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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Mar 03. 2023

만난 지 6주년, 에버랜드 가자!

이번에는 셋이서

늘 늦잠을 자던 딸은 「재하, 판다 보러 가자」는 소리에 바로 눈을 떴다. 기상 후 세수하고 이 닦고 빵 먹으며 머리 묶은 다음 옷 입는 시간까지 총 15분 걸렸다. 이 녀석이 이렇게 능동적인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등원에 두 시간씩 걸리던 지난 시간들이 스쳐갔다. 단순 계산이지만 재하에게 에버랜드는 어린이집보다 한 8배쯤 더 가치 있는 것 같았다. 


원래 에버랜드는 재하랑 둘이 가려고 했었다. 어린이집 졸업하고 유치원 가기까지 시간이 며칠 정도 남아서였다. 2월 말까지 보내도 된다고 하긴 했는데 다섯 살부터 계절학기 듣게 하기는 싫었다. 호기롭게 데리고 있겠다곤 했지만 집에서 하루 종일 역할극을 하다 보니 힘들어서 그냥 몸으로 때우고 싶어졌다. 그래서 놀이공원 가자 한 거였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둘이 갔다 남편 죽으면 자기가 덤터기 쓴다고 하여 셋이 같이 가는 걸로 변경되었다. 생각해 보니 예정했던 2월 28일은 우리가 만난 지 6주년 되는 날이라 나름 의미도 있었다.


아내는 아침부터 놀이공원 간다고 신경 썼다. 눈썹도 다듬고 귀걸이도 했다.

「시골 쥐인가요? 놀이공원 간다고 꽃단장하게? 」

「어허, 빨리 가서 줄 설 생각을 해야지!! 」

본전도 못 찾고 혼만 나서 부리나케 유모차를 접어 트렁크에 넣었다. 우리 집에서 에버랜드는 가까웠다. 20분 정도면 도착했다. 가는 길은 높고 구불구불했다. 옆에 가는 차들은 낮게 비행을 해서 우리 차를 앞질러 갔다. 다들 뒷유리창에 아이가 타고 있다는 딱지는 붙이고 있었다. 여기서 굴러도 함께 가는 거니 괜찮은가 싶었다.


에버랜드 정문주차장 부근으로 갔다. 차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여기가 이럴진대 주요 주차장들은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아까 날아가던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다. 몇 번 와본 사람들이었구나. 다만 걱정은 없었다. 며칠 전에 왠지 이럴 것 같아 정문주차장 발레 파킹을 예매해 두었다. 모든 길이 다 막혀 있던 가운데 유일하게 비어 있는 발레 주차장으로 유유히 향했다. 뒤통수에서 ‘이 남자가 내 남자다’ 같은 사랑의 눈빛이 느껴졌다. 정문주차장에서 발레 파킹을 하려면 만원 추가 비용을 내야 했다. 그렇지만 아깝지 않았다. 내 생에 가장 값진 만원이었다.


여유 있게 차를 댔다. 잠시 으쓱댔지만 정말 잠깐이었다. 곧 인파를 만났다. 아주 많았다. 사람 수 보는 구경만으로도 올 가치가 있을 정도였다. 내가 관객이 아니고 참가자인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우리는 시골쥐로 변해서 허둥댔다. 아내는 넋이 나가 유모차를 끌고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 나는 세대주답게 정신을 차리고 아무 줄이나 일단 섰다. 그리고 옆에 계시던 목놓아 줄 안내하는 직원분에게 이 줄이 맞냐고 물어보았다.

「네 맞습니다 고객님」

이 와중에 완벽한 문장이었다. 뭘 해도 성공하실 분이다 싶었다.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찾으러 갔다 가는 더 난리가 날 것 같아 가지 않았다. 이미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거 실화냐?’라는 표정으로 나를 스쳐갔다. 그 무리 속에 아내도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아내는 6년 전 사귀기로 했던 날의 표정보다 더 뜨겁게 나를 쳐다보았다. 


날은 좀 쌀쌀했다. 그래도 뒤로 가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훈훈해져 핫팩이 딱히 필요 없었다. 대충 살펴보니 연간회원권이 성골, 단체입장이 진골, 우리는 대강 줄 서기의 6두품 끝자락쯤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앞은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하늘은 멀다. 땅을 보고 살거라」라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고사홍 대감 명언이 떠올랐다. 10시가 다가오자 직원들이 춤을 추었다. 입장이 시작되고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했는데 누가 새치기하고 그러지는 않았다. 시민의식이 절로 생기는 사람 수였다. 줄 바꿔치기 잘못했다가 한 대씩만 맞아도 골로 갈 거였다.

「오늘 좀 똘똘한데? 발레도 하고 줄도 미리 서 놓고」

「노력하지 않고 센스로 버텨온 40년이라니. 원래 내가 판단력이 좋아. 그때도 제주에 가서 자기를 잡았잖아?」

이렇게 열심히 아부를 하다 로스트밸리 스마트 줄 서기를 놓쳤다. 경을 칠 수도 있었는데 오늘 공이 많으니 괜찮다고 무사히 넘어갔다.


원래 재하는 유모차를 타면 로마사람 마냥 비스듬히 누워있는데 이 날만은 꼿꼿이 허리를 들고 앉아서 구경했다. 놀이공원하면 머리띠 해야 하니 하나 사주겠다 했다. 판다니 사슴이니 고르지 않고 꽃게 머리띠를 골랐다. 유모차를 옆으로 끌어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사파리랑 로스트밸리는 물 건너갔으니 우리는 1차 목표인 판다를 일단 보러 가기로 했다. 사람은 많았지만 아까 마냥 붐비지는 않아서 줄이 혼잡했다. 아내가 줄에서 자꾸 튕기길래 내가 유모차로 밀고 들어갔다. 뒤에서 따가운 눈빛이 느껴졌지만 아내가 칭찬해 주었으니 괜찮았다. 판다는 세상 편하게 누워서 대나무를 먹었다. 재하에게 판다 예쁘냐고 물어봤더니 자기가 더 예쁘다고 했다. 둘 다 귀여움 하나로 먹고사는 공통점이 있었다.


판다를 다 보고 올라가는 길은 오르막이 심했다. 시지프스처럼 유모차를 밀었다. 아빠들은 유모차를 처음에는 허리를 세우고 밀다 점점 엉덩이가 뒤로 빠졌다. 재하 엄마는 내 등을 밀어주다 괜찮다고 하니 사양하지 않고 뒷짐을 지고 천천히 올라왔다. 아이들 놀이기구가 많은 곳으로 향했다. 워낙 사람이 많으니 곳곳에서 일행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팔짱 끼고 노려보는 커플들도 있었고, 혼나는 아이들도 많았다. 여기까지 와서 저래야 하나 싶다가 정문주차 제대로 안 했으면 내가 저렇게 됐을 거란 생각이 들어 등에 땀이 났다.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있었다니!!



재하는 분홍색 꽃잎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도 타고, 유아용 자동차, 시크릿 쥬쥬 비행기, 아동용 열차 같은 것을 탔다. 길게는 20여 분도 기다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투덜거렸지만 타고나서는 온전히 기구에 몸을 맡겼다. 아침에는 부지런한 모습이 새로웠다면, 놀이기구를 타면서는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처음 보았다. 안내 직원분이 동작을 하면 따라서 춤을 추었다. 딸이 마구 웃으니 힘든 것도 덜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피로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비게이션을 켜서 에버랜드로 오는 차량 수들을 봤다. 600대가 오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지며 힘이 났다.


점심으로는 피자랑 파스타를 먹었다. 모바일로 하는 주문이 신기했다. 맛은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걸 내가 어디서 먹어봤나 했더니 키즈카페였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무난했다. 최소한 음식으로 장난을 치는 건 아니었다. 물론 절대 싼 가격도 아니었다. 재하가 피자 먹다가 딱딱한 껍질 있다고 대뜸 뱉길래 ‘너는 가난을 모른다고, 아빠 어릴 적에 여기는 자연농원이었고 정말 tv에서만 봐서 와 보는 게 소원이었다’ 뭐 이런 말을 했더니 옆에서 막 쳐다보는 것이었다. 부끄러워서 밖을 보는 척했다. 그새 수많은 사람들이 또 길게 길게 똬리를 틀고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 있으면 모두가 맛집이었다. 이래서 도근이네가 에버랜드 올 때 먹을 거 적당히 싸와서 군사작전하듯이 타고 간다고 했나 싶었다.


줄을 서서 기다릴 때 챙겨 왔던 가방을 계속 들고 있어 괜히 힘이 들었다. 가방 안에는 재하 마실 것, 먹을 것, 입힐 것들이 모여 있어 꽤 무거웠다. 아내는 유모차 짐칸에 넣어두지 왜 들고 오냐고 했는데 누가 가져갈지 모른다며 미련하게 들고 있어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나중에는 될 대로 되라지 하며 내팽개쳐 두었는데 별일 없었다. 내 커피가게 사은품 가방 따위에는 아무도 관심 없었다. 자의식 과잉 때문에 몸만 더 힘들었다. 


두 시쯤 되어 재하에게 돌아가자고 하니 순순히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동작과 함께 계속 노래를 불렀다. 얼핏 들으니 가사는 「다음 주에 또 만나요」 뭐 이런 내용이었다. 에버랜드 출입구 옆에 ‘인생 네 컷’이라는 사진 찍는 곳이 있었다. 아내가 오늘 기념일인데 하나 남기자고 했다. 우리는 들어가서 소품을 5초 동안 골랐다. 처음에 재하는 똥 모자를 쓰겠다고 하더니 1초 만에 안 쓴다고 하여 우리가 하나씩 나눠 썼다. 재하는 꽃게 머리띠에 의리를 지키고 우리는 응가 부부를 했다. 일단 4장 찍어보고 할 만하면 추가로 몇 장 더 찍자고 했다. 해보니 기본 촬영이면 충분했다. 4개 찍고 나니 할 표정이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인스타에 올리던 ‘인생 네 컷’을 해보고 나니 ‘인싸’가 된 것 같아 흐뭇했다.


우리도 이제 인싸



돌아오는 길에 재하는 자지 않았다. 재미있었다고 또 오자고 했다. 우리는 어설프게 돈을 쓰느니 차라리 연간회원권을 끊자고 했다. 오자마자 신청했다. 3월 1일부터 가격이 인상된다는 말에 혹해서 그랬다. 아내는 연휴와 어린이날이 제외된 패키지를 끊자고 하고 나는 모든 때 다 갈 수 있는 것을 하자고 했다. 결국 어린이날에 재하가 에버랜드 가자고 할지 모른다는 내 주장이 이겨 아무 날이나 갈 수 있는 걸로 결제했다. 아내는 한 마디만 남겼다.

「아니, 그날 거기 왜 가?」

혹시 가게 되면 반성문을 쓰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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