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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Oct 09. 2024

전기차 선택의 우선순위가 안전으로 바뀌고 있다.

전기차 개발의 진입 장벽이 다시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난 7월 9일 인천 청라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의 화재가 여러 가지 면에서 시장 전체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일단 화재 자체로 인한 피해가 상당하다. 지하 주차장이 전소되고 아파트의 전기 수도가 마비되면서 공동 주택에 근무하는 이웃들도 임시 대피소로 옮겨야 했다. 홍수 같은 자연재해처럼 많은 다수가 피해를 입은 상황에 차를 판매한 메르세데스 벤츠에서는 45억의 보상금을 기부했지만, 전체 피해 복구에는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아파트 주차장의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고를 더 크게 키웠다는 주장도 나오면서 책임 소재에 대한 법정 공방도 예고하고 있다.


7월 4일 청라 화재 현장 -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에 따라 구역별 피해가 차이가 났다.


전기차 유저들이 특히 불안한 부분은 통상적인 전기차 화재의 유형을 벗어났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전기차 화재는 교통사고 등 외부 충격으로 인해 배터리의 구조 결함이 발생했거나 혹은 급속 충전 중에 과 충전되어서 배터리 내부에서 과열되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번 화재는 일상적으로 충전하고 주행해서 제대로 주차한 지 며칠이 지난 이후에 발생했다. 전기차 유저로서는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언제든 나에게도 이런 재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겁이 날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한 마음은 사회 곳곳에서 드러난다. 중고차 시장에서는 전기차 매물이 2주 사이에 50% 이상 늘어났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다. 기존 중고가격에서 500만 원 이상 내린 가격에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앞으로도 중고 전기차의 가치는 더 내려갈 것이다. 각 아파트 게시판에서는 전기차를 소유한 사람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충전 시설을 철폐하라는 요구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2022년부터 공동 주택에 전기차 충전기를 의무 설치하도록 하고 있는 법령 때문에 충전기 설치가 늘었지만 그만큼 사람들은 더 불안해한다.

충전시설 의무설치 조례 내용 - 대부분 지하에 위치한다.

한편 이번에 사고가 난 벤츠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가 중국에서 10위권에 속하는 FARASIS 배터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각 제조사마다 탑재된 배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현대 기아차는 이미 모든 차량에 대한 정보를 오픈했고, 다른 회사들도 준비를 하고 있다. 관련한 법규도 정비 중이지만 지금 분위기라면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회사의 차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구매할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정부도 빠르게 움직여서 서울시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공공기관으로서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단 자신들이 조절할 수 있는 공공 충전기의 최대 충전 범위를 조절하고, 공공 주택에서의 충전 한도도 줄이도록 권고하고 있다. 거기에 90% 이상 충전된 전기차는 지하 주차장에 진입 자체를 하지 않도록 하는 권고안도 발의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90% 임을 제한하고 그걸 지키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현재로서는 없다. '


최대 충전량 설정 - 이미 안전 계수가 포함되어 있지만 불안하다.


기술적으로는 충전 중에 과 충전하면서 이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이미 입증되어 있다. 그러나 90% 이상 충전된 차량이 더 위험하다는 건 규제의 근거가 약하다. 90%라는 기준도 물리적으로 차량에 탑재된 셀의 총량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회사가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 에너지 규모를 기준으로 하는 상대적인 값일 뿐이다. 실제 설치되어 있는 배터리가 100 kWh이더라도, 제작사가 10%의 안전 마진을 두어 설정해 두면 소비자에게 보이는 100% 충전된 전력은 90 kWh다. 이런 상대적인 값에 10% 더 제한을 두겠다는 이야기는 결국 자동차 회사들이 제시하는 안전 계수를 사회가 신뢰할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번 화재 사고로 배터리 회사나 전기차 회사의 선택에 안전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당장은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전기차 회사들은 배터리 충전의 최대치에 더 많은 마진을 둘 수밖에 없다. 에너지를 덜 채워서 일단 덜 부담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안전을 위한 마진이 커질수록 최대 충전 시 달릴 수 있는 주행 거리는 줄어들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내연기관 차량 대비해서 충전 후 주행거리에서 불리했던 전기차가 극복해야 할 숙제가 더 늘어나는 셈이다.


테슬라에 적용된 Snake Cooling System - 수랭식이다.


이렇게 늘어난 숙제 때문에 자동차 회사와 배터리 회사들은 상황이 복잡해졌다. 한번 전기차에 화재가 나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만큼 전기차 인증에 대한 안전 관련 항목들은 더 타이트해질 것이다. 이런 요구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회사들만이 시장을 선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가격 경쟁력이 주를 이루던 배터리 시장에서도 누가 더 안정적인 시스템을 공급할 수 있는지가 기본 조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샤오미가 만든 SU7 - 전기차 사업의 진입 장벽이 높아질까?


이런 기술 장벽이 높아질수록 중소 배터리 업체들은 더 소외될 가능성이 크고 그런 과정에서 배터리 업체에 대한 구조조정이 뒤따를 수 있다. 전기차를 쉽게 생각하고 도전했던 IT 기업들도 더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다. 레트로한 자동차 회사들 입장에서는 일견 반가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기차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는 것은 여러 가지로 악재다. 당장 프리미엄 브랜드였던 벤츠조차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 브랜드 이미지를 적어도 전기차에 한해서는 회복이 쉽지 않아 졌다. 이미 팔려 나간 차들까지 언제 어디서든 유사한 사건이 있을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자동차 회사들도 선뜻 사업의 무게 중심을 전기차에 두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너무 급하게 달려온 전동화 속도에 대해서 진짜 필요한 내실 있는 기술력이 승부를 가르는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우리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대에 과연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자동차 전문 뉴스레터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내용을 브런치에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사고 이후 조사에서는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에 따라 구역별 피해 상황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전기차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안전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건 변함없어 보입니다. 앞으로의 기술 대응을 지켜보시죠.


https://autowe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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