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 그것이 뭣이 중헌디
물론 요양원에 다 좋고 나이스한 할머니들만 계신건 아니에요. 뭘 하든 '나부터 해줘라'를 외치는 욕심쟁이 할머니들도 있고, 툭하면 옆에 있는 할머니한테 어휴 냄새나 바보;;라고 하는 할머니도 있고요. 전에 직업이 간호사였다시며 정말 왕고참 선배가 햇병아리 후배 다루듯 행동 하셔서 요양원 간호사들에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투척하시는 할머니도 계십니다. 그럼 우리 직원들도 사람인지라 아무래도 호불호가 생기게 되고 말지요. '호'의 할머니들에겐 먼저, (휠체어) 밀어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 하고 친근하게 말을 건네게 되는데, '불호'의 할머니들에겐 딱히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먼저 나서서 말을 걸거나 하진 않게 되어버립니다.
내가 일하던 요양원에 새로 일본 할머니 한 분이 들어 오셨는데, 처음 오셨을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했더니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금새 직원들 사이에 '불호'로 자리매김을 하셨습니다. 게다가 할머니께서 치매 증상이 있고, 영어를 전혀 못 하셔서 상황이 더욱 나빴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직원들이 더욱 힘들어 했고 덕분에 나는 이리저리 통역에 끌려다녀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다른 거주자 분들과 말다툼도 자주 하셨고, 그룹 활동시간엔 자꾸 "점심 먹으러 가야 되는데 다들 이러고 있다"라든지, 다같이 노래 부르는 시간엔 "자기들 좋아하는 노래만 부른다"라는 등의 불평 혹은 심통을 부리셨습니다. 오늘의 뉴스를하고 있는데 혼자 발을 구르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시기도 하시구요. 보통의 의사 소통은 조금 힘든 상태였습니다.
할머니는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본인의 의지로 요양원에 들어온 것이 아닌 듯 싶었습니다. 자주 자녀분들께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며 오늘 내로 안오면 혼자 여기서 나가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셨고, 가족들이 왔다가 돌아갈 땐 같이 데리고 가달라며 문 앞을 막아 서시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돌아가고 나서는 한참동안 본인의 방에서 창밖을 바라 보고 앉아 계셨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보고 있자면 외롭고 서글플 할머니의 마음이 걱정되기 보단 빨리 적응하셔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할머니가 빨리 환경에 익숙해져야 직원들이 편해지고, 직원들이 편해져야 내가 덜 불려다닐 테니까요. 할머니는 그냥 수많은 거주자들 중 한명일 뿐이잖아요.
그러던 어느날,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간호사가 부탁을 해왔습니다. 새로 온 할머니 샤워 날인데 당최 고집을 부리신다고. 저번 텀에도 안하고 넘어가서 오늘은 꼭 하셔야 하니 가서 좀 말해 보라고. 방에 가 보니 할머니는 여전히 창 밖을 바라보고 앉아 계셨습니다. "뭐하고 계세요? 밖에 뭐 있어요?" 하고 말을 걸며 들어서자 이미 간호사, 간병인들과 한바탕 하시고 난 후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퉁명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셨습니다. 싱거운 몇 마디 더 건네다가 그냥 툭 던져봤습니다.
"근데 할머니 오늘 샤워하시는 날이라던데...?"
그러자 대번에 날선 눈빛이 날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곧 그딴거 필요 없다 하시며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하지만 나도 이 바닥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 이대로 순순히 물러 설 수는 없습니다.
잠깐의 정적 후,
"근데 샤워 안 하면 다른 할머니들이 싫어라할텐데..."
를 시전해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눈썹이 꿈틀 하고 움직이더니 곧 지팡이를 치켜 올리며 "샤워 안 안할거니까 돌아가!! 안그러면 때릴거야! 진짜로 때린다!"하고 외치셨습니다. 이에 살짝 꼬리를 내리며 "알겠어요, 알겠어. 그럼 다음에 해요"라고 항복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러자 진작에 그럴 것이지 하는 표정과 함께 팽팽했던 긴장이 순간 누그러졌고 나는 그 틈을 타,
"근데 아까 아드님이 우리 엄마 오늘 꼭 목욕 시켜주라고 전화 왔는데."
라고 하는 치트키(자녀 찬스)를 사용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크게 멈칫 하셨습니다. 속으로 앗싸를 외치며 "그럼 나 가서 아드님한테 전화해요? 어머니 오늘 샤워 안하신답니다 하고?" 하니 할머니가 급격하게 풀이 죽은 얼굴이 되어 조그만 목소리로 말하셨습니다.
"...그치만 사람들 앞에서 알몸이 되는건 정말 싫단말야.."
할머니는 그 날 결국 샤워를 하러 가셨어요. 다행히도 정말 친절한 간병인 아주머니들이 담당하는 날이라 안심하고 할머니 손에 샤워 바구니를 들려보내드렸지만, 참으로 마음 한구석 씁쓸했습니다. 나는 할머니를 그저 말 안 듣는 어린아이 취급하며 그렇게 다그쳤던 것 이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맴돌았습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고 한들 누군가 내 알몸을 보고 내 몸을 씻겨 주는게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을텐데, 할머니의 감정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치만 사람들 앞에서 알몸이 되는건 정말 싫단말야'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와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 할머니들에게 기계적으로 대하는 직원들을 보며 참 나빴다 했던 나인데... 점점 무뎌지는 마음을 다잡고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다시 한번 되내었습니다.
그저 수많은 거주자들 중 한 명이 아닌
그들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Loved one'이라는 것,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