 갖춰 갔다.
다행히 먹거리는 그들을 품어 주었던 땅주인이 조금씩 보태주어 모자람이 없었다.
그는 어둠을 밝혀줄 모닥불을 피우고 체력이 소진할 때까지 오두막을 지었다.
그날 밤 생명도 완전히 소진됐다.
모닥불도 언제 꺼졌는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오두막을 완성하지도 못한 채였다.
만약 그에게 삶의 끈을 잡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버텨냈을 것이다.
적어도 어린 두 딸이 편히 살 수 있는 오두막이라도 완성해야 그나마 편히 눈을 감았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선택권은 애당초 그에게 있지 않았다.
텐트 안에서 생활을 하던 두 딸은 아빠를 잃고 어쩔 줄 몰랐다.
어린 두 아이를 보다 못한 땅주인은 그의 장사를 지내 주고 못쓰는 산 어귀 한 귀퉁이에 묫자리도 내어 주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무연고 사망자보다 못한 장례를 치렀을지도 모른다.
땅주인이 아니었다면 묫자리조차 없어 세 자리 이름조차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나무로 된 그의 묘비에는 까만 페인트로 사망일자와 이름만 적었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산골 사람들의 의견은 대략 두 갈래로 나뉘었다.
생면부지의 외지인이 들어와 아이들만 남기고 죽었다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고 되려 흉을 보는 못마땅함에 핀잔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아이들을 돕겠다며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두 아이에게는 직접적으로 삶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깊고 깊은 겨울이라도 버텨야 다음 삶을 도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땅주인은 보다 못해 두 아이들을 집으로 들였다.
그의 나이 육십 하고도 넷을 넘기고 있었다.
아빠가 짓던 숲 속 오두막은 한 해 두 해가 지나 폐허가 되어갔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아빠의 존재는 점차 희미해져 갔다.
물론 아빠를 그리워하기는 했지만 아빠가 주지 못했던 안락한 삶에 빠져 있었다.
큰 아이는 처음으로 학교에도 다닐 수 있었고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갔다.
게다가 아이들만의 방도 생겼고 공부할 수 있는 책상도 있었다.
아빠의 존재는 숲 속 오두막이 폐허가 되어가는 시간과 비슷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땅주인의 모습은 점점 시들어 갔다. 완연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의 나의 칠십이 되던 해 첫째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다시 깊고 깊은 겨울이 왔다.
겨울이면 아이들은 마을에서 일찍 돌아와야 했다.
눈을 감고도 다닐 만큼 익숙한 길이지만 밤이 깊으면 숲은 돌연 다른 얼굴을 했다.
두 아이는 언제나처럼 즐거웠다.
익숙함에 지칠 만도 한데 언제나 새로운 놀거리를 생산해 냈다.
첫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부터 가사를 돕기 시작했다.
거의 일 년이 지날 무렵부터는 가사를 전담했다.
노인은 그런 큰 아이를 실제 딸아이처럼 보듬었다.
언젠가 아이들을 입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을에 사는 친구들에게 상의를 했지만 하나같이 모두 그를 만류했다.
출신도 알 수 없는 아이를 족보에 넣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역시 깊고 깊은 겨울의 어둠이 숲 속을 장악했다.
솔부엉이가 울어대는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릴 정도로 요란했다.
큰 아이는 배에서 온기가 사라지자 손을 더듬어 이불을 찾았다.
또 동생이 이불을 걷어 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익숙하게 느껴지는 까칠한 손등이었다.
손등에 난 털이 손가락에 느껴졌다.
"할아버지?"
아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노인이 아이의 몸을 누른 것이다.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노인은 입술에 손가락을 세로로 대고 말했다.
"너만 조용히 있으면 둘 다 이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다."
"무슨 말씀...... 헉!"
아이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헐렁한 고무줄 바지가 힘없이 벗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숨이 멎는 듯했다.
비명을 지르려 하자 굳은살로 두꺼운 까칠한 손바닥이 입을 눌렀다.
몸부림을 치려고 했지만 바지를 벗긴 노인이 몸 위에 올라타 누르고 있었다.
너무 무거워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할~"
잠시 손바닥이 입술에서 벗어난 틈을 타 말을 하려 했지만 그의 매서운 눈을 보고 말을 멈추고 말았다.
"어떻게 할래? 내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하면 이 집에서 계속 사는 거고 니 맘대로 할 거면 지금 당장 둘 다 이 집에서 나가는 거야. 네 아빠 곁으로 가는 거지."
노인은 아이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아이의 기억에 아빠와 함께 살던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춥고 배고픈 건 참을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평온한 삶과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어린 동생까지 죽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도 했다.
이런 추위에 밖으로 나가 아빠가 짓다 만 오두막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깜깜했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언뜻 마을 어른들이 농담으로 하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년 배를 타 보면 맛을 안다'며 자랑스럽게 말을 하던 명수 아저씨의 말이다.
아이는 그 말이 무엇인지 한참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지금 그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그 맛을 보려 하는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수로울 것이 무엇이 있겠나 싶었다.
그는 아이의 상의를 목까지 올리고 가슴을 핥았다.
이상한 느낌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춥고 이상해요. 안 하시면 안 돼요?"
질문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혀를 놀렸다.
몸을 비틀자 한 팔로 다리를 쓰다듬어 내렸다.
그리고는 자기 바지를 벗어 버리고는 아이의 몸을 덮었다.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아이의 입을 꾹 눌러버렸다.
점점 의식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항거할 힘이 전혀 없었다.
온몸이 축 늘어지며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였다.
큰 아이는 추운 겨울 동생과 지낼 곳이 없다는 현실을 직시했다.
노인은 며칠 밤을 방을 건너오더니 나중에는 아이가 그의 방으로 가야 했다.
아이는 조금씩 그 삶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의 몸을 받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자신이 그의 아내나 마찬가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진저리가 났다.
노인은 매일 밤 아이를 안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