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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Mar 01. 2024

프로젝트가 죽고 사는 건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거야?

4장 내가 경영해도 이것보다는 잘하겠다 - 02

Scene #17


임원회의에 보고하러 간 이팀장이 얼굴은 풀이 죽은 얼굴로 돌아왔다. 우리 팀이 지난 한 달간 공들여 가면서 기획한 프로젝트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까였나 보다.  


"아쉽지만, 우리 기획안은 진행이 힘들다고 더 Develop 해 오라는 지시를 받았어. 다들 수고했는데 미안하다."

"팀장님이 왜 미안하세요? 원래 기획은 반은 까이는 거 아닙니까. 근데 왜 반려된 거예요?"

"파이낸스 쪽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냈어. 투자금 회수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거지."

"하여튼, 재무는 현장 상황은 일도 모르는 것들이 맨날 안된다 안된다 어깃장만 잘 놓는다니까요."

"그러게.. 여하튼 다들 그동안 기획안 준비하느라 고생했는데 면목이 없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는 사람은 소주나 한 잔 하자고…"


이 팀장이 저렇게 풀이 죽은 모습은 처음이다. 허긴 나름 다음 진급으로 가기 위한 돌파구라고 애를 많이 썼던 기획이었는데 까였으니 기가 죽을 만도 하지. 내가 보기에는 좀 아슬아슬한 점들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잘 되면 꽤 쏠쏠한 아이템 같았는데 잘린 걸 보면 회사에서 프로젝트 진행하는 게 만만치 않나 봐. 


신문에 보면 재벌 3세들은 이런저런 신 사업들 잘도 시작하더구먼, 도대체 프로젝트가 죽고 사는 건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거야?  


미생 드라마에 나오는 신사업 프레젠테이션 장면


회사는 손해 볼 수도 있는 일은 시작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프로젝트 리더를 할 때 원가 저감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제조업에서는 회사의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한 대 팔아서 남는 수익률을 개선하는 작업입니다. 1000원을 아끼면 같은 값에 팔아도 그만큼 순 수익이 증가하는 것이니, 매년 아주 달성하기 어려운 원가 저감 목표를 받고 고생하곤 했었습니다.  


원가를 절약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재료를 바꾼다거나, 디자인을 단순하게 한다거나, 다른 제품과 부품을 공용해서 생산 물량을 늘린다거나 수입하던 부품을 국내 부품 업체들과 국산화하면 부품의 단가는 줄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모든 과정에는 비용이 든다는 점입니다. 변경된 새 파트가 괜찮은지 확인도 해야 하고, 새로운 금형도 만들어야 하고, 새로운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고 적용해서 새롭게 판매하는 그 모든 과정에 모두 추가적인 돈이 듭니다.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 원가 저감 프로젝트를 하는데 오히려 드는 돈이 더 많으면 손해이겠죠. 회사 입장에서는 미래의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굳이 지금의 비용을 감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준을 정합니다. 새로운 원가 저감 아이디어를 적용하는데 드는 모든 비용들을 합친 금액을 적용한 지 1년 이내에 회수가 가능한지 여부를 Investment & Profit Payback이라는 룰을 정해서 확인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에는 돈이 듭니다. 적어도 쓴 돈은 일정 기간 내에 회수할 수 있어야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몇 년을 팔 건대, 왜 1년으로 기준을 타이트하게 잡는지 의아해 할 수 있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제품 예상 판매량은 그야말로 예상치일 뿐이니까요. 부풀려진 볼륨을 기준으로 '이렇게 진행하면 이득이 남을 겁니다.'라는 핑크빛 시나리오에 기대었다가 판매량이 줄어 들기라도 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헛돈 쓴 셈이 됩니다. 최소한의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서 원금 회수 기간을 1년으로 딱 못 박아 두었습니다.  


이런 경제적인 이득이 명확한 이후에도 다양한 단계를 통해서 검증을 해야 합니다. 품질에는 문제가 없는지, 새로운 파트너는 건실한지, 공장에서 조립은 잘 되는지, 법규나 인증을 추가로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등 이른바 QCDP - Quality 품질 / Cost 비용 / Delivery 물류/ Production 생산으로 이야기되는 모든 진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뽑아 보고 할 수 있는 검증을 다 해서 OK를 받고 나서야 필요한 투자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매번 검증을 담당하는 프로세스 품질 담당과 씨름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획은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입니다.  


기존에 있는 제품의 원가를 저감 하는 단순한 프로젝트도 이렇게 따지는 것이 많은데 구체적인 수익 모델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사업들은 더 큰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해야 하는 이유로 가득 차 보이지만, 재무나 품질같이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부서의 관점에서는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만 보입니다.


특히 의사 결정으로 굴러가는 투자와 매출의 규모가 클수록, 투자 후 수익을 회수하기까지 기간이 길수록 제대로 프로세스가 갖추어진 회사라면 이른바 5 WHY라고 부르는 검증하는 역할을 맡은 부서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들은 그런 역할을 하라고 월급 받는 사람들이니까요.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새로운 일을 벌이는 기획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입니다. 그러니 반대를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 입장에서 무엇이 불만족스러웠는지를 묻고 확인하고 보완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설득에서 제일 중요한 건 대상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안된다는 말을 비용으로 바꾸고 해야 하는 이유를 단단하게 다져 보세요.


부서 별로 서로 다른 기준이 문제라면 차이를 정리해서 더 높은 레벨의 결정 회의에 올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같은 본부 내의 상충은 본부장이 결정해야 하고, 본부 간의 문제라면 사장이 판단해야 하겠죠. 임원이 우리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이유는 이렇게 그냥 룰대로라면 풀리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는 문제들을 보고 받고 협의해서 결정하는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위 레벨의 회의에서 내리는 결정이 원활하게 하려면, 서로 다른 관점을 하나의 언어로 통일할 필요가 있겠죠? 경영이라는 과정에서 모두에게 통용되는 언어는 다름 아닌 '돈'입니다. 납기가 늦어져서 안된다는 이야기는 비행기로 옮기면 되고, 업체에서 리드 타임이 오래 걸린다고 하면 급행료를 지불하면 되고, 품질이 보장이 안된다고 하면 더 좋은 재료를 쓰면 되고, 시험할 일정이 타이트하다고 하면 샘플을 더 만들면 됩니다. 문제가 있어서 안된다는 말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추가 비용'이 더 든다고 정리하면 선택은 단순해집니다.



이렇게 다른 관점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대안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일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가 단단해야 합니다.


그러니, 무언가 새로운 일을 추진해야 한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사장이라면 이 프로젝트를 하라고 할 건지. 내 돈을 들여서 한다고 해도 할 만한 일인지 말이죠. 질문에 자신 있게 YES라고 답할 수 있고 그 답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설득해 본다면, 프로젝트가 통과되면 할 수 있게 되어서 좋고, 통과되지 않아도 내가 일을 보는 관점이 넓어져서 남는 것이 있을 겁니다.


TIPs for MZ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새로운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합니다.

안된다는 말을 해결하려면 얼마가 더 들지에 대한 비용으로 바꿉니다.

해야 하는 이유와 논리를 스스로 단단히 다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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