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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pr 15. 2024

의대 정원 문제가 해결이 요원한 이유

가장 나중에 나와야 하는 숫자가 제일 먼저 나오니 문제가 풀릴 리가 없다

고등학교 선배님 중에 대학병원 응급실을 지키고 계신 분이 있다. 코로나로 그 어려운 시기에도 버텨 주셨던 존경하는 형인데 요즘 너무 힘들다는 포스트를 자주 본다. 의대 정원 문제로 많은 분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앞으로 몇 년간은 정상으로 돌아오기 힘들 거라는 현직의 하소연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처음 이슈가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장기간에 걸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파국으로 갈지도 몰랐다.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한 의대생들이 지금 돌아온다고 해도 유급이 확정적이다. 대학병원들은 환자를 받지 못해 적자에 빠졌고, 응급 환자들은 받아주는 병원을 찾지 못해 길 위에서 죽음을 맞고 있다. 의료체계가 총체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나는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 대해서 불편한 점이 거의 없었다. 프랑스와 중국에서 예약하면 한 달은 기다려야 하고 더럽게 비싸고, 그래서 감기 같은 질병은 그냥 약사 먹고 버텨야 하는 경험을 하고 보면 집 앞에 아프면 바로 갈 수 있는 병원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뇌출혈로 쓰러지신 어머니를 응급으로 모시고 3개월 대학 병원, 1년 재활 병원, 그리고 요양원으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의료 보험으로 부담이 크게 되지 않았다. 


SRT 역과 삼성의료원을 잇는 셔틀 - 지방에서는 포기하는 병은 서울로 몰린다. 


그러나, 파킨슨 병을 앓고 계시는 아버지는 더 좋은 진료를 위해 3개월에 한 번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셔야 했고, 지방에 살고 있는 후배는 출산을 위해 2시간 떨어져 있는 산부인과를 가야 했다. 우리 딸이 좋아하던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 나오는 소아외과 전문의 (이름이 "정원"이었다.)는 갈수록 지원자가 줄어든다고 한다. 피부과로 돈 버는 의사는 늘지만, 필수 의료는 수가가 맞지 않아 위기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내가 의료인도 아니고 문제의 가운데 있지 않은 외부인이다 보니 추상적으로 아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의대 정원이야기가 나오고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대충 사람들이 생각하고 공감하는 문제 되는 현상은 비슷한 것 같다. 문제는 "의대 정원 확대"가 이런 다들 공감하는 문제의 해결책이 되느냐는 점이다. 


중학교 수학에서 배우는 일차방정식처럼 모든 일이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면 좋겠지만, 참 세상일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얽혀있다. "의대 정원 확대"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서로의 위치에 따라서 관점과 문제점과 해결책과 기대치가 다 다른 거  같다. 


1. 의대는 정원을 늘려서 저 많은 등록금을 뽑고 더 많은 지원을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정부가 증원을 할 수 있는 인원을 써내라고 했을 때 현재 인원의 60%에 달하는 인원을 냉큼 써냈다. 물론 그렇게 급하게 바로 확정해서 발표해 버릴지는 몰랐을 것이다. 



2. 정부는 총선 국면을 타개할 해결책이 필요했다. 문재인은 하지 못했지만 나는 해내는 업적으로 포장하기 좋다. 일관되게 주장해 온 카르텔을 무너뜨리는 검찰 본연의 활동과도 어울린다.  최근의 수험생들의 의대 집중 현상을 생각하면 수백만 수험생 부모들의 지지도 이끌 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조율 없이 그냥 일단 질러 버렸다. 


3. 현장에 있는 전공의들은 진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서 들어와서 지금도 한창 고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시장에서 겨룰 경쟁자들이 뒤로는 매년 60%나 늘어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정말 힘들게 들어온 건데... 생존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단결해서 미래의 내 일자리를 지키고, 그동안 고생했고 고생하고 있는 대가를 지키고 싶을 것이다.


4. 의대교수님들은 사실 학교가 무작정 늘린 정원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수족처럼 부리며 엄청난 업무 강도로 병원이 유지되게 지탱해 준 전공의들 없이 대학병원 체계를 유지할 자신은 더더욱 없다. 환자들을 생각하면 남아 있고 싶은 분도 있지만 빈자리가 커질수록 부하도 커지기 마련이라 부담은 갈수록 커진다. 솔직히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5. 잘 나가는 몇몇 의사들을 제외하고 자영업으로 일반 의원을 개업한 대다수의 의사들은 두렵다. 빚내서 장비사고 병원을 차렸다. 잘 되면 좋지만 본질은 자영업이라 안되면 망하는 건 다른 업종과 매 한 가지다. 의대 정원을 갑자기 늘리는 건 안 그래도 한 블록 지나면 금세 새 병원이 들어서는 요즘 같은 시기에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


6. 의협에게 의대 정원 문제는 이런 전공의-의대교수-개인 의원들의 두려움을 바탕으로 그동안 정부를 굴복시켜 온 만능키다. 이야기가 나오면 그동안 불합리했던 의료 수가나 보험 관련 문제들을 같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서 풀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단결하면 대안이 없는 정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막무가내고 테이블조차 만들지 않는 정부는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7. 수험생을 둔 부모들 중 일부는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고 하니까 혹시 우리 아이에게도 순번이 오지 않을까 살짝 기대치가 올라간다. 그러다가 지방 의대 가면 지방에서 무조건 일정기간 이상 근무해야 한다고 하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싶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서 회사원 대학생 들까지 다시 수험생이 되는 숫자가 늘어난다는 소식에 불안하기까지 하다. 


8.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당장 아플 때 쉽게 찾아가던 병원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답답하다. 그래도 근처에 갈 병원도 있어서 다행이지만 이게 언제까지 가려나 막막하기만 하다. 


9.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안 그래도 열악했던 지방 의료체계가 더 무너졌다. 한 병원에서 거절당하면 옆 도시로 가야 할 판이다. 부디 아프지 말고 지금 다니는 서울에 있는 병원이 내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가? 같은 주제이지만 서로 다 관점이 다르고 입장도 다르다. 왜냐하면 의대 정원을 늘린다는 정책 자체가 디테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적으로 어느 대학에 어떤 과를 언제부터 얼마나 늘리고 어떻게 지원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분석하고 의견을 수렴해서 쌓아 올린 숫자가 아니라 거시 경제처럼 OECD 평균 중에 우리가 이만큼 부족하니 이만큼 늘리자 논리 밖에 없다. 


위치마다 입장이 다 다르다. 



대통령은 4월 초 담화에서 의료계에게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통일된 안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해 당사자들 간에 (전공의 - 의대 - 의대교수 - 개원의 - 지방 의사 - 수도권 의사 - 돈 잘 버는 의사 - 망할 것 같은 의사 - 간호사 - 대학 병원 - 공공 의료원 - 군 병원....) 다 입장이 다른데 누가 어떻게 수렴해서 통일된 의견을 만들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만든 의견이 통일된 우리 모두의 의견이라고 누가 보증하겠는가?


관련하는 사람이 많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더 잘게 쪼개고, 디테일을 챙겨야 한다. 의료 수가 문제로 진료과 별로 수익이 차이가 나면 통계로 뽑아서 비교해 보고 인턴들이 선택이 편하도록 정부가 보정해 주면 된다. 지방의료가 낙후되어 있으면 공공 의료 시설을 더 확충하고 지방에 병원 전용 건물을 지어 임대료를 무상이나 저렴하게 내주는 것도 방법이다.  


정년 퇴임한 의대 교수님들을 모셔다 사택도 드리고 해서 지방 정부가 고문직으로 초빙한 지자체도 있다. 지방 의대부터 의대 학비와 생활비도 지원해 주면서 대신에 십 년 정도 일정 기간 동안 해당 지역에 근무하게 하고 잘 가지 않는 진료과에 지원하는 의대생들에게도 이런 경제적 혜택을 줄 수도 있다. 이런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필요하면 합의된 분야부터 조금씩 정원은 늘리면 된다. 


핵심은 "의대 정원 확대"는 논의의 시작점이 아니라 의료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의 최종 결과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숫자는 큰 그림에서 상징적인 숫자로 공언할 것이 아니라 문제 별로 디테일을 따져 가며 시간을 가지고 빌드 업해야 하는 지수라고 생각한다. 제일 마지막에 나올 숫자가 제일 처음에 나와 버렸으니 혼란은 가중되고 문제는 풀릴 수가 없다. 


이미 늦었다지만, 이제 선거도 끝났다. 지금이라도 여야가 힘을 합쳐서 백지에서 다시 시작해야 풀린다. 이제라도 작금의 갈등 속에서 표출되어 나와서 모두가 공통으로 인정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갈지 이해 당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지금은 말하는 입보다 듣는 귀가 더 필요하다. 요즘 잘 안돼서 그렇지 정치는 늘 그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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