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과거에서 읽어낼 진실 - 퓰리처상 사진전

전시와 지금의 한국을 생각하며

by 김오로라




“과거가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까?”


전시의 첫 마디다. 지난 겨울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감 인용으로 적지 않게 들어왔던 질문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해의 마지막에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구체성으로 다가왔다. 경험해볼 필요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일어나버렸으므로, 많은 국민은 권력과 학살의 역사에 대해 고민해야만 했다. 전시는 이런 말도 했다. “달아나지 않고 남아서 버텨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오랫동안 진실과 멀어져 달려오니, 지금 이 세대에 대가를 치룰 순간이 온 듯하다.




수상작들 덕에 여러 정치인들의 인상적인 사진과 해방 내지 희망의 아름다운 순간을 목격했다. 하지만 인상 깊었던 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수많은 학살과 기근의 장면이었다.


에티오피아 대기근 중 LA에서는 올림픽이 열렸던 사실이나 르완다의 내전으로 50만 명 이상이 학살되었다는 것. 이 상을 네 번이나 받은 여성 사진가이자 6•25전쟁을 취재한 마거릿 히긴스, <장벽에 막히다>라는 작품으로 한국인 최초 수상자가 된 김경훈과 사진 속 가족들의 뒷이야기에 대해서도.

<장벽에 막히다> 속 어머니는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디즈니 겨울왕국 엘사 티셔츠를 입고 아이들은 그녀의 손을 잡고 있다. 그 모습은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을 보여준다. 현재 미국은 트럼프가 재당선되었고, 디즈니는 이스라엘에게만 200만 달러를 기부해 팔레스타인 해방 진영에서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된 대기업 중 하나다. 다행히 사진 속 가족은 무사히 정착했지만, 여전히 미국은 꿈 같은 나라가 아니다. 이렇게 사진은 한 순간만을 포착했지만 여러 정치적, 개인적 상황을 제시할 수 있다.


김경준, 장벽에 막히다
마거릿 히긴스




가장 싫은 감정이 들었던 작품은 <더럽혀진 성조기>. 자유의 상징이었던 성조기가 인종 차별과 폭력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설명되는데, 흑인의 땅을 침략하고 노예 삼은 백인에게 자유라는 단어가 어울리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사진에서 성조기는 의미 그대로 쓰이고 있었다.

한편 가장 강렬했고 고통스러웠던 작품은 표류하는 시리아 난민을 포착한 <태양 아래 난민들>이다. 붉은 태양은 웅장하다 못해 저 멀리 작게 보이는 난민을 벌 주듯, 무력하게 보이게 했다.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추진하는 트럼프의 재당선 소식이 겹쳐 보였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끔찍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믿기 힘들었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두 전쟁, 정확히는 학살이 25년 현재까지도 지속된다는 것은 더더욱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하지만 세계 시민으로서 잊지 않고 직시해야 할 장면이기도 했다.


더럽혀진 성조기
태양 아래 난민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정지된 순간은 사람의 본능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침략, 학살, ‘선진국’의 과도한 개발로 인한 환경오염, 그에 따른 지구온난화와 기근, 내전과 차별 문제. 이중 무엇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 모든 순간이 흐르지 않은 채 우리의 시간에 멈춰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논란을 자아냈던 <독수리와 소녀>의 사진가 케빈 카터가 떠오른다. 그는 수단의 굶주린 아이와 그 뒤로 그 소녀를 노리는 독수리를 촬영했고 촬영 뒤 독수리를 쫓아냈다. 그는 수상 후 세 달 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죽음의 원인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유서에 따르면 극심한 ptsd를 호소했다고 한다.


독수리와 소녀




죽음과 폭력을 목격하는 일은 괴롭다. 사람이 죽어가고 차별받고 절규에 빠진 장면은 그다지 자세히 알고 싶은 순간은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과 직접적으로는 관련 없고, 그것이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일이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달아나지 않고 남아서 버텨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과거에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해야 하는 순간이. 지금이 그 순간이다. 우리가 사는 이 한국에서 내전이 일어나는 지금. 자신의 욕심으로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을 전부 무시하고 결국엔 위헌 계엄령을 내린, 직무정지된 우리의 대통령이 사병을 부리는 지금.

민주주의가 정지된 이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폭력을 마주하고 투쟁을 기록하는 것이다. 집회에, 전쟁에 나가 사진을 찍고 세계에 진실을 알리는 일은 분명 위험하며 이득을 가져다주는 일도 아니다.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진실은 합리성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홀로 하는 투쟁은 무섭고 외롭겠지만, 함께 모여 작은 순간들을 이어본다면 시간은 다시 흐를 것이다. 외로움과 공포는 온전한 과거가 될 것이다. 과거가 우리를 돕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현재를 완전히 직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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