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여행 중 발견한 낡은 바에서
그날 밤은 오로라 헌팅을 막 끝내고 돌아온 직후였다. 일행들은 오로라를 보는 것이 자신들의 인생이나 여행의 목표인 양 행동하고 있었다. 더 잘 봤어야 했다고, 장비가 부족해 오로라를 제대로 찍지 못했으니 다 망했다고. 나는 그들이 오로라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는지 궁금해졌다. 무엇 때문에 생기는 자연 현상인지 나를 포함해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알려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그들은 오로라를 처음 목격한 이후로 어딘가에 홀린 듯이 그 빛무리에 더 집착하기 시작했다. 오로라는 늘 같은 곳에 있는데 구름이나 바람 때문에 육안으로 보이거나 보이지 않을 뿐이라던 가이드의 말을 듣고는 다른 일행들의 모습이 더 이상하게 느껴진 것도 있었다. 누군가는 작정하고 헌팅하러 가도 공을 친다던 오로라를 연속 삼 일씩이나 보고, 아이폰 덕에 사진도 잘 나온 내가 말하기엔 좀 무례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솔직히 오로라를 보고 대단한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의 흑야 현상처럼 이 북극권 지역의 특수한 자연현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헌팅할 때 본 별똥별이 더 아름다웠다. 홀로 소박하게 여행하다 밤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우연히 만난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노리고 질질 매달려 보는 오로라에 감동이 있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냐고 속으로는 생각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나를 향해 말했다. 오로라야, 너는 축복받은 거야. 오로라를 이 어린 나이에 봐서, 사진이 잘 나오니까, 혼자서 온 게 기특하다고, 살기 좋은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천주교 신자이신 한 할머니를 시작으로 어른들은 한 명 두 명씩 나를 부를 때 얘 오로라야, 했다.
투덜거리는 중년들 사이에 끼어 있다가 버스에서 내리니 갑자기 힘이 솟았다. 추운 곳에서 한참을 있었기에 혹시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냥 호텔에서 쉬려고 했는데 오늘은 어디든 혼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챙기러 방으로 가면서 미리 구글맵으로 봐 둔 몇 곳의 위치를 눈으로 대강 확인했다. 분위기가 이상하거나 별로면 바로 나가야지 생각하면서도 거울 앞에서 자꾸 화장을 고쳤다. 두근거렸다. 하나뿐인 향수도 옅게 뿌렸다. 방짝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호텔을 나서는데 바로 근처에서 음악 소리가 시끌시끌하게 들렸다. 소리 나는 곳을 따라가니 제일 가까이에 위치해 처음으로 가려던 술집이 나왔다. 모든 곳이 고요했지만 이 작은 바에서만큼은 소리가 직선을 그리며 삐져나오고 있었다. BASTARD BAR. 알록달록한 조명이 문짝에 크게 붙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가게 같았다. 반지하로 계단을 서너 칸 내려가 문가로 손을 뻗자 안쪽에서 먼저 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내게 눈인사를 하며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가게는 딱 기분 좋게 시끄러웠다. 하지만 목소리가 기타 소리에 완전히 묻혀 메뉴판을 손으로 가리켜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금방 오이 두 조각이 들어간 진토닉을 내어주었다. 잔이 머리 반만 했다. 멍하고 어색하게 바 자리에 앉아 있다가 무대와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시아인이 나 혼자였다. 사람들은 눈인사를 하기도 하고 흘끔거리며 쳐다보기도 했다. 옆의 젊은 여자에게 자리가 비었냐고 물으니 여자는 예스,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잠시 후에 귓가에 대고 말했다. 사실 나도 너한테 물어보려 했었어. 그녀는 웃으면서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앉아도 되지? 나도 예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엉성하게 자른 상아색 단발머리 사이로 화장기 없는 얼굴이 보였다. 옅은 미소만 달랑거리던 여자는 곧 내 이름을 물어봤다. 이어 어디서 왔어(한국에서 왔어), 오로라 보러 온 거야?(아니, 그치만 그 코스가 패키지여행 스케줄에 포함되어 있어서 봤어), 여긴 어떻게 알고 왔니(근처 호텔에서 묵는데 구글링 해서 찾아왔어)- 같은 질문을 쉴 새 없이 했다. 이름만 물어본 채 우물쭈물 대답만 하다가 나도 나중에는 그녀가 궁금해졌다. 전공이 뭔지, 어떤 일을 하는지 같은 걸 물어보니 여자는 수학을 전공하고, 수학은 뭔가를 암기하지 않아도 그저 이해만 하면 돼서 좋다며 지금은 노래를 한다고 답했다. 우리 서로의 것(전공)에 손대지 않아 다행이네. 대화는 느렸고 쉬운 문장 위주로 이어졌다. 배려하는 것이 중간중간 느껴졌지만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다. 성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컬 없이 드럼과 베이스, 기타와 피아노 소리가 배경처럼 들렸고 우리의 대화는 음과 음 사이의 경계를 이었다. 그러다 누군가 흥이 나면 갑자기 게릴라 공연이 생기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무대로 뛰어와 마이크를 집으며 제목 모를 두 곡과 퀸 노래를 불렀다. LP 같은 목소리라 듣기 좋았다. 약간 알딸딸한 상태에서 그 사람을 그렸다. 혹시 무례한 일일까 봐 혼자 수첩에 끄적이고 있는데 근처의 다른 사람들이 점점 내 그림에 관심을 가지며 질문 세례를 해댔다.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것이냐(그렇게 말해주어 고맙지만 그저 취미다), 저 사람을 그린 거냐(맞다), 다른 그림을 보여줄 수 있냐(여기...)면서 나를 둘러쌌다. 와중에 소매치기당할까 봐 여권과 지갑을 손으로 꼭 쥐는데 사람들은 내 낙서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자는 그사이 무대로 올라갔다. 무대에서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장난스럽게 씩 웃어 보였다. 공연은 10분가량 이어졌는데 그 노래가 여러 곡인지 긴 한 곡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허리에 전선을 감은 채로 마시던 맥주를 스피커 옆에 내려두었다. 탭 댄스를 추듯이 발끝을 좌우로 흔들고 어떤 때는 랩처럼 빨리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그 공연의 모든 것이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장르의 것이었고 그 이질감이 생생히 느껴지면서도 왜인지 거북하지 않았다.
여자는 무대에서 내려와 공연 때 기타를 치던 남자를 근처에 앉혔다. 그와 내가 공연 소리와 서로의 발음 때문에 통성명을 반쯤 실패하자 기타 맨은 옆 사람과 아무 말을 해대고 있었다. 그 사이 여자는 이상한 표정을 지은 채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사실 쟤랑 나는 데이트하는 중인데, 아니기도 해. 이상하지. 말을 끝내고 그녀는 입꼬리를 한쪽으로 올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동공이 차갑게 선명했다. 그 순간 누구라도 그녀의 표정을 봤다면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있다면 그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 하다못해 있긴 한 건지도 몰랐으므로, 나는 전혀 이상하지 않고 사랑스럽다는 진부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여자는 또 다른 표정을 지으며 사라졌다. 그녀는 다른 테이블에 자리 잡은 기타 맨의 무릎에 앉아 그를 껴안고 있었다. 그녀가 주위에서 사라지자 공연 때 찍은 동영상을 보며 그림을 그렸다. 한참 그림을 그리는 와중에 여자가 너무 보이지 않자 눈으로 그녀를 찾았는데, 문 바로 옆에서 겉옷을 챙겨 입은 그녀를 발견하고는 놀란 채로 달려갔다. 선물이야. 이거 나야? 묻는 여자는 너무 근사하다고, 사랑스러운 그림이라면서 스웨터 주머니에 고이 접어 넣고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함박웃음을 지은 채 남은 여행 동안 최고로 즐겁게 보내! 말하며 그녀는 기타 맨을 두고 다른 남자와 함께 떠났다.
바는 잠시 한산했다. 밴드 소리가 중간의 짧은 정적을 메웠다. 보컬을 찾는 피아노 맨의 목소리가 들렸고 노래 부르는 애들은 다 갔다고 누군가 소리쳤다. 목소리의 주인은 욕을 했다. 드러머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우는 시늉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금방 보컬이 나왔고 그 사람은 이 노래는 너를 위한 거야 영 레이디, 라면서 느끼하게 날 가리켰다. 웃기고 민망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는 누가 봐도 맥주 몇 잔은 마신 상태였고,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맥주잔을 들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공연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이 사람에게도 그림 선물을 했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면서 휴대폰에 끼워 넣고 다닐 거라고,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는 집에 갈 때 좋은 여행 되라면서, 휴대폰 케이스 안에 끼워진 종이 쪼가리를 보여주며 이곳을 떠났다.
또 다른 사람들이 부른 몇 곡의 노래가 끝나고, 가게 영업시간이 한두 시간 정도 남았을 때쯤 아까 그 드러머가 내게 다가왔다. 이름이 뭐냐고 묻길래 기대 없이 본명을 말하니 역시 발음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전 블로그 닉네임을 가르쳐 주었다. 시오. 쉬오? 쉬오. 그는 그 이름을 몇 번씩 발음하며 친구들끼리 부르는 이름이야, 아니면 닉네임? 하며 묻길래 나를 시오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이제 내 주위에 없으니 닉네임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닉네임이야.
그는 물었다. 한국에도 이런 데 있어? 무엇이든 불러도 되고 어느 때든 공연할 수 있는 곳. 나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여기가 너무 좋다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부러 불편한 상황을 만들려 하는 아나키스트 인권 투사가 된 기분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태어난 이래로 처음이야, 라는 말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오로라 보러 트롬쇠에 온 거야? 나는 오로라를 보긴 했지만 그건 이 패키지여행의 목적이었고, 나는 그저 최대한 멀리 떠나오고 싶어 이 지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왜? 거긴 별로야? 이곳에 오고 나서야 그곳이 별로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구리다고 답했다. 대통령이 트럼프의 코리안 버전이라고 덧붙이니 그는 진심으로 위로해주었다. 그러다 한참 펍을 칭찬할 때는 언제고 새삼 민망해졌는지, 그는 그래서 이딴 곳에 대체 왜 왔냐고 나를 장난스레 추궁했다. 여행 중에 제일 좋았던 건 뭐였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곳에 온 것이라 말했다. 거짓말. 진짜야. 진짜? 진짜. 이곳이 정말 좋아. 그때 뒷자리에 앉은 중동 아저씨들이 나를 불렀다.
있잖아, 쟤가 널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아까부터 너를 한참 쳐다봤다구. 이것 봐, 지금도. 드러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채 껄껄대며 웃었다. 드러머는 당황하면서 내게 저 사람들 말은 듣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괜한 말을 했다며 또 웃었다. 나도 웃으며 그에게 알았다고 했고, 내일도 여기에 오냐고 물었지만 그는 내일 스웨덴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러 가기 때문에 오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아쉬웠다. 애써 마음을 숨긴 채 그가 이곳의 인테리어를 설명해주는 것을 잠자코 들었다. 이거 무슨 뜻이게. 글쎄. “나는 OO이다”- 이런 뜻이야. 나는 몇 번 더 웃었고 그도 그랬다. 나 향에 되게 민감한데 너한테서 좋은 냄새 나. 고마워, 향수 이것밖에 없는데. 그래? 더 살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진짜로. 우리는 자꾸 서로만의 진짜를 강조했다. 가게 이름 무슨 뜻인지 알아? 아니, 몰라. 사생아라는 뜻이야, 멋지지. 그는 락앤롤- 하면서 웃긴 얼굴을 했다. 귀엽네. 귀엽다고? 여기서 누군가와 대화할 때는 바깥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모든 테이블에 하나씩의 비밀이 있었다. 트롬쇠의 낡은 바. 굳이 밖에 다녀오지 않아도 되는 나의 첫 번째 장소. 벌써 두 시야. 옷으로 몸을 동여매고 그와 함께 바를 나갔다. 어디로 가? 이쪽. 나도 이쪽. 이쪽이라고 해봤자 한 블록이니 열다섯 걸음이면 헤어질 예정이었다. 열여섯 걸음째에 그가 몇 시간 전의 나처럼 우물쭈물 물었다. 안아도 돼? 당연하지. 그는 생각보다 키도 덩치도 컸다. 까치발을 드니 내 몸이 그의 몸에 파묻히는 것 같았다. 한순간 추위가 사라졌다. 한참을 안고 있던 우리는 멋쩍게 인사했다. 안녕.
같이 여행 온 한국인들은 아무도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오로라라고 부르지 않던 이곳은 내 곁을 천천히 떠나갔다.
다음 날 밤, 나는 다시 바에 갔고 바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근처 오 분 거리의 다른 바에서 칵테일을 한 잔 마시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때 마신 펌킨 마티니가 종종 생각났지만 그보다도 얇게 잘린 오이 조각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일행들은 그날에도 오로라를 보러 잠도 안 자고 호텔 근처에서 죽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노래를 듣다 잠에 들었다. 자꾸 원 디렉션 노래 같은 유치한 걸 듣고 싶었다. 우리는 화요일마다 게릴라 공연을 해.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나는 중요한 무언가를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에 자주 휩싸였다.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