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효녀이옵니다

열 시에 잘 것이옵니다

by 이상우

재하에게 가끔 궁금한 게 있다. 얘는 내가 아빠인걸 아는 걸까? 뭘 믿고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지 알 수 없었다.

“아가, 넌 내가 아빠인걸 아니? 너 뭘 믿고 짜증이니?”

종종 딸을 안고 있을 때 물어본다. 10개월밖에 안된 꼬맹이가 한참 어른에게 패악이냐며 준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나는 아빠이기 이전에 어른이니까. 물론 돌아오는 것은 정신 차리라는 귀싸대기와 손가락 지시뿐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재하가 어디를 못 가니 라푼젤처럼 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도시락이나 요깃거리를 사러 갈 때 아기 띠를 매고 같이 가고는 한다. 빵을 사러 가는 길에 진짜 더워 잠깐 마스크를 내린 적이 있었다. 옆에 있던 여학생 무리들이 딸을 보다 내 얼굴을 보더니 흠칫 놀란다.

“아기 완전 귀여워요!! 아빠랑 똑같아요!!!”

“감사합니다. 헤헤”

“아들이에요?”

“... 딸이에요”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내는 재하가 어디 갈 때마다 꼭 머리핀을 꽂아준다. 아무튼 재하는 누가 봐도 아빠 닮은 낯을 믿고 패악을 부리나 싶다. 어느 순간 보면 정말 나랑 똑같이 생겼다. 또 어떤 때는 엄마 닮았는지 예쁘기도 하다. 생김새가 꽃미모와 이상우를 오간다. 얼굴이 널뛰기를 한다.



딸 두뇌가 발달하는 것은 여러 번 얘기했지만 요즘은 확실히 느끼고 있다. 어느새 재하는 아빠와 공 주고받기도 하고 빈칸에 맞는 블록 조각도 넣는다. 처가댁 늙은 개인 시추 종 코비보다 똑똑하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이큐 배틀이라도 붙여보고 싶지만 서로의 인권과 견권을 생각해서 참아 본다.



장난감모델.jpg 장난감 모델...



먼저 누군가의 부재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다 있으면 혼자 장난감 가지고 잘 논다. 하지만 하나가 사라지면 나머지 하나 옆에 꼭 붙어 있는다. 그러면서 아빠 보고 싶다고 엄마 보고 싶다고 징징거리기도 하고 강아지마냥 남은 사람 뒤를 쫓아다닌다. 그냥 혼자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저녁 즈음되면 큰 이모는 오늘 안 오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작은 이모가 전화기 너머에서 재하를 부르면 왜 그 안에 들어가 있냐고 궁금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이모는 키가 큰데?’ 이러면서 말이다. 그리고 재하 친할머니는 손녀가 자기를 알아볼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지만 거기까지는 아니다. 아직 정성이 부족하다.



인과관계와 선후관계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생겨난다. 일례로 6월에는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 아내의 이직과 그에 따른 이사 문제였다. 그래서 재하를 외갓집에 맡겨 놓고 둘이 일 보러 갈 때가 있었다. 재하는 자고 나면 엄마가 없어진 걸 몇 번 겪더니 밤에 자지 않겠다고 버텼다. 원래 안 자기도 하지만 이번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눈을 뜨면 엄마 아빠가 없으니 잠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신뢰가 담긴 목소리와 따뜻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가, 이제 일 다 끝났어. 내일부터는 어디 안가. 그러니 어서 자자.”

“으으으, 어무어무~ 아부”(구라치지마라. 손모가지 날아간다)



재하는 눈 감았을 때는 엄마를 찾았고 눈 뜨고 있을 때는 아빠를 찾았다. 엄마젖을 한참 빨다가 배가 빵빵해지면 나에게 ‘이이이이잉↗’과 같은 치명적인 소리를 내며 굉장히 빠르게 기어 왔다. 기어 다니는 속도가 나날이 붙어서 몸을 주체 못 하고 앞으로 뒤집어질 때도 있었다. 나중에 얼마나 붕붕이를 타고 스피드를 즐길까 걱정이 된다. 그렇게 나에게 다가와서는 아빠가 뭘 감추고 있나 찾는다. 손바닥을 살펴보고, 등 뒤에 숨겨놓은 것 다 알고 있다 하며 어깨를 짚고 뒤쪽을 살핀다. 그래 놓고 아무것도 없으면 옆 탁자의 물건을 만지고, 보던 책을 구긴다. 내 책은 함부로 다루면서 「아기 오리의 출근길」 같은 자기 그림책을 들고 온다. 읽어달라는 뜻 같았다. 순간 이재하천재교의 신도가 될 뻔했지만 꾹 참았다. 나도 어릴 적 한 천재 소리 들었지만 결국 신도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말았기 때문이다. 재하는 책을 가져다주면 아빠가 무언가 소리를 내는 것을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읽기 시작하면 듣지도 않고 「애벌레 살이의 고달픔」 을 ‘이것도 읽어라’라는 당당한 표정으로 바로 들이 민다.



집안을 배회하다가 무엇이 재밌는지 혼자 짝짜꿍도 한다. ‘재하 잡아라’ 혹은 ‘나 잡아봐라’ 하면서 같이 기면 매우 신나서 ‘캬하하하’하며 돌아다닌다. 돌아다니다 힘들면 철퍼덕 엎드려 약 10초간 쉬기도 한다. 여기에 동요까지 깔리면 금상첨화다. 언젠가 아동음악이 지겨워 클래식 음악도 한 번 틀어봤다. 귀에 쏙쏙 들어왔다. 수많은 외계어 중에 영어를 발견했던 오스트리아 여행이 문득 생각났다. 이렇듯 하도 재하가 빨빨 거리며 돌아다니 길래 성장판 보호를 위해 무릎보호대를 채워주었다. 그러나 현실은 애를 쫓아다니며 같이 기어 다니는 내가 무릎보호대를 해야 할 판이었다. 머리카락도 제법 길어 종종 아기용 고무줄로 묶어주었다. 다만 고무줄이 분실되면 찾아야 했다. 재하가 주워 먹기 딱 좋은 사이즈여서였다. 바닥을 손으로 쓸면서 침대 밑과 탁자 밑을 헤맸다. 군대에서 잃어버린 탄피 수색할 때랑 비슷했다. 찾을 때까지 휴식은 없었다.



터널통과.jpg 나는 즐겁지롱...



재하는 무엇을 붙들고 일어설 때 까치발로 서는 데 재미가 들렸다. 화가 나면 양 팔을 흔들고 주먹을 부르르 떨며 분노하기도 한다. 아빠 손목시계를 입에 넣어보고 싶다고 떼를 쓰며 울었다. ‘끼아야야야~’같은 돌고래 고주파를 내며 성질을 부렸다. 입질도 함께였다. 기분이 좋으면 고양이 소리를, 기분이 나쁘면 호랑이 소리를 냈다. 온도가 높거나 공기가 건조하면 바로 얼굴에 빨간 반점이 올라오며 티가 났다. 피부가 예민해서인지 춥고 습한 곳에 있어야 했다. 반지하 취향인 듯했다.



아빠 엄마 간에 오고 가는 것도 좋아했다. 물론 안겨서였다. 일전에 나한테 오라고 하니 안 오겠다 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냥 엄마한테 있으라 했더니 ‘잘못은 딸이 하고 벌은 왜 내가 받냐’고 아내가 볼멘소리를 했다. 그렇다고 내가 어디를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하는 눈으로 ‘멀어지지 마라. 가까이 오지도 마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내는 자기만 당할 수 없다며 머리를 썼다.

“재하가 앉아있는 사람에게는 안 가는 것 같아. 빨리 서봐. 나는 앉을게.”

재하는 다시 나에게 안겼다. 재하엄마는 자신의 추리에 뿌듯해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재하는 엄마도 기어코 일으켜서 왔다 갔다 게임을 수없이 반복했다. 변형버전으로는 ‘아빠->엄마->바닥->아빠’도 있었다. 데드리프트가 따로 없었다.



이유식이 마음에 안 들면 입에 머금고 있다가 수저가 다가올 때를 기다려 뿜었다. 아주 지능적이었다. 엄마가 분이 나서 사라져 버리자 딸은 웃었다.

“재하~ 왜 그랬어. 엄마 가버렸잖아.”

별로 상관없다는 듯이 내 바지끈을 물었다. 그리고 쓱쓱 풀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재하는 내 바지끈에 집착했다. 아무리 딸이어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하면 안 되는 것이 있었다.

“아가~ 이러면 안 된다. 아빠도 인권이란 게 있어.”

“아부이야오우으마”

보다 향상된 옹알이를 했다.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자기는 개의치 않는다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씨익 웃는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놀아주다가 생글거리는 모습이 너무 예뻐 쳐다보면 재하는 그윽한 눈빛으로 말한다

“소녀 효녀이옵니다. 오늘 열 시에 잘 것이옵니다.”

뻥이었다. 절대 안 잤다.



지켜본다.jpg 효녀같은 그윽한 눈...소녀 효녀이옵니다




사실 우리는 밤에 놀면서 딸에게 자라고 하는 것이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애 보다 그나마 자기 할 일 할 수 있는 시간이 재하 잘 때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나는 야구 결과 확인하고 화내거나 모바일 게임하고, 아내는 웹소설 보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재하 엄마는 곧 출근이라며 밤새 웹툰과 웹소설을 달리는 중이었다. 하루 종일 이 시간만 기다리건만 재하는 그 마음도 몰라주고 여기 치대고 저기 치댔다. 하다못해 차라리 내가 먼저 잠들기 위해 양도 세어봤지만 재하의 방해로 소용이 없었다.



하루는 밤에 누워있는데 웃음이 났다. 아내가 물었다.

“갑자기 왜 웃어? LG 이겼어?”

“아니 졌어. 그건 그렇고 재하 계속 운동하고 있는 게 웃겨서. 관절 안 아픈가?”

재하는 엄마 무릎 딛고 섰다가 나한테 달려와서 코를 핥고 가는 이상행동을 수십 차례 반복 중이었다.

“새 거잖아.”

“역시 아파트도 신축, 사람도 신제품이 좋구먼.”

하지만 밤이 깊어가도 계속 재하가 질척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재하야, 내일 또 안아줄게. 이제 좀 자자.”

“으으으~ 아아아~ 으아으아 음마~”

재하엄마는 한심하게 딸을 쳐다보다 신음처럼 한 마디를 뱉었다.

“.... 진짜 진상이다. 빚쟁이도 이런 빚쟁이가 없네.”

나도 덧붙였다.

“죽을 때까지 뽑아 먹을라나.”

재하는 굴하지 않고 계속 나에게 뜨거운 눈빛도 보내고 배도 까서 보여주며 안아 달라했다. 배도 까서 보여주었다. 아내는 자기 과부 된다며 딸을 막았다. 재하는 막무가내로 노래까지 부르며 매달렸다. 눈을 계속 마주치며 ‘아아아~’하고 웃었다. 아빠 보고 웃는 게 우는 것보다는 낫지만 좀 부담스러웠다. 온몸이 너무 아파서 그랬다.



몸살이 난 이유는 재하에게 코알라 귀신이 씌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꽤 자율적어서 안아주면 내려간다 했던 딸이었다. 그런 재하가 어느 순간부터 계속 나에게 앵기기 시작했다. 코알라 귀신이 빙의된 것이다. 아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자기 혹시 살면서 코알라에게 원한 살 일 한적 있어? 코알라 인스타에 악플을 달았다든가 그런 거.”

“본 적도 없어. 한 번 보고나 싶다.”

“자기 동물원 좋아하잖아. 과자 줬다 뺐고 그랬던 거 아니야?”

이렇게 코알라의 저주에 걸린 재하는 아빠에게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곰곰이 따져보면 애착이 형성되는 시기에 이사 갈 집 구한다고 외갓집과 집을 계속 왔다 갔다 해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관점으로 보면 아빠가 곧 키울 걸 생각하면 적절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무릎까지 아팠다.


나도나도.jpg 나도나도 같이봐...



다만 코알라 귀신에게는 천적 쮸쮸괴물이 있었다. 코알라 귀신은 쮸쮸괴물을 무서워했다. 쮸쮸괴물의 유혹에 넘어가 젖을 잘못 물었다가는 아빠에게 매달리지도 못하고 잠을 자야 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한 번은 쮸쮸괴물과 코알라 귀신이 서로 대판 싸웠던 적이 있었다. 물리려는 아내와 뿌리치려는 딸은 사투를 벌였다. 내가 다가가자 재하가 갑자기 외쳤다.

“암무거!!!”

“방금 안 먹어라 그런 거야? 말 못 하는 척하더니 잘하네.”

그동안 아빠 시켜먹으려고 말 못 하는 척했는데 급하니 본심이 나와 버린 모양이었다. 젖 안 먹겠다고 발버둥 치는 재하를 안으니 딸이 다시 옹알이를 시작했다.

“으으으~ 아부~ 으으”(쮸쮸괴물이 괴롭혔어. 놀아주지도 않고 쮸쮸만 줬어)

그때 이미 쮸쮸괴물은 지쳐서 쓰러졌다. 이번엔 코알라 귀신이 이겼다.



이런 재하를 확실히 웃게 하는 게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핸드폰이었다. 모든 집의 딜레마겠지만 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어느 날 재하가 내 전화기를 집어서 나에게 내밀었다. 아빠 것인 줄 어떻게 알고 주워주나 했다. 훗날 상처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다시 이재하천재교의 신도가 될까도 했다. 똘똘하다고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며 칭찬해 줬다. 그런데 재하는 아빠 뭐하냐는 눈빛을 보내며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알고 보니 화면을 켜달라는 것이었다. 액정을 톡톡 쳐서 불이 들어오면 자기 사진이 나왔다. 본인 얼굴을 알아보는 것인지 그렇게 뿌듯해할 수가 없었다. 전화기를 달라고 해도 내가 안 주면 자기 장난감을 하다 가지고 와서 내밀었다. 요새 재하는 ‘주세요~’에 재미가 붙었는데 나한테도 ‘핸드폰 주세요~’를 하는 모양이었다. 공짜는 아니고 자기가 애지중지하는 불 들어오는 공룡을 가지고 와서 바꾸자 했다. 표정이 다 말을 했다.

“으하아아~ 어무~ 하아악~ 꺄아~”(이거 내가 좋아하는 건데 아빠니까 주는 거야. 그러니 전화기 이리 내. 그리고 내 사진 빨리 보여줘)


핸드폰줘.jpg 핸드폰 빨리줘...아님 바지끈이라도 줘...



아기 얘기만 계속해서 그러니 우리 부부 사는 얘기도 좀 해봐야겠다. 나는 주방에서 일을 하면 꼭 앞치마를 매고 한다. 원래는 하얀 속 장갑에 고무장갑까지 끼고 했다. 다만 아기 키우다 보니 세제가 다 씻겼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요새는 맨손으로 하는 편이다. 내 성격이 이것저것 딱히 가리는 편이 아니라 신혼 초기에는 집에 있는 아무 앞치마나 썼었다. 그 앞치마에는 「빨간머리 앤」에 나올 법한 프릴이 달려 있었다. 그 앞치마를 입고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그랬다. 분리수거할 때도 그 프릴 앞치마를 매고 나풀거리며 나갔더니 아내가 변태 같다고 입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본가에서 가져온 귀여운 곰돌이가 달린 앞치마였다. 엄마가 당신이 아꼈던 거라며 소중히 쓰라고 줬는데 건조기를 하도 돌리니 곰돌이 인상이 많이 안 좋아졌다. 주인이 이리저리 굴려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찡그린 곰돌이 앞치마를 매고 있는 날 큰 처형께서 딱히 봤는지 폼 나는 데님 앞치마를 사다 주셨다. 공방에서 작가들이 입을 법한 앞치마였다. 뭔가 약간 무거운 것이 가장의 책임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걸 입고 큰 처형의 막냇동생과 조카 수발 열심히 들겠다는 다짐도 했다. 요리도 뭔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스팸도 태워먹었다.



그래도 우리 아내는 괜찮다 했다. 대신 아침마다 넥타이 말고 앞치마를 매 준다. 참 좋은 사람이다.

“자기야, 오늘도 힘내. 새 앞치마니 내가 매 줄게”

비록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지만 정말 괜찮다. 비싼 앞치마가 함께 있으니까. 문제는 아빠가 앞치마를 하고 있을 땐, 도의적으로다가 안아달라고 하면 안 되지만 코알라 귀신 놈은 그런 거 없다. 설거지하다 안아주고 그래야 한다. 전쟁 때도 적십자마크 보면 공습도 안 한다는데 재하는 분명 앞치마를 했는데도 규약 같은 건 지키지 않는다. 배후에 분명 와이프가 있는 것 같지만 확실한 물증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아침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오늘은 스페셜 게스트가 오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손님이 없다면 뒤가 없으니 힘을 아껴야 했다. 공중에 다섯 번 던져줄 거 두 번 던져주고 그래야 했다. 힘들어서 30분씩 나눠서 보자고도 해봤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재하가 똥을 싸고 그러는 바람에 결국 작은방에 셋이 옹기종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방에서 동요는 끊이지 않았다. 재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아빠엄마에게 올라타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두 문장 읽고 재하가 던진 블록을 주워오고 또 두 문장 읽고 재하에게 책 구기지 말아 달라고 사정했다. 아내는 춥다며 이불을 덮고 웹소설을 읽었다. 춥다고 한 건 재하 때문에 우리 집은 항상 에어컨을 틀어놓아서였다. 늘 23도 정도로 맞춰놓으면 재하 피부가 괜찮았다. 나는 쾌적하니 좋았는데 아내는 요즘 들어 많이 춥다고 했다. 그래서 에어컨을 줄이면 금세 덥다고 했다. 혹시 갱년기가 벌써 왔냐고 물어봤다가 손가락을 깨물렸다. 추웠다 덥다 하는 건 갱년기 초기 증상이라고 아침방송에서 본 것 같은데 말이다.



아내는 곧 출근한다며 다이어트해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초코우유를 끊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나는 당연히 이젠 물을 마시겠거니 라고 생각했다. 그게 상식적인 것 아닌가. 아내는 초코우유 대신에 커피우유와 딸기우유를 마셨다. 10칼로리나 차이 난다며 한 달이면 600칼로리는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꾸준하게 하면 효과는 확실할 것이라고 했다.

“... 그래. 장기적으로 보면 300g은 빠지겠네.”

참지 못하고 한마디 붙였다가 반대쪽 손가락도 깨물렸다.



그래도 요새는 아내 덕을 많이 본다. 바로 모기 때문이다. 나는 모기에 대단히 잘 물리는 체질이다. 강원도에서 군 생활할 때 산모기 알레르기로 팔다리가 퉁퉁 부어 있는 게 일상이었다. 요즘도 매한가지라 늘 모기에게 시달린다. 모기는 아기를 선호한다는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재하에게는 관심 없고 항상 나를 문다. 맛 집이라고 소문난 모양인지 한 놈을 잡아도 다른 놈이 와서 맛보고 간다. 내가 그렇게 뜨거운 사람인가 보다. 아내는 이런 나를 위해 매의 눈을 하고 모기채를 휘둘러 그놈들을 잡아준다. 새벽 세시쯤에 귓가에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면 아내를 깨운다.

“자기야, 모기가 있는 것 같아.”

“재하 데리고 나가 있어.”

아내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나와 딸을 내보내고는 한 손에는 전기모기채를 쥐고 방문을 닫는다. 그리고는 조금 후에 어김없이 ‘타다닥’하는 소리와 함께 든든한 한마디가 들려온다.

“잡았어. 들어와.”

모기 잡는 아내는 경찰특공대 같이 용맹했다. 솔직히 멋있다.


가족사진.jpg 입에 뭐 물고 있어서 볼록한 것 뿐입니다...



요새는 비가 많이 왔다. 그 때면 멍하니 밖을 봤다. 재하도 비 오는 날 안겨서 밖에 보는 걸 좋아했다. 우리 부녀는 종종 창가에서 비 구경을 했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재하의 아이를 안고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는 걸 상상했다. 괜히 감상에 젖어가는데 재하가 방귀를 붕붕 뀌며 응가를 했다. 그래서 바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뭐 그래도 순간순간이 너무 특별해서 뭐라도 안 쓸 수가 없는 것 같다. 다 기억할 수 없겠지만 몇 가지라도 잘 남겨놓아야겠다. 지금이 엄마아빠가 제일 행복할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