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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배터리

방전될 때쯤 되면 다 알게 되리라

by 루파고

인생을 한정된 에너지라고 생각해 보자. 때론 충전도 가능하다는 점을 놓치지 말자. 충전량은 무한정하지 않으며 충전 속도는 점차 느려지고 그 용량 또한 줄어든다. 에너지가 방전되도록 노력해본 적이 있을까? 정말 방전되면 생명은 꺼진다. 삶의 끝자락에 섰을 때 내 지난 삶에서 방전의 위험에 이를 정도로 에너지를 태워본 적이 있었다면 난 무조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한 분야에서 지고지순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끊임없이 노력했다면 분명 어딘가에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다. 에너지 보존법칙처럼 말이다. 어르신들이 해주신 말씀들 중에 이런 게 있다. 죽으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드러난다고 말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고 정승이 죽으면 텅텅 빈다


정승이 살아있을 때야 주변의 하찮은 것들에도 신경을 쓰는 아부성 행위들이 눈에 띄겠지만 정작 세력을 누리던 정승이 죽으면 아부의 대상이 없어졌는데 문상이 무슨 필요겠는가 말이다. 물론 정승을 빗댄 속담이 위정자들 풍자하거나 하려던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엔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보다 많은 건 사실이니까. 욕심은 두고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논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또한 이 속담을 든 이유 역시 위정자들 물어뜯자고 비유한 것도 아니다. 아무튼 제시했던 원 주제처럼 그 사람의 흔적은 죽음 앞에서 전부 드러나게 되어있다.


젠장, 글 쓰는 잘 쓰다가 왜 이쪽으로 생각으로 흘러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눌렸던 화가 다시 고개를 든 모양이다. 생각을 우회하기는 싫어 직진해 본다. 최근 자살한 박원순 전 시장의 경우를 들어 근본적인 부분만 두고 여러 생각을 해봤다. 떳떳한데 굳이 자살을 선택할 이유가 있었을까? 세상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지기를 바라지 않을 거다. 그건 자기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 자식, 친구 등 자신을 믿고 따르던 지인들에 대한 배신이며 모독이다. 물론 그를 추앙하던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자체를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피살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결과는 무책임이라는 최종 결론을 낳았다. 남은 숙제는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알아서 해결하고 힘들거나 슬픈 것도 알아서 정리하라는 뜻인 게다. 진위 여부야 가려봐야 알겠지만 가장 큰 배신감을 느꼈을 사람들은 다름 아닌 여성단체일 것이다. 문제는 수사 관련 진행상황을 보면 일반인도 납득하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모습이 자꾸 나오는 게 안타깝다.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쓰던 전화는 서울시 명의라던데 서울시장 전화에 무슨 국가적 비밀이라도 숨어있기에 포렌식도 철회한단 말인가? 떳떳하다면서 왜 까발리지 못하는 건지 국민은 이해할 수 없다. 윤미향 건만 해도 그렇다. 떳떳한데 뭐가 그리 불편한 걸까? 그게 아니라고 생각되기에 국민은 믿지 못하는 것이다. 존경하는 선배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상식을 벗어난 일은 일이 아니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상식의 범주를 넘어간 일은 억지 수준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하여튼 모든 건 시간이 정리해 주긴 하더라마는.

세상 밖에서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도 문제지만, 기껏 좁아터진 울타리 안에 편협한 생각에 빠진 사람들도 문제다. 밖으로 한 발 빼고 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벌써 일 년 전의 일이다. 오래전 모 연예인의 자살을 예언했던 유명한 도사님(?)이 누구의 자살을 예언했다. 방송에서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무신론자이며 운명론을 믿지 않는 난데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오히려 나의 기억을 불신하기에 이르렀을 정도니까. 너무 황당한 일이고 비상식적인 내용이라며 내가 내 기억을 못 믿는데 그들을 내가 믿을 수 있을까? 하물며 어떤 국민이 그들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줄까? 떳떳하다고 생각한다면 모두 공개하면 그만이다. 뭐가 아쉬워 훌훌 털어내지 못하는가 말이다. 자신의 과오 때문에 가족 특히 자식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니 곧 죽어도 떳떳한 척해야 할 거라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거짓은 때가 되면 드러나게 되어있다. 콩 만한 문제가 호박처럼 커지다 못해 감당할 수 없는 바위가 되어 자신을 짓누를 그때가 온다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거다. 인생의 에너지는 무궁무진하지 않다. 다 쓴 배터리처럼 때가 되면 힘이 떨어지고 깜빡깜빡할 거다. 차라리 감당할 에너지가 있을 때 처분을 받고 남은 배터리로 과거를 청산하며 사는 게 현명한 일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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