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소설을 읽지 않은 이를 꼬실 수 있을 만큼 재미있게 읽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생각한 조건은 '책 속 세계관으로 꿈을 꾼 기억'이 있는 책이다. 꿈을 꿀 정도로 몰입했다면 의식과 무의식이 함께 반응할 정도인 셈이니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을 것이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지금까지 꿈을 꿨던 두 권의 책이 나타났다. 초등학교 때 해리포터를 읽고 킹스크로스 9와 3/4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꿈. 그리고 오늘 소개할 <눈물을 마시는 새>의 무대에서 북부군으로 참전하는 꿈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이영도 작가가 쓴 한국형 판타지 소설이다. 엘프와 오크 대신 이 독특한 세계를 움직이는 종족들은 인간, 나가, 레콘, 도깨비라는 4개의 '선민종족'이다. 특별하지만 결함이 있는, 그렇기에 '셋이서 능히 하나를 상대할 수 있는'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바라보면 비슷한 것조차 본 적 없는 이 세계관에 흠뻑 빠지게 된다.
이야기의 시선은 주로 심장을 적출받는 의식을 거부한 나가 '륜 페이'와, 그를 모종의 이유로 구출한 세 명의 수탐자들(인간, 레콘, 도깨비)의 여정을 따라 이어진다. 누가 봐도 사연이 많은 것처럼 묘사된 인간 수탐자 '케이건 드라카'의 비중이 크지만, 군상극의 형태이니 만큼 한 명 한 명의 이야기 역시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여행 중에 만나는 다양한 존재들 역시 허투루 표현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전란으로 황폐해진 도로를 관리하면서, '통행료를 내는 사람은 손님, 내지 않는 자는 적'이라는 원칙을 무려 1400년간 유지한 유료도로당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융통성 있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목숨과도 바꾸지 않는 금과옥조로 삼는 모습에서 경외심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다.
이 유명하고도 매력적인 IP를 그냥 놔두기는 아깝다. 원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게임이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원작에 대한 모독을 느낄 정도로 형편없는 퀄리티에 제작이 취소되었다. 반면 최근에 새롭게 시작된 영상, 게임화 프로젝트는 원작을 존중하면서도 소설의 모습을 실제 구현하려 노력 중이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책이 바로 <한계선을 넘다>라는 아트북이다. 실제로 읽어보니, 점점 희미해져 가던 인물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선민종족을 포함한 각기 다른 개체들에 대한 콘셉트아트도 어색하지 않았다. 소설을 현실로 구현하게 되면 자신의 상상과 달라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음이 담겨있었다.
언젠가 게임이나 영화가 나오게 된다면, 꿈에서 함께했던 영웅들과의 전투를 실제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부디 꿈에서 느꼈던 전율과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기를 한 명의 팬으로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