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자기
고민되는 것 두 가지는 역시 잠자기와 밥 먹기이다. 먼저 잠자기를 보자. 이제는 자다가 깨도 다시 자기도 한다. 가끔, 아주 가끔, 어쩌다 한 번 젖을 물리지 않아도 잘 때도 있다. 문제는 이것 말고 이재하의 잠자기에서 장점이 없다는 것에 있다. 딸이 하는 모든 진상 짓(?) 중에 최고봉이 잘 때 하는 짓이다. 일단 안 잔다. 자기를 싫어한다. 잠이 와서 눈이 벌건 데도 잘 수 없다고 손짓 발짓으로 저항한다. 지난번 한 친구가 자기애는 늦게 잔다고 했다. 동지를 만났다고 좋아했는데 열 시에 잔다는 것이었다. 배신감이 들었다. 재하는 열두 시가 다 되어야 잔다. 그때까지 논다. 졸린 어른들 붙잡고 소리를 치며 즐긴다. 불타는 월요일부터 계속 타는 일요일까지, 매일 밤이 불탄다. 아주 뜨겁다.
이불을 물고 도저히 못 자겠다고 용을 쓰는 딸에게 때때로 사정조로 애절하게 노래도 부르게 된다.
“난~ 난~ 눈을 감아요~ 이제 어둠이 밀려오네~”
딸의 눈을 손으로 감겨주며 주문을 외우듯 목 놓아 외친다. 그러면 갓 나오고 있는 조그만 앞니로 내 손을 물려고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아기 수면법에 대해서 나와 있었다. 어느 육아 안내서를 보면, 수면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식사예절을 안 알려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애가 잠을 안 자는 게 가정교육의 문제였다니. 그래서 그날 밤 재하를 재우기 위해 안눕법과 쉬닥법을 써 보았다. 약간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계속 ‘쉬~~’를 외쳤다. 딸이 잠들락 말락 한 사이에 아내가 갑자기 내 목소리가 웃기는지 빵 터졌다. 애가 깼다. 재하는 잠을 이겨낸 게 신나서인지 떡갈비 같은 발로 발차기를 했다. 결국 그날도 활활 탔다.
젖을 물려 재우는 게 수면법에서 하책 중에 하책이라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엄마가 가슴을 내밀어도 아예 재하가 받아주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몹시 화가 난 아내에게서 딸을 데리고 도망 나와야 한다. 그렇게 토닥토닥거리면서 30분(!!)쯤 지나면 재하가 그 정성이 갸륵한지 눈을 감아 줄 때도 있으셨다. 그러면 쓰다듬던 손을 살짝 빼서 야구 결과를 보려고 전화기를 들게 된다. 그 순간 어찌 알았는지 귀신같이 다시 눈을 뜬다. 나를 바라보며 눈으로 말했다.
“너 뭐하냐? 빨리 다시 쓰다듬어라”
밤새 놀아야지
한 번은 어찌어찌해서 재하가 열 시쯤 일찍 잠든 날이 있었다. 아까 슬쩍 본 야구가 연장전을 하고 있어서 결과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손을 조심조심 빼서 폰을 쥐려다가 바닥에 떨어뜨렸었다. 재하는 그 소리에 당연히 깼다. 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침대 옆에 무릎 꿇고 있어야 했다. 야구도 졌다.
아내가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이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딸과는 이불 공유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담배 한 개비보다 귀하다는 아내의 이불을 함께 덮다니!! 재하는 정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아내의 잠버릇은 옆 사람 이불을 약탈하는 것이다. 나는 수없이 이불 강탈을 당해왔다. 두 개를 따로 덮고 자도 아침이면 추워서 잠을 깨기 일쑤였다. 옆을 바라보면 원래 자기가 덮던 것은 침대 밑으로 던져놓고 내 것을 덮고 자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딸과는 함께 덮고 잘 잤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얼마나 위대한지. 아니 생각해보면 의지로 다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 아닌가? 글 쓰다 보니 갑자기 배신감이 든다. 아니다. 곰곰이 따져보면 딸 이불을 뺏을 때도 있었다. 재하는 조그만 수건을 덮고 잤는데 그걸 기어코 가로챘다. 성인에게는 방한 효과가 전혀 없는 크기였는데 말이다. 그런 것 보면 아내는 이불 노략질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여하간 재하는 엄마의 이불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걸 매번 차고 잔다.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자니 이불과 재하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3차원적으로 엎드려뻗쳐도 하면서 잤다. 잠을 제 때 자지 않은 자신에게 주는 얼차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리는 엄마에게 얹고 머리는 나에게 낑겨 넣고, 자다가 갑자기 앉고, 일어나서 서랍을 열고, 내 뺨도 때리고 그러면서 수많은 밤을 보낸다. 그나마 밤에 볼 만한 것은 부기가 빠진 재하의 얼굴이 예쁘다는 데 있었다. 부기가 가라앉아서인데 종종 안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말했다.
“재하야, 밤에도 부어있으면 평생 아빠랑 살아야 된다.”
낮잠 자는중...넉넉히 자자
기상 시간은 침대에서 자면 늦게 일어나고, 바닥에서 자면 일찍 일어나는 경향이 있었다. 재하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면 나에게 유리했다. 저녁잠이 많은 내가 밤에 헤매고 있으면 아내가 불쌍하다고 먼저 재워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 아내와 재하가 자는 시간에 어제의 야구 영상도 보며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재하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아내가 유리했다. 그러면 밤 내내 하얗게 불태워도, 남편이 일어나서 딸을 볼 때에 오전 잠을 잘 수 있어서이다. 아내가 오전 내내 자는 것은 밤새 웹소설을 봤다는 뜻도 되었다. 그 이야기도, 등장인물도 다 엇비슷한 소설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재하가 야행성인 건 무조건 지엄마 닮아서 일 거다. 가만 보면 부모의 안 좋은 점만 쏙쏙 잘 빼닮는다.
- 밥 먹기
아까 잠자기가 진상짓 갑이라 했는데 생각해보니 밥 먹기도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모든 자식들은 부모한테 패악을 부리며 사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마음 편하게 요새도 엄마한테 갑질 하고 있다.
항상 재하가 뭘 먹고사는 것인가 궁금하다. 잘 먹지 않아서 걱정이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먹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 있을 텐데 말이다. 엄마 젖은 잘 먹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건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충분한지 알 수가 없다. 분유는 여전히 태반을 버린다. 이유식은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먹는다. 빵이나 과일, 쌀 과자 같은 간식을 잘 먹기는 하지만 그건 주식이 아니다.
이제는 자기가 조금 컸다고 여기는지 낮에는 엄마젖을 잘 먹지는 않는다. 딸꾹질을 하면 보통 반자동 빨대를 이용하여 물을 먹인다. 그걸 거부할 때면 엄마가 젖을 물리는데, 꾸엑 하면서 토하는 척을 할 때가 있다. 자기를 재우려고 하는 줄 아는 모양인지 잘 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아내는 자존심 상한다며 데리고 가라 한다. 밤에는 낮보다 엄마젖에 대한 호응이 좋다. 대체로 밤에 분유를 포함한 밥을 더 잘 먹는 편이다. 다만 그때는 희망고문을 조금 해야 한다. 눈이 곰실곰실해져서 ‘아 이제 졸린가 보다’ 하고 엄마젖을 물린다. 순순히 꿈나라로 떠나나 했더니 눈을 번쩍 뜨곤 한다. 잠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딸의 희번덕한 눈을 통해 자주 목격한다. 그래도 새벽 내에는 엄마젖을 많이 찾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저귀가 가득 젖게 쉬야를 두어 번 하는 것을 보면 밤사이에 모유를 우리의 추측보다 많이 먹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포크물고 맴맴
내가 학부 때 전공한 통계학에는 1종 오류와 2종 오류가 있다. 나도 잘 몰라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1종 오류는 거짓인데 사실로 판단하는 경우나 효과가 없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고 2종 오류는 사실인데 거짓으로 판단하거나 효과가 있는데 없다고 결론 내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신약이 효과가 없다’라는 가설을 세운다고 치자. 이 가설이 ‘거짓’ 임에도 ‘참’으로 채택하여 약을 팔면 1종 오류이다. 그리고 이 가설을 ‘참’으로 판정하여 소위 빠꾸를 먹이면 2종 오류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남자에게 임신했다고 하는 경우가 1종 오류, 배에서 태아가 놀고 있는 여자에게 임신이 아니라고 하는 게 2종 오류이다.
분유의 세계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재하가 갑자기 ‘잉~’ 소리를 낸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딸이 배가 고픈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먼저 나를 매번 속여 먹이는 딸을 생각해서 ‘분유는 효과가 없다’라는 가설을 세우자. 그런 다음 두 가지 오류를 예상한다. 1종 오류는 배가 고프지 않은데 밥을 대령한다, 즉 분유가 효과가 없는데 탄다는 것이다. 2종 오류는 배가 고픈데 나 몰라라 하는 것, 즉 분유가 필요한데 타지 않는 것이다. 1종 오류의 경우 부부가 딸이 남긴 거 니가 먹으라며 서로 책임추궁을 하는 선에서 끝난다. 하지만 2종 오류는 배고픈 재하에게 할큄과 발길질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이다. 매번 이 고민을 하다가 분유 네 숟가락을 자주 낭비한다. 아무래도 그냥 타고 버리는 게 배고픈데 밥 안 주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재하가 ‘잉~’ 소리를 내자 벌떡 일어나는 나를 보며 아내가 소리친다.
“조금만 타 와. 120만 타 와. 아니 80만 타 와”
“시위를 떠난 화살은 돌아가지 않소. 쉬이이익~ 믿는다 180!! I believe~♪”
그리고 재하 엄마에게 등짝을 맞고, 남은 분유를 버려 수질오염이나 시키는 게 매일의 모습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우리 딸은 이제 분유 먹을 때 더 이상 얼굴이 빨개지지 않고, 숨넘어갈 듯 헐떡거리며 먹지 않는다. 토닥이지 않는다고 바로 게워내지도 않는다. 그게 어딘가.
표로 보는 분유의 오류
이유식은 잘 먹다가 안 먹다가 한다. 처음에는 아내가 직접 소고기도 갈아서 채소와 함께 묽게 먹였다. 그때는 나름 드셨다. 그러다 중기 이유식을 먹일 때 되니 곧 복직도 할 것 같기도 해서 사 먹이기로 했다. 집 옆에 동네에서 꽤 유명한 이유식 전문점이 있었다. 역시 우리 재하는 복이 많다고 생각하며 야심 차게 사 왔더니 손도 대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치즈를 섞어줘 봤다. 처음에는 먹는 척을 하더니 어느 순간 지능이 발달하며 치즈만 골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유식을 안 먹고 버티면 애달픈 애미애비가 치즈라도 따로 떼서 주는 것도 알았다. 그 이후로는 치즈에만 입을 쩍쩍 벌리면서 잘 먹고 있다. 병원에 정기 진료를 갔을 때 의사님께서 이유식을 꼭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마음이 또 급해진 애미애비가 시중에 파는 이유식을 이것저것 구해다가 먹여 봐도 결과는 신통찮았다. 남는 이유식은 내가 간식으로 종종 먹었다. 먹을만하던데 왜 그런가 모르겠다. 심심한 것이 맛나던데. 마음씨 좋은 작은 이모가 백화점에서 사 온 비싼 이유식도 처음에는 먹더니 나중에는 또 손도 대지 않았다. 처음부터 거절하지는 않는다. 입은 열어주었다. 작은 이모가 말하기를 입 벌리기는 1등이라 했다. 분유도 마찬가지로 오물거리는 먹는 척을 10분 넘게 했다. 그 노력이면 차라리 좀 먹겠다 싶었다. 주체적인 딸은 어거지로 먹이면 분이 나는지 입으로는 먹으면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 귀여웠다. 눈물샘도 발달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주먹질은 또 당했다.
재하 관계자들이 모여서 고민을 해봤다. 먹여본 이유식을 하나하나 꼽아보며 소거법으로 들어간 재료들을 하나씩 제거해보았다. 그랬더니 재하는 양파 냄새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양파 냄새가 안 나는 것 같은 이유식을 이나마 좀 먹었다. 문제는 그 밥을 먹으면 묽은 응가를 많이 하는 데 있었다. 그 이유식을 열심히 먹은 날 응가도 열심히 해서 ‘오똥이’를 했다. 한창때에는 ‘구똥이’도 했는데 나름 연차가 쌓인 이후에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이유식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떡뻥먹기
간식은 아주 잘 먹는다. 떡뻥이라 불리는 쌀과자도 잘 먹고 치즈도 잘 먹고 요구르트도 주면 주는 대로 먹고 과일도 먹고 빵도 먹는다. 감자는 엄마랑 이모들이 먹을 때 자기도 껴달라고 해서 먹더니 별 맛이 없었는지 자기 볼일 보더라. 덧붙여 내가 먹어본 바로는 소고기 호박 이유식이 떡뻥보다 맛나던데, 쓰다 보니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아무튼 떡뻥은 무척이나 유용했다. 재하는 어른들과 겸상을 무척이나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호기심 얘기를 예전에 했었는데 무엇보다 재하가 궁금해하는 것은 어른들의 밥상이었다. 엄빠나 이모들이 뭘 먹을 때 함께 먹고 싶어 했다. 상 위에 계속 올라왔다. 그전까지는 혼자 오리 장난감 때리면서 놀고는 했다. 이제는 옆에 내려놓아도 자존심도 없는지 다시 올라온다. 자기도 같이 먹겠다고 했다. 저번에는 통닭을 다 같이 먹고 있었는데 옆에서 질척거리길래 떡뻥을 하나 쥐어주었다. 그랬더니 자기도 겸상한다고 어찌나 흐뭇해하든지. 그 이후로 외식을 하거나 할 때 한 봉지씩 들고 가서 하나씩 먹인다. 어른들 밥 먹을 때 열 개씩 먹는다. 어머님 생신 때 잊어먹고 쌀과자를 안 들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떡뻥을 까먹은 죄로 재하 관계자들이 10분씩 돌아가며 안고 있었다. 떡뻥은 그 외에도 일단 목을 마르게 해서 분유를 먹일 때도 쓸모가 있었고,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도 알 수 있게 해 줬다. 바로 입으로 가지 않고 바닥이나 벽을 긁는 장난을 치면 그다지 출출하지 않은 거였다. 하기는 재하는 배가 많이 고프면 흐엉 하고 운다. 뭐 나도 밥 못 먹으면 손 떨리고 예민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나도 먹을래
요구르트도 잘 먹는데 한 번은 요구르트가 차가왔는지 폭풍 설사를 한 적이 있었다. 양이 많았는지 이불에 묻었다. 빨래를 해야 하는 나는 골이 나서 아내에게 말했다.
“차가운 걸 애한테 왜 먹였는지 고강도의 감찰을 하겠소!!!”
“잘됐네!! 이참에 직위 해제하고 대기발령해주시오!!!”
그래서 그냥 별 말없이 넘어갔다. 그 일 이후 아내는 자기가 사고만 치면 자진 직위해제하겠다고 노래를 부르며 협박을 한다.
- 씻기
하나 더 9개월 이재하에 대해 고찰해보자면 자주 씻겨야 한다는 점이다. 아기도 냄새가 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것도 많이 난다. 꼭 씻겨야 한다. 냄새부터 사람이 되어 갔다. 양말로 안 신는 아기가 발꼬랑 내도 났다. 목욕할 때는 당연히 머리부터 씻었다. 머리를 감기는 건 재하가 안 좋아했다. 얼굴이 당근이 되어서 짜증을 냈다. 해결책으로 불 들어오는 조그만 공룡이나 자동차 장난감을 사줬더니 나아졌다. 응가도 점점 되어져서 열심히 꼼꼼하게 씻겨야 했다. 응가할 때 재하의 특징이 있다면 슬그머니 보조개 웃음을 지으며 싼다는 거였다. 배변을 가르칠 때 응가를 하면 마구 칭찬을 해줘야 한다고 들었다. 그러지 않고 귀찮다고 짜증을 내거나 하면 응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 참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재하가 일을 보면 폭죽을 터뜨리며 환호성을 질러주었다. “우리 재하 최고네~”를 연발하며 박수를 쳐줬다. 그걸 보고 나니 똥을 싸면 칭찬받을 생각에 신나는지 아니면 뱃속이 시원해서 인지 아주 흐뭇해했다. 닦아주면 기분 좋은지 ‘아~아~’하며 소리도 지른다. 냄새도 진화했다. 똥냄새는 아주 어른이다. 잡식의 효과 같다.
똥싸기 직전
기저귀 차는 건 왠지 싫어했다. 기저귀 한 번 채우려면 홍역을 치러야 했다. 도망가고 뒤집고 발로 차고. 그건 팬티형으로 샀더니 얼추 해결되었다. 문제는 응가 치울 때 밴드형이 더 편리했다. 팬티형은 옆을 잘못 뜯으면 손에 응가가 쏟아졌다. 조만간 아내가 출근하면 재하를 혼자 봐야 할 것 같은데 고민이 많이 된다.
여전히 재하는 안아주는 것을 좋아하지만 종종 혼자 기어서 놀러 가겠다고 내려달라 한다. 그걸 보면 아홉 달 만에 딸이 많이 컸다는 걸 느낀다. 재하를 보면 살아내기 쉽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이 겹쳐진다. 지난날도 괜히 돌아보게 된다. 딸이 앞으로 많은 고민과 아픔을 겪어낼 생각을 하면 이 세상에 나오게 한 것이 잘한 것인지도 헤아려보게 된다. 하기는 그걸 지켜보며 응원하는 것도 부모일 것 같다. 하루하루 더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