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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Nov 08. 2022

우리손으로맨든 이케아 서랍장

이케아 가구 첫 조립 후기

비우기는 어려워도 채우기는 쉽다. 우리는 자본주의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고객이니 말이다. 채운 걸 보관하기 위해서는 저장할 공간이 필요하다. 너무 허접하지도 않으면서, 또 너무 비싸진 않은 것.

... 뭔가 거창하게 써보려고 했지만 결론은 '적당히 싸고 괜찮은 서랍장' 하나가 필요했던 것이다.


마침 차를 타고 이케아를 갈 기회가 생겼다. 집기류나 사고, 밥이나 먹고 왔던 곳에서 이번에는 서랍장을 하나 샀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구 재료 묶음이긴 하지만. 개당 20Kg이 넘는 상자 두 박스를 아내와 함께 어떻게든 차에다 넣어 데려왔다. 


10여 년 전 교수님의 설명으로만 들었던 이케아의 경영전략을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다. 아시다시피 이곳에서 사는 가구는 배송은 물론, 조립과 설치도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물론 돈을 내면 그 수고를 덜어낼 수 있지만, 그렇게 되는 순간 이케아에서 사는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어쨌든 고객에게 수고를 전가(?)시키는 것은, 비용 절감도 물론이거니와 직접 만드는 경험을 제공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누군가는 공감하고 누군가는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어쨌든 이것이 그때 들었던 이케아의 성공 포인트다.


어렵게 모셔온 상자를 여니 나무토막과 나사들이 가득하다. 모든 것이 그림으로 되어있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지만 누구나 보고 헷갈리기 쉬운 설명서가 함께 있었다. 다행히 인터넷에는 훨씬 전에 같은 모델을 사서 조립하느라 고생하신 선배님이 쓴 후기가 많이 있었다. 한쪽에는 설명서, 한쪽에는 휴대폰을 두고 본격적으로 장비를 챙겼다. 전동 드라이버, 망치, 일자 드라이버. 모두 이사를 하면서 제대로 장만한 친구들이다. 


비록 이케아 제품은 아니지만, 원룸에서 자취를 하던 시기부터 이미 컴퓨터 책상 같은 간단한 제품들은 배송받아 혼자 설치하곤 했다. 그때는 전동드라이버가 없어서 오직 손 힘으로 나사를 조였다. 정말 팔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게다가 가격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이음새도 잘 맞지 않고, 삐걱거리기 일쑤였다. 혹시 이케에서 사도 그러면 어쩌나 걱정이 들어, 함께 사온 간단한 철제 협탁부터 미리 만들었다. 역시, 시키는 대로 하니까 전혀 흔들림 없이 서 있는 모습에 안심했다.


이제 연장의 준비도, 마음의 준비도 끝났다. 비장한 마음으로 유튜브에 있는 노동요를 켜고,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작했다. 먼저 4개의 서랍부터 만들기로 했다. 나사뿐 아니라 동그란 나무도막을 망치로 박아 넣거나, 일자 드라이버로 부품을 돌려 고정하는 것 등 많은 작업이 있었다. 그래서 첫 서랍을 만들 때는 헷갈리는 게 많아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같은 작업을 4번 반복하면서 차츰 익숙해졌다. 


이어서 본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컨디션 난조로 인한 몸살로 그다음 주가 되어서야 계속 진행할 수 있었다. 본체를 만들 때는 혼자서는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더 이상 혼자 살지 않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며, 아내가 고정해준 뒤판에 열심히 못을 박았다. 


마침내 완성된 흰색 서랍장은 우리가 원하는 그대로였다. 만들다가 실수로 찍히는 바람에 자국이 남았지만, 모른 척하고 쓰면 사용에는 지장이 없다. 계절이 바뀌고 갈 곳 잃은 여름옷들을 포개어 넣어주었다. 내년에 다시 더위가 찾아올 때까지 서랍장 안에서 따뜻하게 쉬고 있기를. 


이케아 가구를 사 본 사람은 '다시는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과 '계속해서 조립하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한다. 나는 아마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 될 거 같다. 지금은 여유가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직접 가구를 조립하다는 게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처음 이사하면서 가구를 들일 때 속을 많이 썩여서 그런지 그냥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드는 게 마음이 편한 부분도 있다. 모든 가구를 이렇게 하면 좀 힘들겠지만, 종종 적당한 가구가 필요하면 다시 한번 기꺼이 귀요미 목수가 한 번 되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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