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은 못 말려

브라이언 클라스의 권력의 심리학(2022, 웅진 지식하우스)을 읽고

by 평서윤

최근 회장님의 스위스 차명 계좌가 확인됐다. 이번에 확인된 비자금은 260억대로 이전에 비하면 소소한 편이다. 참고로 13년에 확인된 비자금 규모는 6천200억 원이었다. 당시 회장님은 구속 기소를 피하지 못했다. 국내 기업 총수들 중 탑을 다투는 연봉과 국내 1위의 배당금을 수령하시면서도 여전히 배고프신 모양이다. 그래도 한창 왕성하시던 13년보다는 비자금 조성 규모가 줄었기에 반성을 아예 못하는 사람은 아닌 듯하다. 물론 농담이다.


'회장인데 그 정도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없으시길 바란다. 주식회사는 동네 구멍가게가 아니다. 회사가 오직 회장의 것이라면 법인/주식회사/주주/주식시장까지 세상의 많은 것들이 사라져야 할 테다. 주식회사의 이익은 단순히 오너 일가의 것이 아니다. 사실 주식회사에 오너 일가라는 게 있다는 것부터가 우습긴 하다.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및 회사 자금 사적 유용, 2세의 마약 이력까지 떠올리다 보면 일개 직원인 나에게까지 똥물이 튀는 기분이 든다. 오너 일가 사람들에게 전문경영인으로서의 긍지란 것이 있을지 궁금하다.


이런 생각으로 심란한 무렵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됐다. <권력의 심리학>은 아래의 네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한다. 첫째, 더 악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어 있는가? 둘째, 권력은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가? 셋째, 왜 우리는 우리를 통제할 권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통제하게 놔두는가? 넷째, 부패하지 않을 사람에게 권력을 주고 그 권력을 공정하게 행사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람 개개인마다 성격이 다양하고, 다양한 인간들이 복잡한 사회를 형성해 살고 있기에 한 줄의 명쾌한 답을 내리긴 어렵다. 하지만 책을 정리해 보자면 위계질서와 권력은 불과 같아서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악한 사람이 권력을 보다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그렇기에 악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는 빈도가 높다.


한편, 권력은 실제로 육체적인 변화를 가져오며, 특히 권력은 상대에 대한 공감능력을 감소시킨다. 권력자는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할 필요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했던 사람도 권력을 얻은 후 충분히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권력을 얻기 전과 후 아무 변화가 없음에도 권력자는 악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이는 권력자가 일반인에 비해 더 심한 강도의 비윤리적 선택을 잦게 강요받기 때문이다.


악한 사람으로 오해받은 억울한 권력자들도 있겠지만 역사적으로도 지금도 악한 권력자는 실재했고, 실재한다. 악한 사람이 권력을 보다 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나 이는 우리가 그들에게 권력을 위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대를 살고 있음에도 석기시대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한 뇌에 의해 골격이 좋다던가, 목소리가 중저음이라던가 등의 구닥다리 기준으로 자격이 없는 이에게 권력을 주곤 한다.


부패하지 않을 사람에게 권력을 주기 위해선 가장 권력을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 권력을 주어야 한다. 다른 이들을 지배하기를 열망하는 사람이야 말로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권력을 원치 않는 이들이 권력에 지원할 수 있도록 홍보해야하며, 유능한 이들을 경쟁을 통해 선발해야 한다. 물론, 앞서 말했듯 권력은 사람을 부패시키기에 우리는 권력자가 권력을 공정하게 행사하도록 끝없이 감시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감시를 당하는 사람은 아무런 권한이라곤 없는 나 같은 사람이다. 전자칩이 내장된 사원증으로 출근/퇴근 시간이 초 단위로 기록되고, 오픈형 사무실이기에 사적으로 전화를 받으러 가는 것부터 화장실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까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고매하신 회장님은 전용 주차장과 전용 엘리베이터와 사무실까지 가지고 계신다. 놀랍게도 얼마나 꼭꼭 숨겨져 있는지 이 회사에서 4년 반 근무하는 동안 회장님 전용 엘리베이터와 사무실은 실물을 본 적조차 없다. 회사 건물 1층 다음이 바로 3층이니 출근도 안 하는 회장님이 숨겨진 2층을 독식하실거라 추측할 뿐이다.


우리 회장님은 권력에 의해 변하신 건 절대 아닐 거다. 태어날 때부터 부잣집 장자로 태어나셨으니 그저 공기처럼 주어진 권력에 흠뻑 젖어 성장하셨을 테다. 그리고 자신을 감시하는 세력 역시, 적어도 회사 내에는 전혀 없었던 듯 하다. 13년도 6천200억 원 비자금 조성 당시 이를 도왔던 임원 3명 역시 불구속기소 당했으니 말이다. 6천200억 원은 회사의 한 해 영업이익에 달하는 수치이다. 주주와 임직원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하는 회사의 이익을 회장님 혼자 독식함으로써 결과적으론 회사의 가치를 심각하게 하락시켰다. 그래도 이번에는 회장님을 도운 임원이 3명까지는 아니었나 보다. 260억 원이면 혼자서 하셨거나 임원 한 명 정도가 돕지 않았을까 싶다.


쪼그라든 회장님의 비자금을 보며 세상이 좀 더 나아지고 있구나 라며 희망을 품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더욱 지화화된 건 아닐까라며 걱정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나만 이렇게 한심한 권력자 밑에 있는 건 아니란 점이다. 권력에 취하지 않을 순박한 이들이 권력자가 되는 세상을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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