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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Oct 20. 2024

새로운 가족의 형태에 익숙해 지자.

낮아진 출산율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했음을 의미한다.

얼마 전 페이스북 친구분이 올린 글에서 그 나라가 얼마나 민주화되었는지와 출산율이 반비례하는 그래프를 보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당연히 여자와 남자도 평등해야 하지만, 인류의 역사의 긴 시간 동안 실제 그런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민주화가 되었다는 건 그만큼 여권의 신장도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여자는 출산이라는 다음 세대를 잇는 의미 있는 행위를 하는 주체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생존에 있어서는 불리하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키우는 일에 메여 있는 동안에는 활동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잘해 줄 수 있는 배우자, 능력 있고 부유하고 힘이 센 사람들에게 더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힘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여자들의 필요를 순순히 내어 줄 의사가 없었나 보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여성들은 한 집안의 소유물로 여겨졌다. 결혼 지참금으로 팔려 가고, 자식을 더 낳으려고 첩을 들이고, 노동 집약적인 산업을 지탱할 노동력을 생산하는 일을 맡아서 여러 명의 아이를 낳는 힘든 과정을 해야만 했다. (그중에 많은 수를 일찍 떠나보내야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평등할 수 없었다. 출가외인이라 불리며 시집간 딸은 그쪽 집안사람이고, 대를 잇기 위해서는 아들을 선호했다. 출산과 육아로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았던 여성은 집안일이 맡겨졌고, 남성은 그런 집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짐을 떠안았다.


농경 사회였다면 집을 건사하고 난방을 할 땔감을 구하는 일이라도 남성도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집에서 필요한 일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산업 사회에 도시로 아파트로 터전이 옮겨지면서 여성과 남성이 맡은 일의 이분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얼마 전 우리의 일이고 지금도 아직 민주화가 되지 않고 의료 환경이 열악한 아프리카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여성도 고등 교육을 받고, 민주화가 되고, 여성의 권리가 높아지면서 여성 스스로도 생을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면서 결혼과 출산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의 영역이 된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해도 되는 일이 되면 사람들은 각자의 가치관과 상황에 따라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출산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들 떨어진 출산율에 대해 걱정이 많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연금은 누가 채울 거냐. 지금 당장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인구가 소멸할 거라고 위협한다. 0.7명이 되지 않는 출산율은 사실 좀 경이적이긴 하다. 100명씩 남녀가 있으면 200명이 70명만 낳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대로 유지되면 두 세대만 지나면 70명이 30명만 낳게 된다. 200명이 30명이 되는데 채 50명이 걸리지 않는 속도이니 전 세계 적으로도 유례가 없기는 하다.


대학일기, 독립일기 등 생활 속 경험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유명한 웹툰 작가 '자까'님은 얼마 전부터 결혼하고 출산해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는 '육아일기'를 네이버에 연재하고 있다. 너무 리얼하게 담겨 있는 고생하는 모습에 "왜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냐?"는 댓글이 가득하다. 나도 보면서 아 하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그때는 그랬었지 하고 공감 가는 내용이 많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참 힘든 일임은 확실하다.


https://naver.me/G8tKXvuW


그렇게 힘든 일이니 선뜻할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힘든 것이 뻔한 일을 하겠다고 스스로 선택하려면 그 일이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국가 경쟁력이니 받을지도 모르는 연금 같은 이야기 말고 나한테 내 삶에 적어도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지금 지를 수 있다. 그렇지만 당장 자신의 삶도 부담스러운 청년들에게 부담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아내와 나는 두 딸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선택했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살아간다. 출산으로 아내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춰야 했었고, 몸을 추스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도 부모가 처음이라 서툴고 아이는 크면서 그때 그때 달라서 또 새롭다. 이쯤 되면 답을 찾았다 싶을 때마다 새로운 도전이 와서 당황스럽지만 같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렇게 아이도 우리도 커가고 있다.


딸만 둘인 나는 우리 아이들이 컸을 때의 미래를 생각한다. 나는 남성이지만, 여성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지금의 여성의 권리가 커진 것이 다행스럽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누군가를 만나고 또 가정을 이룰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손자 손녀를 혹시 돌보게 되면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건 내 딸들이 결정할 문제다. 부모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삶을 잘 살아가는 것. 그래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는 것도 좋은 선택이고 힘들지만 할만하고 그만한 보람이 있다고 보여 주는 것 밖에 없다. 그걸 보고 안심하고 그렇게 일생을 함께 할 만한 파트너를 찾으면 내 딸들도 결혼이라는 것을 해 볼까, 아이를 낳아 볼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택을 하고 살아가야 그나마 행복할 수 있다.


다른 선택을 하면 또 어떠하랴. 혼자 살든, 친구와 지내든,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않든 나는 그저 아이들이 아니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기적 유전자가 영향을 미치는 주기보다 훨씬 빠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고 가족의 형태도 앞으로 더 다양해질 것이다.  그 모습이 내가 지나온 시대의 기준에 낯설 수 있지만 그 선택에서 다들 행복하기를 바라 본다. 이제는 정말 다양한 가족의 형태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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