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느꼈던 우울증 의심 증상
월요일 아침 9시, 원래라면 주간업무회의를 준비면서 주말동안 쌓인 메일을 하나하나 보고 있을 시간이다. 그러나 오늘은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만 있다. 우울장애로 인한 질병휴직이 승인되고 첫번째 날이다.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평생 걸려본 적 없는 우울증에 어쩌다 걸리게 되었을까... 눈을 감고 차근차근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2019년, 떨리는 마음으로 배치받은 첫 업무는 홍보팀 업무였다. 3년동안 신입의 자세로 열심히 하루하루 배워나가다보니, 성과급 최고 등급을 받는 등 많은 인정을 받았다. 스스로도 잘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회사 규정에 의해 새로운 부서로 이동하면서 행복했던 회사생활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부서의 업무는 거의 모든 것이 달랐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기존 부서에서는 팀 내부적으로 상의한 사안에 대해 상향식 보고 와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새로운 부서에서는 하향식으로 떨어진 업무에 대해 홀로 대처해서 보고해야만 했다.
게다가 새롭게 맞이한 직장 상사는 회사 지향적인 성향으로,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회사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기를 원하였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을 하기 위해 몇 번 야근을 해 보았지만, 오히려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붙잡고 억지로 남아 있다보니 자괴감만 들 뿐이었다. 결국 새로운 업무에 대한 적응과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정신적 데미지를 주었다. 게다가 나의 MBTI인 INFP 성향이 가진 단점인 '쌓인 감정을 잘 풀지 않고 사람들에게도 내색하지 않는 점'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풀지도 못하고 있었다.
반년 쯤 지나자, 조금씩 마음속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출근에 대한 공포감이 들기 시작했다. 일요일 밤은 누구에게나 우울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금요일 퇴근을 할 때부터 월요일 출근에 대한 압박을 느꼈다. 주말에 아무리 친구들을 보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이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다음 증상은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강해진 것이다. 다행이 더 나쁜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모퉁이를 돌아가는 자동차를 보며 '저 정도 속도로 달리는 차에 치이면, 몇 달 일 하지 않고 쉴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증상은 업무를 하면서 자책을 많이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잠깐 자랑을 하면, 살면서 단 한번도 '머리가 나쁘다'라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해 본적은 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맡은 업무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스스로의 능력 부족을 탓하기 시작했다. 남들은 다 하는데, 내가 멍청해서 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이 컸다. 한 번은 용기를 내어 업무가 어렵다는 말을 상사에게 했지만 '이 정도 연차에서는 해내야 하는 일이다. 지금 포기하면 앞으로 더 힘들 것이다'라는 말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마음 한편에서는 '이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데, 반대쪽에서는 '해내야 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세뇌시켜가면서 억지로 붙잡아 끌어가는 형국이었다.
마지막으로는 몸과 마음의 무기력을 느꼈다. 좋은 일이 있어도 기쁘지 않았고, 나쁜 일이 있어도 이게 내 일이 아닌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 특히 회사 사람들과는 업무 시간 이외에 만나는 것 자체를 기피하게 되었다. 휴직을 신청 할 때, 많은 직장 사람들이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인사팀에 고충을 이야기하는것과 같이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힘이 풀린 채 철봉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미래를 알고 있지만
내려가지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그저 절망속에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차를 몰고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뵈러 아침부터 운전대를 잡았다. 이 때부터 이미 불면증 증상이 있었기에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다. 휴게소를 들렀다 가는 길에 선글라스를 깜빡하고 놔둔 것을 알아차렸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주차타워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기어의 방향도, 엑셀과 브레이크도 순간 헷갈렸다. 차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비상구에 부딫혔다. 천만 다행으로 다른 가족들은 차에 타고 있지 않았고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가족들은 물론, 주차타워 관리자, 뒤에 도착한 보험사 직원까지 모두 별일 아니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면 된다고 위로하였다. 실제로 자동차 뒷면과 부서진 비상구 이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차가 부딫히는 순간, 힘들게 붙들고 있던 멘탈이 완전히 박살나버리고 말았다. 만일 뒤에 사람이 있었다면? 뒷좌석에 누군가를 태우고 있었다면?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들었다. 드디어, 철봉을 붙들었던 팔이 버티지 못하고 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