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주제를 정하던 날로부터 지금 이렇게 글로 토해내기까지 수십, 수백 가지의 기억을 추려가며 고민을 거듭했다. 보통의 경우 소풍이란 대개 즐겁거나 엉뚱하거나 배꼽을 잡을 정도의 에피소드들을 다룰 터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딱히 떠오르지를 않았다. 머릿속이 마치 거대한 개미굴처럼 얼기설기 복잡하게 이어져 생각의 뿌리가 길을 잃은 것인지, 아니 어쩌면 아무도 찾지 않은 어느 먼 나라의 늪지대 속에 빠지기라도 한 것인지. 대신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가 그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는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 아름다웠는 말을 하겠다고 했다. 아름다웠단다. 표면적인 부분만 놓고 보자면 삶을 소풍이라고 표현할 만큼 사랑했구나 싶다. 어떻게 살아야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죽음을 앞두고 거친 숨을 토해가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는 그 순간이 와도 그는 그렇게 말할 것만 같다.
고등학생 때 수능을 준비하며 참고서에서 본 그 시는 한 글자, 한 글자씩 해부되듯 풀이되었고, 문장마다 수학문제의 정답처럼 계산된 의미가 붙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 해설을 그대로 암기하면서도, 그 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까진 생각해보지 못했다. 단순히 시험을 위한 글, 그 정도였을 뿐.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지문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시가 자꾸만 떠올랐다. 이런 표현은 그분께 죄송하지만 마치 눈앞을 떠다니는 하루살이 같았다. 휘적휘적 손을 저어도 다시 나타나고, 신경 쓰지 않으려 할수록 더 또렷해지는 존재. 결국에는 피하지 못하고 마주하게 되는 어떤 것.
지면 위에서만 보던 그때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 문장들이 놓여 있는 자리와 내가 서 있는 지금 이 위치 사이의 간격을 떠올렸다. 이론적으로는 이해했지만, 그 말이 내 삶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알지 못했다.
돌아보면 내게 삶은 한 번도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하루처럼 느껴진 적이 없었다. 선택에 대한 고민보다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였던 내 삶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보다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계산해야 하는 내 삶이 그랬으니까. 주머니 속의 무게는 언제나 수면의 양을 정했고, 타인에게서 비롯되는 눈치는 발끝의 방향을 바꿨다. 나의 숨소리가 어떤 패턴을 가지고, 어떤 높낮이를 가지는지. 눈알이 구르는 소리마저 느껴질듯한 내 삶의 방 안에서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크기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대략 십이,삼년전쯤이었을까? 예능 프로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얇은 방문을 통과해 들어왔지만 내 귀에는 닿지 못하고 창밖으로 흩어졌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방 안을 비췄지만 가슴에는 닿지 못하고 낡은 장판을 적셨다. 분명히 창밖은 벚꽃이 만개하였건만, 누렇게 시든 목련같은 내 목은 자꾸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무중력의 공간을 떠다니는 사람처럼 어정쩡하게 앉아, 나는 손에 쥔 펜을 움직였다.
"날 용서하지 마세요. 나는 오늘로 소풍을 끝냅ㄴ…"
그날은 삶의 끝을 계획했던 날이었다. 눈이 부실 만큼 하얀 종이를 펼쳐놓고, 내가 사라진 이후를 떠올리며 글자를 하나씩 눌러 적어 내려갔다.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흔한 표현보단 스스로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기 위한 고백쯤이었다.
수많은 백색소음들 사이로 진동음이 들렸다.
'아직 다 쓰지 못했는데…'
소리를 따라 휴대폰을 찾았다. 분명히 가까이서 울리는데 보이지 않았다. 이불을 들춰보니 아이의 인형이 있었고, 서랍을 열어보니 애착이불이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아이의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는 방향마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 이제 막 세 살이 된 내 아이가 나를 보고 달려와 무릎을 끌어안았다. 작은 손바닥 안에 내가 가득 들어찼다. 열 손가락이 전부 나를 붙잡았다. 그 작은 몸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나를 데운다.
시계를 보니 저녁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거품을 풀고 아이를 앉혔다. 꼬막같은 조그만 눈동자 속에 내가 비쳤다. 낯설 정도로 초라한 얼굴이었다.
욕조 안의 고무오리가 물을 튀기며 흔들렸다. 튄 거품이 뺨에 닿았다. 코튼 향이 옅게 퍼지며 천천히 흘러내렸다. 아이는 깔깔 웃었다.
그 웃음 속에서 나는 천상병이 되었다.
내 삶도 소풍처럼 아름다웠다고 말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