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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박 Jan 12. 2022

살면서 한 번은 만나는, 미세스 미저리 이웃 1

세계 곳곳에 숨어있는!


그녀는 나름 멋진 은발을 하고 있었다. 가을에는 머리에 빵모자를 얹거나 멜빵바지를 입고 엔틱 한 자세로 동네 앞을 쓸기도 하고, 그 앞을 지나가는 내게 풍요로워 보이는 미소로 대뜸 다가와 아는 척을 하는 날도 있었으며, 크리스마스에는 잊지 않고 세계의 모든 맛을 모아논 종합캔디에 별을 달아 내게 선물했다.

간호사였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우리 집 베란다 밑이 그녀에겐 천장인 그 노르웨이 할머니는 삐에로처럼 화창하게 웃으며, 조금이라도 자기가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우리 집 초인종을 냉큼 눌렀다. 참고로 우리 집은 4 세대가 살 수 있는 연립주택식인데, 전원주택이 많은 노르웨이에선 흔치 않은 주택형태다. 우리 집은 2층, 할머니 집은 1층이다.

처음 이 블록에 이사 왔을 때는 할머니는 커튼 뒤에서 쓰윽 그림자처럼 나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 눈에서 날카로운 표창 같은 빛이 내 이마에 꽂히는 듯했다.

할머니의 컴플레인은 우리집이 이사 오자마자 시작되었다.

노르웨이, 이곳에서 외국인인 나는 웬만하면 이웃과 좋게 지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처음엔 그 불만들을 천사의 깃털이 달린 볼펜의 마음으로 접수했다.


날씨가 화창한 어느 여름날, 베란다에 빨래를 말리던 나는 딩동거리는 벨 소리에 문을 열었고, 할머니가 삐에로처럼 웃으며 서있는 걸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대뜸 할머니 왈, 베란다에 빨래 널지 말란다, 보기 싫단다. 우리 집 베란다에 내가 빨래 널겠다는데 자기가 무슨 참견? 그때 잠깐 헷갈렸던 게 노리지안들은 베란다에 빨래 안 널고 건조기에 다 말리나, 그러고 보니 인테리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노리지안들이 베란다에 빨래 널어놓는걸 눈살 찌푸릴 수도 있겠다 싶은 맘이 1초 정도 스쳤다.(노리지안들 다 빨래 베란다에 넘. 오히려 코리안보다 남 눈의 식 더 안 함) 해튼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 할머니 뭐지 이럼서.

 

노르웨이 여름은 첫사랑처럼 짦고도 찬란해서, 베짱이처럼 맘껏 놀아야 한다.

그 당시 8살쯤 되는 아들이 친구들과 물총 싸움을 주택 앞에서 하고 있었다. 우리 블록 옆에 달린 공용 수도꼭지가 있고, 거기서 물총에 물을 채우면 되는데 애가 자꾸 집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물총 싸움을 안 하겠단다. 일층 할머니가 물세 나가니 집에 가서 물을 한 바케스 받아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미친 노친네가 다 있나 싶어 뛰어내려 가니 여전히 그 삐에로의 웃음으로 날 반겨준다. 물은 공용으로 쓰는 거라 화단이나 청소 등으로 써야지, 애가 물총 싸움으로 쓰는 물은 공용이 아니라 안됐지만 쓸 수 없단다. 애가 물을 얼마나 쓰길래 이러냐니까 바닥이 벌써 다 젖을 만큼 썼단다. 그래, 물 세 아껴서 천국 갈 때 보태쓰쇼, 혼자 속으로 말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더 기가 찼던 건 그다음 날이다. 다음날이 일요일인데 비가 왔다. 애가 비가 오니까 심심했던지 베란다로 가서 어제 못 다 쏜 물총을 베란다 밖으로 쏘고 놀고 있었다. 우리 베란다를 집주인인 우리가 쓰는데도, 조그만 소리에도 고개를 콩나물처럼 내밀고 올려다보는 밑층 할머니 때메 은근 스트레스였다. 아니나 다를까, 은발의 미저리 할머니는 물총놀이하지 말라고 우리 아들에게 한소리 했다, 그 으스스한 웃음을 한 체로. 자기네 베란다에 물 떨어진단다.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차피 비 오는 데 거리에 물총 쏘고 노는 게 왜 불평인지, 물총이 아니라 폭탄을 던지고 싶었다. 인종차별인가, 유톡 동양인인 나한테만 그러는 건가 싶어 그날부터 설문조사에 나섰다. 옆집 돌싱녀 마리안네도 그 할머니 떼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라 이사 갈 궁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가 집에 늦게 오는 날이라도 있으면, 계단을 올라오는 자기 발소리를 듣고 할머니네 문이 왈칵 열리며 왜 늦게왔냐고 묻는단다. 내가 이사 오기 전에 울 집에 살던 게이 커플은 할머니 떼매 이사 갔다고 나더러도 조심하란다.


(오늘은 여기까지... 투 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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