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풍인가? 극한체험인가?

인생은 쓰지만 달다.

by 노래하는쌤

나에게는 소풍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연인과 함께 도시락을 싸서 기차를 타고 떠나는 소풍.

나는 창가에 앉아 연인의 어깨에 기대어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손에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들려 있고, 우리는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서로에게 음식을 먹여주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며, 눈을 마주치면 괜히 웃음이 난다. 바닷가를 걸으며 햇빛에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는 장면까지, 그 모든 순간들이 하나의 장면처럼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


그 로망을 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데이트를 하자는 연인의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우리 기차 타고 소풍 갈까?”


그 한마디는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이 되었다. 행선지는 소양강이었다. 이름만으로도 어딘가 낭만적인 느낌이 들었고, 그곳이라면 내가 상상하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만 같았다. 도시락도 정성껏 준비했다. 연인이 가장 좋아하는 김치볶음밥. 뚜껑을 여는 순간 “와…” 하고 감탄하는 모습까지 이미 머릿속에서 여러 번 재생해 두었다. 적어도, 도착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문제는 날씨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바람이었다.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며 ‘조금 세네’ 싶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도착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서서히 현실로 바뀌기 시작했다. 바람은 점점 거세졌고, 내가 그려왔던 ‘돗자리 위의 한가로운 식사’는 점점 현실과 멀어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결심하듯 말했다.


“일단 먹어. 밖에서는 못 먹겠다.”


연인은 말없이 김치볶음밥을 받아 들었다. 그 표정에는 묘한 비장함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여유도 없이, 도착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듯 빠르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상상하던 느긋한 장면과는 전혀 다른, 어딘가 급박한 식사였다. 그 순간, 이미 우리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소풍이 내가 꿈꾸던 모습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소양강에 도착했을 때,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이건 소풍이 아니라 태풍이구나.”


말하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의 바람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바람은 머릿결을 살짝 스치는 정도였는데, 현실의 바람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때리는 수준을 넘어 몸까지 휘청이게 만들었다. 그래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매의 눈으로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적어도 과일 한 조각 정도는 먹으며 사진 한 장쯤은 남기고 싶었다. 어렵게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펼쳤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돗자리는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넘어서 우리 몸을 감싸며 실루엣을 드러냈고, 앉아볼 틈도 없이 우리는 동시에 돗자리를 다시 접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그냥 걸을까?”


우리는 손을 잡고 바닷가를(정확히 말하면 강가)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그 선택이 결코 낭만적인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의 감각은 점점 사라졌고, 귀는 시리다 못해 아릴 정도였다. 바람은 여전히 거셌고,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기차 안에서부터 내 눈치를 살피던 연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이상하게도 참을 수 없이 웃음이 터졌다.


“오늘 이거 맞아?”


연인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어, 맞아. 그냥 대충 때려 맞췄으면 맞는 거지.”


연인도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웃더니, 그러다가 나처럼 크게 웃었다.


“우리… 왜 걷고 있지?”


“낭만 찾으러 소풍 왔다가 극한 체험 중인 것 같은데?”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완전히 엉망이 된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게 우스워졌다. 결국 우리는 더 버티지 못하고 근처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따뜻한 공기가 우리를 감싸 안았다. 그 짧은 순간이 그렇게 행복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떡볶이와 김밥, 그리고 어묵 국물이 눈앞에 놓였고, 우리는 말없이 따뜻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특히 어묵 국물 한 모금은, 정말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없이 어묵 국물을 먹던 우리는, 결국 또 동시에 웃었다.


“우리 집에 가는 기차 시간… 앞당길까?”


문제는 밖에 나가자마자 다시 시작되었다.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거세진 바람. 결국 우리는 지하상가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겉옷까지 사 입었다. 소풍을 왔다가 옷을 사 입는다는 건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사실 어떤 계획에도 없던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기차를 타고 소풍을 떠나지 않는다. 로망은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후회는 없다. 그날은 분명 완벽하게 망한 하루였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웃긴 하루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 그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그때 거의 날아갈 뻔했잖아.”


그러면 남편은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도 김치볶음밥은 맛있었어.”


맞다. 결국 남는 건 그런 순간들이다. 매서운 추위도, 거센 바람도, 도망치듯 들어갔던 작은 분식집까지도.

그 모든 순간마다 함께 웃던 당신이 있었기에, 그날의 기억은 조금도 시리지 않다. 돌이켜보면, 그날은 우리가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웃었던 순간이었고, 서로의 계절이 되어가기 시작한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안다. 그날이야말로,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된 가장 행복한 봄소풍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