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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엄마, 그건 아니야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아옹다옹 일상 돋보기 

“엄마, 그건 아니야.”

 가끔 나는 엄마랑 세대 차이를 크게 느낀다. 1970~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엄마에게 정치 권력이란 고스란히 독재 권력이다. 권위가 곧 권한이었던 시대였다. 돈은 어떤가. 다같이 못 사는 시대였다지만 누군가는 돈을 벌었다. 권력에 줄을 대던 사람들, 아직 체계가 서지 않았던 법을 피하고 이용했던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엄마가 산 시대를 나는 공부했지만 체감한 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엄마 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진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을 대하는 시각 차이가 크다. 솔직히 나는 이게 꽤 안타깝다.  

 지난해 연말 저녁 뉴스를 보고 있는데 엄마랑 싸울 뻔 한 적이 있다. 그날 사회 기사 중에 주목을 끈 것은 한 대학병원의 간호사들이 그 병원장, 의사들 앞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걸그룹 댄스를 추도록 요구당했다는 보도였다. 나는 뉴스를 보면서 (늘 그렇듯이) 욕을 했다. 

 “뭐 저런 미친 놈들이 다 있어. 지금이 어느 시댄데.”

내 옆에서 빨래를 개던 엄마가 TV를 슬쩍 보더니 말했다. 

"어른들이 장기자랑 좀 하라고 한 걸 뭐 그렇게 문제라고..."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이런, 내가 방금 욕했던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였다니. 기분이 묘했다. 놀랐고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나는 이런 걸 가만히 두고 넘어갈 성격이 아니다. 

 “엄마, 간호사들을 성적 대상으로 본 거 잖아. 지들이 뭔데 지금 시대에 저런 잔치를 하면서 즐겨. 거기다가 걸그룹 댄스가 무슨 말이야. 보고 즐길 게 그렇게 없나.”

 엄마가 나의 분노를 감지했다. 아니 그냥 다같이 웃자고 하는 건 줄 알았지라며 말을 흐리는데 그건 내 눈치를 봐서 하는 말이었다. 엄마는 남자에게 여자가 해줘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앞장서고 여자가 뒤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빠랑 살 때도 그랬고 오빠를 생각할 때도 그랬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었다. 

 “일단 병원장, 의사라는 권위를 이용한 게 잘못이야. 같이 일하는 동료로 존중해야지. 간호사가 의사 기분 맞춰주라고 있는 거야? 그리고 병원장이나 의사들이 대부분 남자였다잖아. 남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여자 간호사들보고 즐기겠다는 거 아냐. 선정적인 옷차림 강요하면서. 저런 놈들은 창피한 줄 알아야 해.”

 주제는 여자가 하는 일에도 성역이 없다는 쪽으로 번졌다. 엄마에게 가장 익숙한 소재를 고르기로 했다. 나도 성당을 다니지만 평소에 궁금했던 지점을 예로 들어보았다. 

 “엄마, 나는 솔직히 가톨릭도 너무 성 역할을 고정하고 있다고 느껴. 마리아는 아들 때문에 기쁘고 아들 때문에 슬퍼. 마리아 개인의 삶은 우리는 모르잖아. 그리고 왜 미사 전후 제대 정리는 수녀님이 다 해줘야 해? 여자는 신부가 될 수도 없는데 말야. 따지고 들자면 그래.”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싶었지만 그냥 다 말해버렸다.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네. 그렇게 성당을 오래 다녔는데 난 한번도 그런 생각을 안 해봤어.”

 엄마 세대를 안타깝다고 느끼는 건 다른 생각이 가능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엄마 세대에서 여성은 너무 많은 걸, 당연하게, 양보하며 살았다. 엄마도 진학할 때마다 외할아버지 눈치를 그렇게 많이 봐야 했고, 그래서인지 동네 여자친구들 중에는 초등학교만 나온 이들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엄마가 배움에 대해 목말라하는 걸까. 그런 엄마를 보면 화가 난다기 보다 그렇게 생각을 굳혀야만 했던 시대를 버텨왔을 엄마가 안쓰럽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못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불공평하다. 회사에서 가끔 보이지 않게 남자를 우선하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여기자들끼리 모여 어떻게 우리의 의견을 전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남자 기자들이 우리를 무서워하는 것 역시 또다른 차별로 느끼며. 하지만 엄마가 어렸을 때처럼 나약하지 않다. 나는 이 방향으로 세상이 변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오른쪽 그림은 파키스탄의 여성 교육 운동가 말랄라이다. 하교길 버스 안에서 총을 맞았다. 치료를 받기 위해 영국으로 왔으며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해 싸우고 있다. 신변 위협때문에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지 못 하고 있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 사진은 지난해 출장다녀온 영국 런던의 언더그라운드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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