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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Oct 12. 2022

우리 팀장이 나한테 무얼 해 줄 수 있는데?

일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 4

 Scene #9


우리 팀을 가만 보면, 일은 김 과장이 다 하는 것 같다. 공장에서 무슨 일이 터져도 김 과장. 갑자기 상무님 숙제가 떨어져도 김 과장. 후배들 일 가르쳐 가면서 일하는 것까지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일하나 존경스러울 정도다.


그에 비해 이 팀장은 잘 모르겠다. 근태 승인하고 보고서 받아서 결재하고 임원 회의 보고 가고 이런저런 회의하러 다니느라 바쁜 거 같기는 한데, 정확히 어떤 Added Value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오늘도 회의 시간에 보고를 하고 있는데, 이 팀장 표정이 이상했다. 내 보고를 찬찬히 듣고 있더니, 한마디 한다.


"나 연구원, 정리 잘했어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뭘 해 줄 건 없나?"

"예? 갑자기... 뭐. 특별히..."

"그래. 그럼."


평소에는 관심도 없는 거 같더니. 왜 그래? 요즘 김 과장이 팀에서 부각되니까 본인도 뭘 해야 하나 싶은가? 팀장이 나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보고서를 쓰는 목적은 설득입니다.


보고서를 쓸 때 상사가 기대하는 바를 고려해서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결재권을 가지는 사람에게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고객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도 상대에만 맞출 수는 없습니다. 쓰는 사람은 본인이니까 내가 원하는 바를 담아야겠죠. 내가 원하는 바를 설득하는 것. 그것이 보고서를 쓰는 목적입니다.

 

미생 장백기의 한 마디, 설득이 되시던가요?

설득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설득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른 사람이 행동하게 하는 힘을 지닌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설득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듣고 있는 상사가 행동하도록 하는 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내가 원하는 방향”입니다. 다시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그럼 우리는 상사에게 어떤 행동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팀장에게 기대할 수 있는 네 가지


첫 번째는 “선택”입니다. 어떤 제품으로, 어떤 업체로, 어떤 기준으로,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중간 단계에서 QCDP (Quality – Cost – Delivery – Productivity / 품질 – 비용 – 납품 – 생산성) 중 모든 점을 다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개는 하나 둘 정도가 부족한 경우가 많죠. 이럴 때 우리는 보고를 통해 상사가 중요한 결정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를 위해서 Plan A와 Plan B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선택이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표로 전달합니다. 그리고 나의 의견은 참고로 덧붙이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상사가 하게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면 장단점을 비교한 표에 대한 반응을 통해서 상사가 어떤 점을 우선시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하나의 제안이 올라왔을 때는 그 게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지 더 꼼꼼하게 챙기게 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상대적으로 나은 옵션에 대해서 호의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 Plan A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Plan B를 만들어 넣기도 합니다. 상사에게 선택이란 내게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시켜 주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으로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상사와 함께 공유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양해”입니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기생충에 나온 대사처럼 모든 일에는 다 계획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들은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가장 흔한 경우가 일정이 늦어지거나,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경우입니다. 물건을 만들어서 시장에 싸게 내놓아 더 많이 팔고 그래서 더 많은 이윤을 남겨야 하는 기업의 생리 상 어떤 상사도 납기의 지연과 추가 비용을 곧이곧대로 용인해 주지 않습니다.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심기가 불편할 상사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 왜 기존 계획 대비 차이가 발생했는가?

* 어떻게 하면 늦어진 일정을 다시 Catch up 할 수 있는가?

* 추가된 비용을 보상하기 위해 다른 부문에서 비용 절감할 수 있는 계획이 있는가?

* 비용이 더 드는 대신에 회사가 얻게 되는 장점은 무엇인가? (품질 개선, 신뢰 회복, 원활한 공급 확보 등)

* 다음에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인지한 시점에서 보고를 하는 지금 사이의 활동을 명확하게 정리해서, 보고하는 나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고를 듣고 있는 상사가 봐도 어쩔 수 없었고, 상황이 벌어진 지금이 벌어진 사태를 수습하는 가장 빠른 시점이라는 사실을 공유하고 나면, 누가 잘 못한 거냐는 과거 시점에서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라는 미래 시점으로 논점을 옮길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승인”입니다. 다행히 계획대로 모든 일이 잘 진행되어서 목적을 다 달성한 후에 칭찬받으러 들어갔는데 예상도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가 꾸지람만 받고 나온 경우가 많습니다. 왜? 다 됐는데.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뭐라고 그러는 거야 하고 뒤에서 험담도 많이 합니다.


앞서 “선택”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상사 입장에서는 최종 OK 승인은 늘 불안합니다. 실무자들만큼 각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핏 중간중간에 이런저런 이슈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 회의에 들어가 보니 다 정리되었다며 승인을 요청합니다. 어쨌든 자기가 도장 찍는 순간 그 일은 본인 책임이 되니, 마지막으로 최종 점검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깐깐하게 다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승인을 받으려면 그동안 함께 결정했던 중간 단계들을 Remind 해 주어야 합니다. 최초의 목표를 다시 재확인하고, 진행 과정에서의 지난 어려움들을 상기하고 그 걸 어떻게 해결했는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최종 결과가 충분히 괜찮다는 의견을 승인을 요청하는 본인이 아닌 제삼자(되도록 전문가 그룹)로부터 받아서 최종 승인하는 상사의 부담을 줄여 주어야 합니다.


중간중간에 상사가 지시했던 내용들을 어떻게 시행하고 그런 활동이 최종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정리하면 그 프로젝트에 대한 본인 스스로의 Ownership을 다시 느끼면서 좀 더 수월하게 승인할 겁니다. 이제 우리 프로젝트고 내 프로젝트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상사에게 요청할 수 있는 그렇지만 흔히들 부담스러워 놓치는 부분이 “지원”입니다. 내 맘대로 다 되면 좋겠지만 안되니까 보고 하는 겁니다. 다른 팀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아서, 업체에 좀 더 강하게 압박할 필요가 있어서, 업무 분장에서 타 팀 간에 합의가 안 돼서, 정부나 다른 기관들과 협상이 필요해서..


일개 팀원으로 현재의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은 과감히 못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상사는 할 수 있지만 나는 못하는 일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어찌 보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방만해 보일 거라 걱정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상사들도 자신의 몫을 찾고 싶어 합니다. 그게 곧 본인의 능력을 인정받는 과정이니까요.


상대의 자존심을 세워 주어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 중에서

스토브리그에서 드림즈를 매각하기 위해 백승수 단장은 이제훈의 니즈를 파고들었습니다. 상대의 자존심을 세우고, 그래서 상대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 적어도 당신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연봉을 받고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상사가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MZ를 위한 TIPs

보고에서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어떤 방향으로 갈지 선택받고, 예상과 다른 결과를 양해 받고, 나온 결과를 승인 받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의외로 도움을 청하는 것이 문제를 풀고 관계를 유연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올린 보고서는 왜 상사에게 반려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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