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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식이 Mar 13. 2016

말괄량이 삐삐도 늙어 요양원에 왔다.

Barbara



        Barbara는 비교적 최근에 널싱홈에 들어왔습니다. 80대 후반의 나이로 밴쿠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전형적인 Japanese-Canadian이고요. 신기하게도 Sue와는 어릴 적 밴쿠버에서 같은 동네에서 자랐다고, Sue의 여동생과 Barbara는 절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성격도 밴쿠버 출신들은 다 그런가 Sue마냥 매우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고 쿨한데, 또 Sue 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의, 말괄량이 같고 장난꾸러기 같은 면이 되게 많이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전체적으로 기분 좋게 특이한 느낌인데, 그 유전자는 어쩔 수 없는 듯 어느 날 찾아오신 처음 보는 중년 남성분의, 입고 계신 연분홍 바지가 심상치가 않아 ‘혹시 바바라…?’ 했더니 ‘응, 우리 엄마.’ 라길래, 오 역시.


        그런 그녀는 지금도 여동생이 한 번씩 와서 같이 라인댄스를 갈 정도로,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젊은 시절을 보낸 듯 합니다.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에어로빅 옷 같은 쫄쫄이, 후레쉬맨 포즈를  아주머니들의 단사진이 방안 곳곳에 장식되어 있으므로 쉬이 그녀의 젊은 날을 그려낼 수가 있죠. 하지만 신체적으로는 아직도 워커(할머니들이 밀고 다니는 바퀴가 달린 보행보조기)나 지팡이조차 필요가 없을 정도로 건강하신데 반해, 조금 많이 깜빡깜빡하시고, 현재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지 능력이 떨어지세요. 그래서 처음 한동안은 나 오늘 저녁에 집에 돌아간다며 모두에게 굿바이 인사를 하고 다니셨습니다. 사실 지낸지 몇 달 된 지금까지도 자주 그러십니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기가 참 어려웠더랬습니다. 자꾸만 나 이따가 집에 가야 돼서 짐 싸느라 바쁘다고 그러고, 데리러 올 여동생 기다려야 된다고 하고. 그래서 한동안은 Sue를 이용해서 저기서 Sue가 기다리고 있다 라든지, Sue 언니야가 좀 보자던데 라고 거짓부렁을 해가며 프로그램에 모시고 왔더랬습니다. 뭔가 Barbara에겐 Sue가 왕언니 같은 존재인 듯, 이 방법은 거의 99% 먹혔고요. 일단 오면 또 재미있게 즐기니까, 나는 이것을 화이트 거짓말이라 스스로 위안합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친해지고 나를 믿고 따라오게 만들까 고민하던 차에 사이가 가까워진 결정적 계기가 되어 준 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몰라도)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오는 나의 구린 영어 발음이었습니다. 내 딴에는 BaR~baRa~라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부르는데 그 사운드가 캐네디언들의 귀엔 “발발아” 혹시 “발아발아”로 들린다나 뭐라나 (흥칫뿡이죠). Sue와 Hedy는 내가 발발아!를 외쳐댈 때마다 배꼽을 잡고 웃어댔습니다. 이것은 느낌상 Barbara가 자라 오면서 당해왔던 익숙한 괴롭힘(?)인 듯 했습니다. 일본 억양 가득한 엄마 아빠나 주변 어른들이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 여기서 나고 자란 친구들은 듣고 놀려댔을 터. 이에 듣기가 괴로웠던지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일본 이름인 ‘아키코’로 불러달라고 요구했지만 난 꿋꿋이, 아예 나중엔 대놓고 “바라바라"라고 불러댔습니다. Barbara는 이에 “이봐라, 너는 혀가 안 돌아가잖아. R발음이 안 되는걸."하는 컴플레인을 하더니 나중엔 아예 "차라리 술을 한잔 해봐, 그럼 혀가 꼬여서 발음도 잘 될 거야. 매일 한 잔씩 해.”라고 그녀 다운 야매 조언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뒤로도 한참은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에잇! 아키코라고 부르라고! 술을 마셔서 혀가 꼬이게 하라고!라고 투덜투덜 해대던 그녀는 이제 나의 "바라바라~ 바라바라 Where are you~?" 하고 찾는 소리에 저어 쪽에서 “I’m here!” 하면서 머리를 쏙 내밀고는 합니다. (어르신께 이런 표현은 안되지만, 처진 눈도 그렇고, 뭔가 강아지 같으심.)


        이제는 그녀의 방에서 액티비티 룸으로 같이 걸어오는 와중에 나에게 원, 투, 차! 차! 차! 스텝 밟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서로 그것도 모르냐고 무시를 해가며 그녀는 나에게 영어를, 나는 그녀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주는 좋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짐 가방은 여전히 매일 싸고 있지만, 뭐 일단은 이 정도면 되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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