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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영 Feb 13. 2018

저돌적인 자세가 필요하겠군

손흥민이나 메시의 플레이를 보면 뭔가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체격 좋은 수비수 몇 명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도 발재간 몇 번, 어깨 싸움 몇 번에 마법처럼 골을 성공시킨다. 멀리서 빨랫줄 같은 중거리 슛을 쏘거나 헤딩으로 번개같이 득점을 한다. 


서두에 뜬금없이 축구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영어가 축구 경기와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스피킹을 잘하기 위해서는 손흥민의 저돌적 태도, 공격성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미국에 온 지 조금 됐지만 나는 여전히 긴 영어 문장을 만드는 작업이 아직은 어렵다. 한국말 하듯 주저리 주저리 하지 못하고, 내가 할 말을 미리 생각한 다음 문법 체크를 하고 나서야 완성형에 가까운 문장만을 내뱉는다. 그러다 보니 답변이 느리고 뉘앙스가 딱딱하고 표현이 다채롭지 못하다. 한마디로 버퍼링이 장난 아닌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은 내가 영어로 말을 해놓고도 놀랄 때가 있다. 정말 운 좋게 that 절이나 who 절 같은 표현이 연이어 떠올라서 뇌에서 문법 체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거의 실시간으로 길게 스피킹을 하게 된다. 이 경험은 굉장히 기분 좋은 경험인데, 컨디션이 무척 좋은 날이라는 뜻이다. 


이 경험을 잠깐 되짚어 보면 첫째, 내가 약간 용감해진 느낌이 든다. 높은 다리에서 겁없이 점프하는 사람의 심정이랄까. 뇌 한 쪽에서는 "문장을 생각 없이 함부로 시작하면 안돼"라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머뭇거리지 말고 일단 내뱉어"라는 생각도 든다. 


둘째, 한국말이 순간적으로 생각이 안난다. 그리고 영어식 표현만 생각이 나고 예전에 외워 두웠던 숙어 표현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영어를 말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평소의 내가 아닌 느낌도 든다. 


셋째, 발음과 억양에 어색함이 안 느껴진다. 사실 발음과 억양은 여기 와서 워낙 다양한 형태의 영어를 만났기 때문에 이제는 그렇게 신경이 안 쓰인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배워온 발음과 억양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충실하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순간적으로 영어다운 영어를 할 때면 이 고정관념도 생각이 안난다. 그냥 말이라는 것을 내가 상대방과 하고 있음을 스스로 발견한다. 


오늘 내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이 세 가지 중 첫 번째인 용감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느낌 중요하다. 일부러 이런 느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즉 내가 수비벽을 뚫고 슛을 멋있게 때리는 손흥민이 된 것처럼 영어 스피킹에서도 저돌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스피킹이 안되는 것 같다. 일단 주어 동사만 머리 속에서 떠오르면 말을 하고 봐야 하는 것 같다. 


축구 공격수가 처음부터 어떤 방향으로 공을 몰아서 어떻게 골을 넣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축구를 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골대에 골을 넣을지 아직은 안 정해져 있지만,  일단 공은 내 발에 있고, 실수하지 않으면서 전진하면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골은 넣게 된다. 영어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문장이 아직은 안 정해져 있지만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면 문장은 완성되기 마련이다. 어려운 표현이 생각 안나면 쉬운 표현으로 대신 하면 된다. 저돌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물론 내일의 나는 여전히 버벅거리며 조용한 아시아인으로 살아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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