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과 경찰들은 굴 속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악마의 입에서 불이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기름과 살점이 타는 냄새가 굴 근처에 진동을 했다. 구역질을 하는 경찰도 있었다. 불이 붙을 걸 확인한 군인들은 기정이 있던 곳과 반대 방향으로 철수했다. 기정은 먼발치에서 불길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군인들이 모두 사라진 걸 확인하고도 기정은 한참이 지나서야 발을 뗼 수 있었다. 몸을 일으키긴 했지만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몇 번을 휘청여서야 간신히 굴 입구 근처에 도착한 기정은 아방과 중석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빨간 피가 눈을 녹이며 스며들었고 그새 얼어붙고 있었다. 피가 빠져나간 피부는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생명의 흔적이라곤 아무 곳에도 없었다. 사라진 여자 아이 한 명이 달래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탈출했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다면 굴 속 어디에서 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슴이 무너졌다. 기정은 이빨을 바득 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할 수만 있다면 악마가 되고 싶었다. 악마가 되어 부모님과 달래와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던 어린 동생들 그리고 탈영병 중석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할망이 원망스러웠다. 까마귀 떼를 부렸던 본향당신도 원망스러웠고 할망이 그토록 믿었던 제주의 신들 중 으뜸이라는 설문대할망도 미웠다. 특히 달래조차 지켜주지 못한 할망이 미웠다. 할망의 말대로였다면 달래는 무당이 되어야 했다. 이제 설문대할망을 모시는 무당의 대는 끊긴 셈이다. 달래가 살아만 있다면 설문대할망을 모시는 무당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기정은 훨훨 타오르는 굴 속의 불꽃으로 밤을 새웠다. 어멍 도지와 아이들의 시신을 태운 불꽃으로 생명을 연장한 셈이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정신을 차린 기정은 목숨을 끊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잠이 들 수 있느냐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이 모든 상황이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만든 자책은 새로운 자책으로 이어졌다. 굴 주변은 눈이 녹아 까만 현무암질 토양이 드러났다. 기정의 전부였던 사람들을 모두 태워버린 불기운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기정은 맨손으로 흙을 파기 시작했다. 수천 년간 쌓이며 썩고 썩어 흙인지 낙엽 부스러기인지 모를 보드랍고 촉촉한 한라산의 흙이 기정의 눈물과 함께 버무려졌다. 손이 부르트고 피부가 까졌다. 손가락은 온통 피투성이가 됐다. 그런 고통에도 기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맨손으로 가족들을 묻어주겠노라며 다짐에 다짐을 하며 고통을 참아냈지만 결국 현실과 타협하고 나무를 꺾어 흙을 팠다. 기정은 힘을 키워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정도 구덩이를 파낸 기정은 박수의 시체를 끌었다. 피가 다 빠져버렸지만 어린 기정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수를 구덩이에 눕힌 기정은 굴 입구로 향했다. 원래 시커먼 현무암이었지만 시신을 불로 태워 까맣게 그을린 돌이 너무 무서웠다. 어멍의 시신을 아방과 함께 묻어드리고 싶었다. 기정은 이를 악물고 굴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컴컴했던 굴 속이 새까맣게 그을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으로 어멍의 시신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기정의 손에 타다 만 사람의 살이 만져졌다. 부스럭거리며 뼈가 떨어져 내렸다. 무서웠다. 눈물이 났고 화가 났다. 미칠 것만 같았고 미쳐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멍의 시신을 꼭 찾아야만 했다. 머리가 작은 해골들이 만져졌다. 너무 타서 으스러지는 해골도 있었다. 한참 만에 어멍의 머리를 찾아낸 기정은 솜을 채운 두꺼운 상의를 벗어 어멍의 뼈를 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장은 어멍의 시신을 확보하고 싶었다.
기정은 아방과 어멍을 함께 묻은 후 주변에서 돌을 주워 담을 만들었다. 비록 크진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기정은 중석의 묘를 만든 후 아이들의 뼈를 모두 꺼내어 아이들의 묘도 만들었다. 아이들의 뼈는 누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사람의 뼈가 부족하다는 건 확실했다. 기정은 달래가 살아있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거기서 보냈다. 군인들은 다시 오지 않았다. 기정은 군인들이 오든 말든 관심도 없었다. 와서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마음으로 밤낮으로 모닥불을 태우며 묘를 만들었던 것이다.
묘를 모두 만든 날 기정은 꿈을 꾸었다. 할망이 나왔고 아방과 어멍도 나왔다. 하지만 살아있기만을 바랐던 달래는 꿈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기정은 꿈 속에서도 불안함을 떨구지 못했다. 할망은 기정의 꿈 속에서 기도했다. 굿을 했다. 다시는 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할머니의 굿당이었다.
*
어쩐 일인지 할망은 커다란 거인이 되었고 설문대할망이 되었다. 할망은 깊은 바다 위에 섰다. 바다는 겨우 할망의 무릎까지 차 올랐다. 할망은 암흑 속에서 하늘과 땅을 나눴다. 할망은 치맛자락에 흙은 담더니 제주도를 만들었다. 치마의 터진 구멍에서 떨어져 나온 흙덩어리들은 오름이 됐다. 무려 360개의 오름이다. 제주를 만든 할망은 피곤한지 한라산을 베고 누웠다. 왼쪽 다리는 제주도를 벗어나 관탈도에 걸쳤고 오른쪽 다리는 지귀도에 걸쳤다. 할망은 제주도를 만드느라 지저분해진 치마를 벗더니 한라산에 걸터앉아 성산일출봉을 빨래구덕 삼아, 우도를 빨래판 삼아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할망은 신경질은 내며 일어나더니 은하수까지 치솟은 뾰족한 한라산 꼭대기를 툭 떼어내 앉기 편하게 만든 후 다시 빨래를 시작했다. 한라산에서 떼어낸 봉우리를 던지니 산방산이 됐다. 빨래를 하던 할망은 뭐가 불만인지 땅바닥을 후려쳤다. 주먹질 한 번에 다랑쉬 오름이 생겼다. 밤이 되자 세상의 빛이 사라지자 할망은 등경돌을 등잔으로 만들어 썼다. 제주도에 인간이 살기 시작했다. 할망은 인간에게 백 동짜리 속옷을 만들어 주면 육지와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간들은 아흔아홉 동밖에 모을 수 없었다. 할망은 다리를 놓다 그만 두었고 바다 위에 크고 작은 바위섬이 되었다. 어느날 외로운 할망에게 배필이 생겼다. 할망보다 덩치가 큰 설문대하르방이다. 제주도에엔 덩치가 커다란 하르방과 할망이 배불리 먹을 게 없어서 항상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할망에게 무려 오백 명의 아들이 있다. 오백장군은 한라산 백록담 근처에서 그대로 굳어 인간들의 평화를 지키기 시작했다. 어느날 할망은 자기 키가 궁금해져 용연에 들어가 봤지만 겨우 발등에 찼다. 홍리물에도 들어가 봤지만 겨우 무릎까지 찼다. 그래서 물장오름의 물장오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끝이 없는 바닥에 닿을 수 없었다. 할망은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
기정은 달래가 살았다면 꼭 물장올에 데려가고 싶었다. 할망은 언젠가 달래가 물장올에 가게 될 거라고 했었다. 할망은 물장올에 대해 지겹도록 말했었다. 거긴 설문대할망의 심장이라고 했다. 기정은 달래가 살았다면 물장올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4월 3일 part.END 제주 4.3
꿈을 꿨다. 오늘은 4월 3일이다. 하지만 내가 알던 4월 3일은 아니었다. 내 삶은 끊임 없이 4월 3일로 연결됐다. 아방과 어멍이 보였다. 동생들이 학살당하는 게 보였다. 눈물이 났다. 나도 모르게 살인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난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은 채였다. 나 자신이 증오스러웠다. 오래전 돌아가신 할망이 나타났다. 기억 속의 곧 쓰러질 것 같았던 할망의 허리가 꼿꼿하게 펴져 있었다. 젊은 할망이었다. 할망의 표정엔 결의가 차 있었고 기개가 넘쳐흘렀다. 마치 개선장군 같았다.
할망은 내게 말했다.
"우리 기정이가 고생이 많았구나. 네 아방은 오백장군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 이젠 네가 오백장군이니라."
할망은 애매한 말을 남긴 후 까마귀를 타고 사라졌다. 움막에서 눈을 마주쳤던 약간은 괴이하면서도 재수 없게 생긴 눈을 가진 놈이었다.
난 처음 보는 하르방을 따라 할망의 움막으로 갔다. 거기에선 팔다리가 짧고 비쩍 마른 할망이 기도하고 있었다. 방금 전만 해도 허리가 꼿꼿했던 할망은 내 기억 속의 할망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던 자애로운 할망이 표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망은 내게 익숙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알던 그 할망이 아닌데…….
*
수십 년간 같은 꿈을 꿔왔다. 한 치도 다름없이 항상 같은 꿈이다. 처음엔 악몽이었는데 세월이 흘러가니 그 꿈도 그리웠다. 아방과 어멍도, 할망도, 동생 달래도 그립다.
*
불에 타버린 가족들의 시신은 한라산에 묻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가슴 깊이 묻었다. 그리고 나는 곧장 한라산을 내려왔다. 사람이 무서웠던 나는 한참을 숨어 지냈다. 살기 위해 산 것인지 살다 보니 살아진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던 중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열 살 많은 형을 만났다. 동병상련이려나! 형은 제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와중에도 나를 일본으로 데려갔다. 일본까지 가는 길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험난했지만 우린 충분히 극복할 용기가 있었다. 악마의 섬, 제주도가 싫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삶을 포기하다시피 했었지만 형이 있어서 용기가 났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었지만 형과 함께 있으니 사는 게 그나마 더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밀항 자체가 생지옥이었다. 파도를 넘으며 한라산이 울렁거렸다. 그렇게 커 보이던 제주도와 한라산은 아주 조금씩 멀어져 가더니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 제주의 모습이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일본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배 안에서 죽은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우린 운이 좋아 날씨가 좋았지만 폭풍을 통과해 밀항을 시도하다가 고기밥이 되어버린 사람도 허다했다. 집안의 씨는 남겨야 한다며 부모에게서 강제로 떠밀려 일본행 밀항선에 탄 사람도 많았다. 그렇게 제주를 떠나 일본으로 간 사람들이 1만 명에 달한다고 했다. 대부분 규슈, 시모노세키, 대마도 등에 몸을 숨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아 별 사고 없이 일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본에 도착하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다. 그토록 어리석었던 거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추방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가 추방되지 않고 일본에 머물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게다가 아예 제주도를 떠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배에서 잡혀 바다로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다. 우리와 비슷한 이유로 일본행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지만 살인 등 다양한 이유로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의 고통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운이 따라 막상 일본에 도착하긴 했지만 먹을 것도 없고 잘 곳도 없었다. 하지만 한라산 자락에서 숨어 지내던 동굴 속 생활보다 따뜻하고 아늑했다. 게다가 누군가 나를 죽일 거라는 공포심 같은 것도 없어서 좋았다. 밤이 두렵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건 가족들이 기억날 때였다. 그들의 영혼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에서 몸짓 발짓을 하며 죽도록 일했다. 살기 위해서 일했다. 난 형이 하라는 건 뭐든 했다. 사람 죽이고 때리는 짓 등 비도덕적인 것만 빼곤 돈이 된다는 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렇게 목숨을 연장하던 어느날 아침, 형은 눈을 뜨지 않았다. 형이 죽은 후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이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됐다. 죽도록 벌어서 모은 돈이었다. 난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살았는데 형은 그게 아니었던가 싶었다. 난 돈을 벌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지만 그 후에도 돈을 벌었다. 할 줄 아는 게 돈 버는 것밖에 없었다. 쓰는 돈이 없으니 차곡차곡 모였다. 제주도 출신 사람들 대부분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러다 때론 좋은 사람도 만났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더러 만났다. 오랜 세월을 일본에서 살다 보니 일본어는 일본인처럼 말할 수 있었고, 누구도 날 일본인이 아니라고 보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어쩌다 보니 일본인 아내가 생겼고 내게도 가정이 생겼다. 난 그냥 그렇게 일본인이 되고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우리를 차별했고 규제했다.
돈을 번다는 행위 안에 욕심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아서였을까? 내 통장에는 남들이 부자라고 말할 정도로 큰 돈이 들어 있었다. 막상 큰 돈이 있다는 느낌이 들자 꼭 해야 할 게 있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리곤 뭔가 해야 할 걸 찾기 시작했다. 내 부모를 죽인 놈들이 누군지 알아내고 싶었다. 불가능하단 걸 알고 있었지만 가능하다면 복수라는 걸 하고 싶었다. 나는 제주도와 연은 맺은 사람들을 수소문하며 제주도에 사람을 보내서 정보를 캐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 년간 내 가족을 해친 사람들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건 전혀 없었다. 그저 정치적 문제였다는 것 외에 실제로 내 가족을 해친 자들을 찾아낼 순 없었다. 대신 나와 비슷한 혹은 나보다 더 처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을 수 있었다.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사연이 없었다.
흰 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아졌을 무렵부터 고향 생각이 자주 났다. 나는 그동안 모아 놓았던 제주도민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꺼내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록을 누군가는 남겨 놓아야 할 거란 생각이 들었던 거다. 제주도 출신 사람들은 표정에 슬픔을 담고 살았다. 그들은 과거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아픔을 이해했다. 세상에 변했다고 들었지만 그들 대부분 다시 고향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슬픔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고통을 무디게 했고 기억을 흐리게 했다. 죽음을 앞둔 노인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다 지쳐 다시 제주로 향했다. 다시 돌아온 사람도 있었고 영영 돌아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지옥 같던 제주도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날, 동네 하르방과 마주친 할망이 숨이 멎은 듯이 굳어 버렸다. 나중에 연유를 물으니 할망의 남편과 아들이 그에게 끌려가 죽었다고 했다. 할망의 트라우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할망에겐 복수라는 생각보다 두려움이 앞섰다고 했다. 당시 그 는 동네 경찰이었다고 했다. 나는 할망의 제주 고향 이야기를 듣고 그 지역을 수소문했다. 꽤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할망 대신 복수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는 이미 은퇴했지만 여전히 지역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고 했다. 당시 사건으로 어떤 법적 조치도 받지 않았으며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땅도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악행에 앞장섰던 자로서 사람을 죽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재물을 빼앗고, 토지 문서를 훔쳤으며, 친척들을 협박해 돈까지 뜯어 부를 축적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동네에서 같이 사는 누구도 당시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고 했다. 할망과 마찬가지로 그를 마주치면 얼음이 될 정도로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럿이라고 했다. 난 할망의 복수를 결심하고 할망에게 의중을 물었다. 그런데 할망은 그를 저주할 뿐 죽임으로서 복수하기를 거부했다. 세월이 흘렀다 하여 만행을 용서하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할망은 그들과 같은 방식이 아닌 철저한 법적 판단과 조치를 받기를 원했다. 나는 제주도와 대한민국 정부가 제주4.3의 진상조사에 앞장서 지난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사건은 알 수 없는 정치적 가림과 관계로 인해 지금까지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일본으로 밀항을 한 후에도 제주에서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만행이 이어졌다.
난 당시 내려졌던 이승만 대통령의 계엄령과 유시문을 찾아 보았다.
<제주도지구 계엄선포>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서 제정한 제주도지구 계엄선포에 관한 건을 이에 공포한다. 대통령 이승만 단기 4281년 11월 17일
대통렬령 제31호
제주도지구 계엄선포에 관한 건
제주도의 반란을 급속히 진정하기 위하여 동 지구를 합위지경으로 정하고 본령 공포일로부터 계엄을 시행할 것을 선포한다. 계엄사령관은 제주도주둔 육군 제9연대장으로 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문>
1948년 1월 21일 이승만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시정일반에 관한 유시의 건(대통령)=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저극화할 것이며 지방 토색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은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
국무회의록, 1949.1.21.
제주도지구 계엄선포와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문 어디에도 중산간 지역에 살던 양민들을 빨갱이라 정의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 중 실제 현장에서 어떤 연유로 이떤 근거로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법적인 과정 없이 무참히 죽여야 했는지 밝히지 못했다. 나 같은 민간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제주4.3을 규명하기 위해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밖에 없었다. 중산간 뿐만 아니었다. 제주 곳곳의 130여 마을이 소개령 등으로 사라졌다. 그 마을의 역사는 제주4.3으로 끝이 났다. 어떻게든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고향이 사라진 채로 유랑하고 있다. 중석에게 들었던 얘기처럼 민간인을 돕다 죽은 군인과 경찰이 있었다. 그들이 살려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의 제주는 테마파크 가득한 세계적 관광지가 됐지만 내가 살던 제주는 악마의 섬, 죽음의 섬이었다. 내 편도 네 편도 없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섬이었다. 선량하다는 건 죽고 사는 조건에 해당되지 않았다. 단지 빨갱이라는 이유로, 폭도라는 이유로, 폭도를 도왔다는 이유로,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폭도에게 갈취를 당했다는 이유로, 밤에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산간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제주어를 쓴다는 이유로, 폭도같이 생겼다는 이유로, 폭도와 친인척간이라는 이유로, 말이 많다는 이유로, 그냥 이유 없는 이유로 다들 죽어 나갔다. 제주는 삼다도로 불렸다. 제주 여자는 원래 강인했지만 더욱 강해졌다. 젊은 남자는 젊다는 이유로 죽여서 씨가 말랐다. 바람, 돌, 여자가 많다던 삼다도는…….
지금도 제주에서의 만행을 지운 채 살아가는 당시의 군인과 경찰들이 있다. 깊은 주름 속에 과거의 악행을 숨긴 채 말이다. 반면에 군인이라는, 경찰이라는 이유로 명령을 따라야 했던 사람들 역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
가끔 그런 꿈을 꿨다. 수호신이 된 두 아이 이야기다. 남자 아이 하나, 여자 아이 하나. 여자 아이는 내가 아는 그 아이, 달래였다. 두 아이는 수호신이 되었다. 뭘 수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다 두 아이는 많은 아이들이 모인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싶다며 울고불고 아우성이다. 아이들은 수호신과 함께 시간여행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울었다. 난 시간 너머 아이들의 부모들이, 중산간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호신이 된 두 아이 중 하나는 달래가 맞다. 남자 아이는 대체 누굴까?
*
나는 수십 년간 완성되지 못한 채 무한 반복되던 꿈의 나머지 부분을 보았다.
시간여행을 하는 수호신들의 탈 것이 산간 마을로 향했다.
남자 아이는 그들과의 여행을 꺼려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다름 아닌 나였다.
나처럼 떠나는 순간까지 고민하는 여자 아이 하나가 있었다.
그러다 마지못해 탈 것의 끝을 잡고 딸려간다.
시간여행 중 떨어져 나가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는 게 불가능했다.
꿈이지만 우린 그걸 알고 있었다.
떨어지면 안 된다.
우리 걱정을 읽었는지 수호신이 속도를 줄여 여자 아이를 태웠다.
얼마나 달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내가 알던 악마의 섬이 아니었다.
정돈된 느낌의 제주였다.
수호신은 나를 이상한 곳으로 옮겨 놓았다.
눈 쌓인 중산간의 산장 같은 느낌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친숙한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아이 손을 잡고 지나가던 할망이 보였다.
달래였다.
달래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뜨거운 눈물이 가슴에서부터 흘렀다.
"오빠! 그동안 힘들었지?"
그날 후로 얼마나 지독한 고통 속에 살아왔는지 달래는 알고 있는 듯했다.
달래는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곤 내 눈을 들여다 보았다.
달래의 눈동자 속에 노인이 되어버린 나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내 이마의 주름 속엔 깊이를 알 수 없는 지독한 슬픔이 수북하게 녹아 있었다.
달래는 긴 눈물을 흘리곤 환한 미소를 지어준 후 날아갔다.
그날 나와 눈을 마주쳤던 그 까마귀를 타고 말이다.
*
몇 년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내게 남은 제주의 기억은 죽음 뿐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나의 기억이 흐려지긴 했지만 제주 자체가 가진 죽음이라는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고향이 그리웠던 날이 하루 이틀 아니었지만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느 날엔 달래와 숲을 달리던 기억을 꺼냈고, 어느 날엔 할망의 무릎에 기대 설문대할망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을 꺼냈다. 가족과의 기억은 얼마 가지 못했다. 나의 행복했던 기억은 순식간에 송두리째 사려져 버렸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으로 변했다. 죽어야 하는 이유를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자기도 모른 채 폭도로 몰리고, 빨갱이가 됐고, 여러이유로 죽어야 했던 당시의 기억은 내 기억을 잠식했다. 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다. 난 그냥 살았을 뿐이다.
난 아라동이라는 지명이 붙은 곳에 섰다. 내 고향이다. 내 부모가 살았고 내 할망이 살았고 내 조상들이 살았던 곳이다. 가족과 살던 집은 어디쯤 있었을까? 할망의 굿당은 어디쯤 있었을까? 너무 변해서 찾아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의 아방, 나의 어멍 그리고 중석 삼춘과 함께 했던 아이들의 묘가 이 근처 어디에 있을 텐데……. 설문대할망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그날 우리를 도왔던 까마귀 떼는 본향당신이었을까? 그날 없었던 여자 아이 한 명은 대체 누구였을까? 그 아이는 살았을까?
물장올에 섰었다. 설문대할망의 심장이라고 했던 곳이다. 할망은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도 아닌 기껏 물장올에 설문대할망의 심장이 있다고 했다. 나는 할망의 심장에 칼을 꽂고 싶었다. 왜 나의 가족에게, 제주의 사람들에게 그런 시련을 주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할망은 답이 없었다. 그저 물장오리오름 위로 새까만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았을 뿐이다. 왠지 그 녀석의 눈빛과 닮아 보였다. 난 지금도 하르방이 나타나 날 도울 거라던 할망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하르방은 본향당신이었을까? 까마귀였을까? 어쩌면 방금 하늘을 날던 익숙한 눈빛의 까마귀였을까? 혹시 서중석이 하르방의 현신은 아니었을까? 꿈 속에서 나를 할망에게 데려가던 하르방이 나의 하르방이었을까?
에필로그.
제주도를 빨갱이 섬이라고 했다. 그들은 좌익 유격대의 폭동이라 했다. 제주도민을 죽이는 건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나는 좌익이며 유격대였고 폭동을 일으킨 당사자가 되는 셈이다. 내란이라고 했다. 정치가 뭔지 지금도 잘 모르는 내게 좌익 우익으로 선을 그은 자들이다. 그들은 제주도민의 양민 열 중 하나가 좌익이기 때문에 죽여야 한고 했다. 심지어는 열의 여덟이 좌익이라는 말도 있었다. 행정기관장들 역시 대부분 좌익이라며 죽임을 당했다. 살기 위해 일본까지 흘러들어온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나처럼 일본에 적을 두고 살고 있다.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며 제주로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군사재판으로 끌려가면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했다. 판결문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온갖 고문에 정신병을 얻어 평생 고통스럽게 살다 죽은 사람도 허다하다. 간신히 풀려나 목숨을 부지했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객사한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든 살아 돌아왔어도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군인과 경찰들에게 끌려간 부모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순간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은 굶어서 죽었다. 아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았다. 임신한 여자도 아이를 업은 여자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연좌제는 그들의 자식에게까지 미쳤다. 어떻게든 연좌제를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군대에 지원해야만 했다. 바다에 던져져 멀리 떠내려간 시신들은 물에 불은 채 고기밥이 되었다. 그들은 죽임 앞에서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이미 삶을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총살로 죽은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가는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매를 맞아야 했다. 심지어 식량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애지중지 주민들이 키우던 가축까지 모두 죽여 없앴다.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낸 사람조차 살 수 없게 했다.
*
4월 3일을 두고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 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거의 80년이 다 되어 명예를 회복했지만 그들의 영혼은 이미 어디론가 흩어지고 없다. 제주4.3 합동수행단은 재심 청구로 군사재판 245차의 1301명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동안 금기된 단어였던 4.3은 여전히 아련하다. 지금 제주4.3은 새로운 이름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