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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Oct 04. 2022

독서토론회에서 배운 5가지 깨달음

7년간 머문 독서토론 동아리의 추억


2012년 가을, 복학생이 되어 이제는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내면의 불안함이 있었다. 다만 1주일을 갈아 넣다시피 하는 학회 활동이나, 인생의 진로를 결정해버리는 CPA나 고시류 시험을 시작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다. 그러던 중,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던 독서토론동아리 홍보 포스터에 눈길이 갔다. 1주일에 책 한 권 읽는 것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어렵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토론 이력은 '인문학'스펙으로 훗날 취업준비를 할 때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서류와 면접을 무사히 통과하여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햇수로는 7년, 학기로는 12학기가 지난 2018년 봄날에, 동아리에서의 마지막 토론을 끝냈다. 막내로 들어왔던 동아리에서 이제는 나이도, 활동 경력도 가장 많은 선배가 되었다. 졸업할 때가 한창 지난 선배가 불편했을 후배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꼬박꼬박 참여할 정도로 독서토론활동의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활동을 통해 내 것이 된 삶의 귀중한 자산들은 스스로의 발전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독서토론의 무엇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는지,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한편 독자들에게 독서토론활동을 영업(?)하고자 글로 정리해보기로 했다.



1. 다양한 책을 읽게 되었다.


독서토론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의 목적을 가진다. 바로 '책을 읽는 것'이다. 혼자서는 읽어나가기 어려울 수 있기에, '토론회'라는 강제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나 역시 졸업한 이후에 몇 년간 책을 거의 들지 않았고, 지금은 다른 독서토론활동을 하면서 다시 스스로에게 독서에 대한 의무를 지우고 있다. 


물론 책을 읽지 않고 토론에 참석할 수도 있다. 규칙에 따라 독후감 사전 제출(트레바리에서 한다고 들었다)과 같이 방지할 수도 있지만, 내가 활동했던 동아리에는 따로 규칙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렇게 토론에 참석하게 된다면 사람들의 대화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속된 말로 '쪽팔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토론에 제대로 참가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물론 책을 읽고 오는 것이 발제자와 다른 토론 참석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기도 하다.)

 

동아리에서 연간 보통 15~20권가량을 읽었다고 생각하면, 단순히 계산했을 때도 7년간 100권이 넘는 책을 읽게 된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쌓인 독서량은 삶의 큰 자산이 되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소재 또한 다양해졌다.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자투리 시간에도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제 어디에서나 책과 함께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약속시간에 조금 일찍 오거나, 전철을 타고 먼 거리를 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가방 안에서 책 한 권 꺼내어 읽게 되면, 오가거나 기다리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또 다른 즐거움으로 남게 된다.



2. 말하는 방법과 듣는 방법을 배웠다


동아리를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군가에게 말을 조리 있게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더군다나 막내 입장에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선배들과 토론을 하다 보면 그들의 내공에 말문이 막히기 일수였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말하지 않으면 토론에 참가하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토론의 발제별로 한 마디씩 말을 하기로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 보통 토론 3~4일 전에 발제문이 올라오면, 책과 발제문을 번갈아 보며 어떤 말을 할지 미리 고민했다. 정리가 되지 않으면 미리 써 보기도 하면서 준비를 했다. 계속해서 연습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을 갖추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진 시점부터는, 잘 듣는 법을 배우려 노력했다. 선배가 되어가며 좋은 생각과 감상은 나이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오히려 생각하지도 못했던 점들을 쏙쏙 짚어내는, 후배들의 신선한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한 적이 많았다. 다만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후배 입장에서는 선배의 말 하나에 괜히 권위를 부여하고 위축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짜 이건 말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은 발제나, 가끔 토론이 잘 되지 않아 침묵을 깨야할 때 이외에는 발언을 자제하려 애썼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고, 같이 토론한 후배들이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오히려 듣는 훈련을 할 수 있던 경험이 삶의 큰 자산으로 남았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많은 갈등을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상황을 판단할 때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주장과 근거를 잘 듣다 보면 더 좋은 방향을 찾아낼 수 있었다. 



3.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다.


동아리에서 하던 독서토론과 같이 옳고 그름이 없고 생각을 말하는 위주의 토론을 '비경쟁 토론'이라고 한다. 가끔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발제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토론은 주제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학기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말 세상엔 다양한 사고방식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가치관이 뚜렷한 '빌런'친구들이 많은 학기는 그만큼 토론이 재미있었다. 특별히 무언가에 빠져있지 않았기에, 그 친구들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황홀하게 다가왔다. 그들로부터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사람은 정말 다양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빌런'친구들 에게도 조금은 배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다른 의견을 들어보는 한편, 자신의 가치관을 전파하는 좋은 기회로 작용했다.  


세상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관점을 인정하는 것은 특히 요즘처럼 젠더갈등, 세대갈등과 같이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여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특정한 가치관을 가지더라도, 그것이 100% 옳은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또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전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브런치에서도 굉장히 많이 나오는 주제인 직장 내 세대차이를 바라볼 때, 상대 세대가 하는 행동 그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행동에 깔려 있는 생각에 대해 이해해보면서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 맞다' 혹은 '~~ 한 면에서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는 생각을 전달한다면 보다 건설적인 대화가 가능해진다. 특히 사회초년생 입장에서, '꼰대'는 보통 합리적인 이유 없이 무조건 행동을 강요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그래서 스스로가 꼰대인가를 걱정하고 후배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선배들은 대부분 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조금 꼰대 담론으로 이야기가 새어나갔지만, 틀림이 아닌 다름을 확인하는 독서토론을 진행한다면, 그동안 납득이 되지 않던 것들에 대해서는 조금은 이해의 폭이 넓어짐을 느낄 수 있다.



4. 시대가 변하면 바뀌는 것도,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동아리에 머문 기간이 오래되면서, 새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계속 바뀌어갔다. 그러나 동아리의 문을 두드리는 신입들의 연령대가 비슷하다 보니, 꾸준하게 인기 있는 도서들이 있었다. 기억 속에 가장 인기 있던 책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정말 매년 한 번 이상은 두 책 중 하나로 토론을 했다. 20대 초중반 대학생들의 주요 관심사인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자아를 찾아가는 욕구'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매 토론마다 발언을 정리하는 토론일지가 정리되어 카페에 업로드되었는데, 가끔 저 두 책에 대한 일지를 살펴보면 말한 사람은 다른데 생각이 비슷한 재미있는 경우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사랑과 연애도 빠질 수 없는 존재다. 가끔 동아리에서 영화로 토론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거의 무조건  <이터널 선샤인>이나 <500일의 서머>가 당첨되었다. AI와 같은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her>가 이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흔히 고전을 읽는 이유는 그것에 담긴 지혜가 오늘날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년 반복되는 토론 작품들을 보며, 굉장히 압축된 기간이지만 그 의미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반면에 어떤 책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읽히곤 했다. 2018년, 4년 만에 <그리스인 조르바>로 토론을 하게 되었다. 14년 토론 당시의 친구들은 대부분 조르바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일부 그의 무례한 행동을 비판하긴 했지만, 주로 그가 추구한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오갔다. 2018년의 토론은 다르게 흘렀다.  조르바의 여성 혐오적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진정한 자유와 관련된 다양한 좋은 책을 찾을 수 있는데, 왜 하필 이 책이어야만 하는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많았다. 4년 만에 텍스트를 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달라진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무작정 조르바와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옹호하거나 비난하고자 쓴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라는 명제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종종 플라톤이 주장한 '지배계급의 부인 공유제'를 예시로 들곤 한다. 플라톤의 주장은 부인을 공유하게 되면, 낳은 자식의 아버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세습에서 오는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져가야 할 것은 주장에 담겨있는 '세습을 막아 건강한 국가를 유지한다'는 정신이지, 절대로 부인을 공유한다는 주장이 되어선 안된다. 여성의 참정권은 물론 인권조차 차별대우를 받았던 시대의 주장을 어떻게 그대로 받아들이겠는가?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짐을, 그것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토론이었다.



5. 조직의 모습은 규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신입회원이 되어 첫 토론 장소는 정원이 10명은 될까 싶었던 작은 세미나실이었다. 반면에 마지막 토론에는 30명이 들어가는 강의실에 사람이 가득했다. 인원의 차이는 토론의 분위기와 내용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회원 수가 적었던 시절은 아무래도 상호 간 친밀도가 상대적으로는 높을 수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토론 도중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온 적이 많았다. 특히 사랑과 관련된 도서과 선정되면, 종종 누군가의 연애 상담이 되어버린 적도 있다. 반면 사람이 늘어나면서 다루게 된 주제는 보다 거시적이거나 사회적인 요소가 커졌다. 굳이 색으로 비유하자면, 세미나실에서의 토론은 '열정의 빨간색', 강의실에서의 거대한 토론은 '냉정의 파란색'으로 기억된다.


두 모습 모두 저마다의 장점이 있었고, 회원마다 원하는 모습도 달랐다. 누군가는 세미나실의 따스함을 원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강의실에서 냉철하고 때로는 치열한 토론을 하길 원했다. 인원이 많아지면서부터는 소수 인원을 선호하는 친구들끼리 '독서토론회 속의 독서토론회'를 조직하여 새로운 세미나실 토론을 병행하기도 했다. 


달라진 것은 토론 문화에서 그치지 않았다. 동아리의 규정이 '성문화'되고, 관행적으로 여겨진 것들은 정식 제도화되거나 또는 사라지게 되었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서 생기는 필연적인 변화였다. 느슨하게 운영되던 동아리가 관료제화되는 과정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독서토론 동아리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정리해보았다. 그저 매주 책 읽고 사람 만나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어 활동했을 뿐인데, 지나고 나니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큰 자산으로 남았다. 이 글은 스스로를 위한 인생의 경험 정리이기도 하지만, 독서토론 영업 글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혹시나 독서토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진심으로 응원한다. 동네에 있는 토론회에 가입을 해도 되고, 온라인 독서토론 커뮤니티, 심지어 지역 도서관을 통해서도 운영되고 있는 토론회가 많다.


 모르는 사람들과 하기가 부담스러우면, 마음이 맞는 지인 몇 명과 모임을 만들어도 충분하다.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도 없고, 멋진 수사와 표현으로 상대방을 이겨야 할 필요도 없다. 발제문을 쓰는 것도, 어떤 형식의 토론을 하는 것도 모두 하는 사람 마음이다. 마음 맞는 사람 몇 명이서 모여,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면 그것으로 족하다. 어떤 식으로든 독서토론을 시작하려는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글을 정리하면서 오랜만에 동아리 카페에 들어갔다. 이번 학기 토론 목록에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절로 웃음이 나온다. 언젠가 과거에 활동했던 친구들과 뜻이 맞는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여는'선배가 되어 토론에 한 번 찾아가 보고 싶다. 2022년에 활동하는 친구들은 2012년에 활동한 나와 무엇을 같게, 무엇을 다르게 여기고, 무엇이 이제는 틀렸다고 말할지 조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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