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양가(兩家) 생활

친가와 외가 살이

by 이상우

우리 집은 아들만 둘이고 처가댁은 딸만 셋이라 분위가 사뭇 다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르다. 그래서 손주가 지내는 방식도 차이가 있다.


내가 딸 셋인 집에 장가 와서 놀란 점은 모든 사안이 전원합의체로 결정된다는 점이다. 공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적인 이슈까지 포함된다. 재하의 옷부터 머리핀, 이유식 종류까지 다 해당한다. 재하 친모의 발언이 더 영향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의견청취 단계에서의 지분일 뿐이다. 막상 본 투표에 들어가서 언니들이 거부를 던지면 그 쟁점은 부결된다. 그렇다고 다수결로 밀어붙이면 되느냐? 그것도 아니다. 끝장토론을 통한 만장일치가 되어야 한다. 몇 년 전 시도되었던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는 딸 부잣집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예를 들어 재하는 한동안 이유식을 안 먹었다. 막상 어미 아비는 때 되면 먹겠거니 태평했는데, 이모들은 애가 닳은 모양이었다. 작은 이모가 백화점에서 100g 한 봉지에 5500원하는 비싼 이유식을 하나 사온 적이 있었다. 꼬맹이도 좋은 건 알았는지 그 이유식은 튕기지 않고 냉큼 받아먹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이모가 계속 고급 이유식을 사는 바람에 가계에 위협이 되기도 했다. 이모들은 우리가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며 다짐을 하기도 했다. 큰 이모는 뭐 말할 것도 없었다. 재하가 가진 옷의 3분의 2는 그분이 사준 것이었다. 화장대 거울에는 큰 이모가 사준 머리핀들이 굴비 두릅처럼 여러 줄 매달려 있다.


물건뿐 아니라 육아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작은 처형이 친정에 계실 때 늘 키즈카페를 운영해주셨다. 아침 열 시에 열어서 밤 열시반쯤에 닫았다. 다만 폐장 시간은 확실했다. 그 이후에도 놀고 싶은 재하가 방에서 기어나가 가두리를 두드리며 연장해달라고 하면 열어만 주었다. 그래서 재하는 연장시간에는 불이 꺼진 채로 장난감 피아노를 두드렸다. 그 소리를 이불을 뒤집어쓰고 듣고 있던 이모는 늘 재하에게 말했다.

“재하야, 이모 수면권도 보장해줘야지.”

재하는 큰 이모가 퇴근하고 오면 달려가서 책을 쥐어주었다. 막상 읽게 해 놓고서는 딱히 듣지는 않았다. 이 책 읽으면 저 책 주고, 저책 읽으면 그 책 주고 이런 식이었다. 큰 이모는 불경 읽듯이 늘 “아기 돼지가~”를 외쳐야 했다. 자기 평생 읽은 책 보다 지금 더 많이 읽고 있다고도 했다.



인생이 행복하다



처가댁 거실에만 에어컨이 있던 시절에 그 집 여성분들은 그곳에 모여서 잤다. 재하는 거기서도 오만방자하게 군 모양이었다. 일단 재하는 불만 끄면, 돌아가면서 자기를 안으라고 했다. 자기는 잠들기 싫다며 세네 명을 못 자게도 했다. 재하 옆에서 자던 한 이모는 뺨을 계속 맞고 성북동 비둘기처럼 원래 자리에서 쫓겨났다. 23도만 넘어도 얼굴에 열꽃이 피는 재하 때문에, 처가댁 여성분들은 패딩에 오리털 이불을 피고 잠을 자야 했다. 하도 추운 걸 좋아하는 조카를 보며 작은 이모는 ‘재하는 전생에 러시아 공주였나 봐...’를 중얼거리기도 했다. 괴담도 있었다. 누군가의 증언에 따르면, 재하가 새벽마다 핸드폰을 쥔 채 돌고래 소리를 내면서 웃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어댄다고 한다. 그리고 사진의 피사체들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코를 물린 채 발견된다는 것이다. 증거로 누군가의 다리가 찍힌 사진들이 핸드폰에서 다량 발견되기도 했다. 이런 사달들은 재하의 양아치 짓을 견디지 못한 큰 이모가 (잠시 신세 지고 있는) 우리 방에 벽걸이 에어컨을 놔주면서 일단락되었다. 나는 자기 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그리고 밤마다 거실 가서 놀겠다고 도망간 딸을 잡아오는 추노 질이나 하게 되었다.


다만 어머님은 이 합의체에서 살짝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건 원래부터 권한이 없었다기보다 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권리가 소멸된 것에 가까웠다. 육아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면 그렇게 되었다. 예컨대 손주를 자발적으로 업지 않고 업으라 해야 업고 그런 거 말이다. 그나마 아기 업기는 재하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업히기 싫었던 재하가 업기만 하면 울었다. 딸들이 잘 좀 해보라고, 우는 소리 나면 쫓아나가겠다고 엄마를 갈구자 어머님은 한마디 하고 사라지셨다.

“안 들리는 데로 가야지”

그리고서는 동네 구석진 곳으로 가서 인터넷을 주로 하셨다. 재하도 질 수 없었는지 할머니 등에서는 자는 척을 잘했다. 재운 줄 알고 의기양양하게 들어오셔서 손녀를 내려놓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뛰어놀았다. 어머님은 재하가 업혀 있을 때 가끔 먹을 것을 주시기도 했다. 오른손잡이 할머니는 재하의 왼쪽으로 빵을 줬다. 오른손잡이 손녀는 왼쪽으로 오는 것은 받지 않고 오른쪽으로만 입을 벌렸다. 둘은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빵을 주지 못하고, 먹지도 못한 채 서로 짜증만 냈다.

막상 당사자인 장모님은 별 아쉬운 게 없어 보이기는 한다. 당신께서는 육아보다 장보기와 사우나가 먼저인 욜로족이기 때문이셨다. 다만 TV에서 미운 오리새 끼는 재밌게 보신 모양이었다. 우리가 아등바등 애를 보고 있으면 식탁에 앉으시고는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이런 식의 코멘트를 툭툭 던지신다. 아무래도 패널 역할에 만족하시는 듯했다. 다만 잔소리가 지나치면 딸들에게 욕을 먹었다.

“엄마!! 애가 그림이야? 보고만 있게?”

“니들이 있으니깐 그렇지...”

“애 좀 봐!! 잔소리하지 말고 보기나 해!!”

“재하, 업을까? 나가서 아기 고양이 보러 갈까? 야옹~”

위에서 말했지만 애 업기는 어머님의 자존심이었다. 아기 업어주려면 다리에 힘 생겨야 한다며 운동도 하셨다. 그렇지만 정작 재하를 업어 재워야 하는 밤에 운동 간다고 사라지시는 바람에 소용없을 때도 있었다. 딸들이 엄마의 뺑끼질을 눈치채고 운동 못 가게 하자, 어느 날은 분리수거한다고 나가셨다가 한동안 돌아오시지 않았다.


고목나무에 매미


밤마다 엄마와 이모들이 야식을 먹고 있으면 재하도 무척이나 거기 끼고 싶어 했다. 자기도 한 점 얻어먹으면 그렇게 만족스러워 할 수가 없었다. 너무 신나면 상모 돌리기와 함께 손수건을 흔들며 살품이 춤을 추었다. 다만 흥을 내는 것은 맛있는 거에만 국한되었다. 감자 같은 걸 입에 넣어주면 더 달라고 안 하고 자기 볼일 보았다. 사이다 같은 것도 탐을 내었지만 주지 않았다. 재하는 양 손을 꼭 쥐고 주먹을 흔들며 분을 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줬다가 단체로 경찰서 갈 수는 없었다.

이런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외가와는 다르게 친가는 단순한 편이다. 일단 전원합의체 같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내 의견대로 간다. 사실 배후에는 당연히 아내가 있다. 나는 바지사장이다.


재하도 친가에서는 깨방정 떨지 않고 조용했다. 아직 몇 번 가지 않아서일 것이다. 가면 소파만 잡고 조용히 놀았다. 좋아할 만한 소품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잘 건드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외갓집에서도 처음에는 그랬다. 점점 영역을 넓히는 성격인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신중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하게 타고난 모양이다.

우리 집에서는 재하가 귀엽다해도 전적으로 애한테 매달려있지는 않는다. 내 동생은 재하 데리고 오라고 한참 타령을 하더니 막상 데리고 오면 한 20분 귀엽다하고 제 방 들어가서 게임방송 보거나 데이트하러 나갔다. 가끔 조카를 앉혀놓고 기타를 쳐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재하는 울림소리가 무서운지 달려와서 안기며 울었다. 피아노 소리에는 별 감흥 없어 보였는데 유독 기타 소리에 반응이 컸다. 몇 살까지 그러는지 궁금하다.


우리 아버지도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입만 열면 재하 이야기만 한다고 했다. 그래 놓고 재하가 집에 오면 한 20분 감상하고 방에 야구 보러 들어가곤 한다. 처가댁처럼 재하를 가운데 놓고 캠프파이어하듯이 둘러앉아 있는 건 초반 20분 빼고는 보기 어렵다. 생각해보면 장인어른도 비슷하다. ‘아 우리 재하 이쁘네’를 한 세 번 정도 하시고는 방에 들어가신다. 로또 번호 맞추느라 바쁘시기 때문이다. 이건 친가 외가의 문제가 아닌 그냥 남자들의 문제라고 해야겠다.


친가에서 단란한 한때

우리 집에서 재하에게 늘 애달파있는 건 재하의 할머니, 즉 우리 엄마이다. 늘 한 번 안아볼까 하지만 손녀는 그녀에게 잘 가지 않는다. 재하는 친가만 가면 아빠에게만 꼭 붙어 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잘 가고 싶지 않다. 다녀오면 늘 허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기를 외면하는 손녀도 예쁜지, 재하 할머니는 계속해서 너무 예쁘다만 연발한다.

“너는 좋겠다. 이렇게 예쁜 딸을 둬서”

“나랑 살 것도 아닌데 예쁜 게 무슨 소용이오? 나는 튼튼하고 돈 잘 버는 딸이 좋수”

딸 낳은 걸 너무 부러워하니까 놀리고도 싶어 진다.

“평소에 좀 착하게 살지 그랬소. 얼마나 못되게 살았으면 아들만 둘일까”

(아들 가정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저 농담...)

그래도 자기 버릇 누구 못준다고 이상한 이야기도 한다.

“재하 천재 같아. 빨리 공부시켜야 돼”

“아 쫌... 알아서 하리다”


써보니 재하 친가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아무래도 외가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어차피 몇 달 후면 친가 옆 동네서 살게 될 테니 그때 가서 더 적어야겠다. 그러니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은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