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말로 설득되지 않는다>를 읽고
SNS에서 추천을 받아 산 책.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타인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고, 또 나의 여러 경제적, 사회적 상황과 신념의 불일치로 인한 인지부조화 때문에 고통 받은 사람으로서 이 책은 제목부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저자의 정치적 견해와는 비슷한 부분도, 다른 부분도 있었고, 읽으며 통찰력에 뜨끔한 부분도 많아 즐거웠다. 정치적인 인지부조화를 자주 겪었거나 토론의 힘을 믿은 사람들, 그리고 정치가 민주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실질적인 절차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아래는 스포주의!)
저자는 제목에서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듯이, 기존의 토론 방식으로는 정치가 발전할 수 없다고 본다. 저자에 따르면, 작게는 개인 간 정치적 논쟁부터 대선 토론, 그리고 그러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공론장 역할을 해온 인터넷에서조차, 토론, 즉 ‘정치에 대해 말하기’에서 기대되는 민주주의적 절차는 정치에 올바르게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나쁜 영향을 준다.
첫째로, 토론의 과정은 정치적 쟁점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 내지 입장 도출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또는 그로부터의) 공격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예시를 든 미국 대선 토론 방송은 미국 국민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정치 토론에 대한 그들의 기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실제로 대선 토론은 기존 지지자들의 지지율을 낮출 위험성만 있을 뿐 반대편의 유권자를 끌어당길 수 없으며, 토론은 대립과 갈등의 형태로 참여자나 관전자를 자극한다. 둘째, 그러한 토론이 이루어질 공론장이 권력 구조 아래 있어 평등할 수 없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을 잠시 올렸던 ‘대토론’에서도 참여한 국민 대다수가 고학력과 주택을 보유한 도심지의 중장년층이었으며, 전체적인 절차를 정부가 관장하고 제기된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아 비판 받았다. 인터넷 공론장으로 여겨져 온 트위터(현 X) 역시 마찬가지다. 종종 새로운 관점의 트윗이 노출되면 그 문제에 대해 잠깐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rage bait(분노 조장)성 트윗이 더 인기 있고 자주 공유된다. 이러한 특성은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고 이를 정치 선전에 사용하며 더 강해졌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이상적으로 갖는 기대와 달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토론은 1. 애초 반대편을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며 2. 이미 공론장은 자본가와 정치인에 의해 소유되었으므로 3. 공정성과 합리성을 담보할 수 없다. 즉, 친구와의 논쟁, 집단 시위, 토론과 같은 방식은 그 자체로는 정치에 유익한 모델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데 정말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지부조화를 해결하려는 행동과 공동체 속 사람들이다. 우리는 신념과 상황이 불일치할 때 심각한 인지부조화를 겪고, 이를 다시 일치시키기 위해 신념을 바꾸곤 한다. 예로 다인종과 함께 복무한 군인들은 복무 전보다 인종에 대한 편견이 감소했고, 동성애 혐오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한 사람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생각을 바꾸는 사례가 있었다. 물론 정치적 쟁점의 당사자성이 있는 사람들(이민자, 성 소수자, 여성 등)의 정치적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생각이 바뀌는 것은 아니고, 함께 공유하는 공동의 목표 역시 필요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오랫동안 지낸다면, 양극화와 극단주의로 인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이분법적인 주장이 아니라 모두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물리적인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커뮤니티 운동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가 양극화되고 신뢰 자본이 사라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 줄고 있다. 무료로 개방하는 놀이터나 공터를 폐쇄하면서 부유층이 개인 마당이 있는 주택을 선호하게 되고, 적대적인 건축물이나 공작물을 통해 거리에서 시위하는 노동자와 노숙자가 사라지면서 신뢰 자본 감소와 빈부격차가 강화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반대로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하고 그러한 공간을 시작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여, 나아가 공동체 의식이 생긴다면 결속력 있는 커뮤니티를 구축함으로써 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동의할 수 있고 흥미롭게 느껴졌음에도, 여전히 인지부조화로 괴롭다. 재건축 사업이 누군가에게는 분명 불합리한 일이고, 그 때문에 사람과 동물들의 집, 그리고 모두가 다닐 수 있는 수십 수백 가지의 길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지만, 결국은 아파트 담장을 높이는 것이 '시민'이나 '아이'를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도 느껴진다. 종종 빅이슈 잡지를 구매하고 후원을 알아보며 노숙자가 눕지 못하게 설계한 의자에 분노하지만, 정작 노숙자가 자주 보이지 않는 동네에서 노숙자를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여전히 MTF 트랜스젠더의 스포츠 대회 출전과 여성 공간 출입(여자대학과 탈의실을 중심으로)을 반대하지만 수많은 백인 이성애자 남자들, 보통의 한국 이성애자 남자들이 저지른 성범죄보다 그들의 범죄나 논란이 주목받는 것은 기이하게 느껴진다.
극상위층을 제외하고는 계층을 막론하고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 함께 섞일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은 줄고 정치인들 간의 토론 수준은 시궁창 같아졌고 (왕(王)자 윤석열, 펨코 이준석과 뭘 토론하는지조차 모르는 김문수) 그나마 국민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자리 역시 공평하지 않고 (이재명 취임 이후-여자는 다자녀 출산한 1명, 나머지는 전부 남자로 구성) 자본가들은 언론사와 미디어를 소유하는데, 전세계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것도 같다. 늘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나 차악을 고르고 미치지 않기 위해 종종, 아니 자주 합리화하지만 그래도 무력하게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읽었다. 읽으며 찔리는 구석도 많았지만, 이 책을 계기로 나의 인지부조화를 무시하지 않고, 정말 민주 정치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