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종료하고 나서
상담을 종료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다. 심리와 상담을 깨작깨작 공부하며 느낀 것은 내가 다른 분야의 공부를 더 재미있어 한다는 것뿐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학문적 적성과 별개로, 지난 나를 하루씩 이해하는 과정은 분명 기묘하고 즐거운 작업이었다.
사랑하면서도 밉게 행동했던 날, 두근두근한 사랑과 배려하는 사랑이 다르다는 걸 몰랐던 날, 꼴도 보기 싫은 사람에게 굳이 곱게 굴었던 날, 무책임을 예정하고 책임지겠다 선언했던 날, 한계가 열정인 줄 알았던 날, 거절하는 법을 몰라 화를 입었던 날, 외로움을 사랑으로 착각한 날- 그 모든 날들의 나와 비로소 눈을 맞춘다. 나에 대한 지식이 속 끝부터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스스로의 감정을 냉정 없이 바라보아도 괜찮은 날이 왔다. 서류를 찾으러 가 오랜만에 뵌 선생님은 내가 좋아 보인다고 했다. 얼굴에 여유가 생겼다면서. 병원에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녀는 “또 와요.” 하면서, “무슨 일 생기면, 와도 돼요.” 라고 빠르게 덧붙였다. 그 말을 아무도 모르게 가져왔다. 목 끝에서 울렁거림이 가시지 않는다.
여전히 가끔은 우울하다. 종종 학업을 회피하거나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하고, 모든 모서리 끝에 사물을 맞추며 창틀을 닦다가 브레이크가 걸리듯 멈추기도 한다. 친구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무시한다. 무기력하게 누워 울고, 관계의 시작과 끝은 항상 어렵게만 느껴진다. 때로는 남을 최대한 비열하게 비난하고 싶고, 삿대질이 무서워 지레 도망치고도 싶다. 어쩌면 모든 문제의 시초가 전부 나인 것만 같다. 사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술담배는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밀크티의 맛을 떠올린다. 공부에 집중하려 노력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 열심히 외운다. 그러나 알파벳이 내 삶의 등급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운동의 즐거움을 안다. 최선의 방어로 공격이 아닌 존중을 어렴풋이 실천하고 있다. 칼로 베듯 자르지 않아도 멀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좋아도 한걸음에 달려가지 않는 배려에 도전한다. 꿈으로 포장된 회피를 덮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의 손을 잡는다. 분명 나는 돌아올 것이다. 가장 순수하지 못하던 때로. 그러나 비좁은 틈을 벌리고 호흡하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상담은 내가 스스로를 돌보게 해주었다. 내게 건강하고 맛있는 것을 먹이고,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보여주고, 운동을 늘려가고, 나의 비뚤어진 감정과 샘솟는 즐거움에 대해 집중하면-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가 된다. 적어도 나 자신에 한해서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는데 상담이 필요할까요?“
”상담사가 정말로 나를 이해해 줄까요?“
”이 정도의 우울만으로 상담을 받아도 되나요?”
이 모든 질문에 정답은 없다. 운 나쁘게 좋지 않은 병원에 가게 될 수도 있고, 그저 잘 맞지 않아 차도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과나 상담에 대해 누군가 떠들 때 멈칫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 말이 자신의 머릿속을 자꾸만 어지럽힌다면, 그 목소리에 잠시라도 집중했면 좋겠다. 그 목소리는 어쩌면 스스로를 소중히 보살피고픈 자기 안의 마지막 마음일지도 모른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스스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책임지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