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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때와 요즘

by 루파고

어릴 때 선생님이 '여러분은 꿈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번쩍 들며 자신의 꿈을 피력하고 싶어 했다.

한 반에 대통령이 열 명은 나왔던 것 같다.

어림잡아 대한민국 어린이들 10프로 정도가 대통령을 꿈꿔왔던 것 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 외에도 다른 꿈을 가진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의사, 박사, 선생님 등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우스울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한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는 달리 좀 더 세분화되고 구체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꿈을 꾸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 땐 막연하게 '박사님이'라고 했던 것이 요즘 아이들은 '곤충학 박사가 될 거예요', '원자력공학자가 될 거예요' 식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물론 연예인이 되겠다는 막무가내 식의 아이들도 있긴 하다.


교육적인 복지가 넘칠 만큼 익은 사회인데 요즘 젊은이들은 어릴 때 그려왔던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꿈들을 이룰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건 분명하다.

교육이 평준화 혹은 보편화되면서 경쟁은 치열해졌고, 꿈을 이루기 위해 좁은 구멍을 파고들어야 하며,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과 인내의 시간 속에 놓여있다.

그저 노력만 하면 되는 거라면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는데 그놈의 돈이 무엇인지 학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한다.

물론 여기에 과열경쟁, 황새 따라가기, 과시 등의 문제점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것까지 따지고 들면 너무 광범위하니 모른 척 넘어가고 보자.

요즘 세상이 이렇다 보다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수저론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라 믿었던 공산주의도, 자율경쟁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던 민주주의도 결과적으로 보면 절대 공평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누구 덕분에 공정하지 못한 세상이란 사실이 현실감 있게 드러났다.

앞으로는 '신분 상승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말조차 사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걱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좀먹고 있다.

이젠 꿈조차 꿀 수 없는 세상이 된 걸까?

절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통로가 좁아진 건 사실인 것 같다.

우리 때만 해도 부모님 세대의 굶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피나는 노력 덕분에 배곯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진 시기였지만 어쩌면 요즘 커가는 아이들보다 우리 때가 훨씬 축복받은 세대였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들에겐 과대망상이라 맘껏 누릴 수 있었던 것 같으니 말이다.

불평등을 묘한 정책으로 평등을 갈음해버리는 요즘 세상을 그 뒷세대의 눈엔 어떤 식으로 보일지 의문이다.

어쨌거나 삶에 꿈이나 희망이 없다면 무슨 의미로 살아가겠는가?

어쩌면 이 무지한 정책들 때문에 다음 십 년 후에는 현세대를 부러워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지금은 불안하고 불평등한 현실이지만 비좁은 틈을 낑낑거리며 비집고 나올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대체 응원해야 할지, 현실을 저주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하물며 현실에 닥친 요즘 아이들은 얼마나 배알이 꼴릴까......

앞 세대의 실수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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