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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CA 탄소발자국이 새로운 CO2 규제가 될 수 있다

평균 연비 규제는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by 이정원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바뀌는 것들 중에 자동차 산업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EU의 CO2 CAFÉ 규제 기준치다. 2014년 파리 기후 협약 이후로 유럽은 5년을 주기로 규제를 강화해 왔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매년 CO2 규제 기준을 강화하고 대신에 예전에 친환경차를 많이 팔아 쌓은 Credit으로 3년까지 갚을 수 있도록 하는 Carry back / Carry Forward 정책을 따른다. 이와 달리 유럽은 5년에 한 번 수치를 확 낮추고 그 기간 동안에 기술력을 확보해서 다음 5년을 준비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유럽 연합 공식 사이트에 공지된 내용을 보면 2020년에 1km당 95 CO2g이었던 레벨이 올해부터는 93.6 CO2g/km으로 낮아졌다.


https://climate.ec.europa.eu/eu-action/transport/road-transport-reducing-co2-emissions-vehicles/co2-emission-performance-standards-cars-and-vans_en


타겟1.png 유럽 연합에서 공지한 평균 연비 규제 - 만족하려면 전기차 밖에 답이 없다.


숫자만 보면, 별로 바뀐 것이 없어 보이지만, 기준이 되는 사이클이 다르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적용된 95 CO2g/km는 NEDC라고 하는 30-50-70-90-120 km/h의 정속 주행으로 구성된 단순화된 테스트 사이클이 기준이었다. 그러나 디젤 게이트로 배기가스 규제를 실도로 주행에 더 가깝게 업데이트한 2025년에는 WLTP라고 하는 실주행 패턴에 가까운 모드가 기준이다. 차종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NEDC 때보다 WLTP로 바꾸면 11% 정도 연비는 더 나빠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93.6 CO2g/km면 이전 모드로는 85 CO2g /km 수준이 되는 셈이다. 2024년에 기준을 겨우 맞춘 회사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차 한대당 10 CO2g/km에 달하는 벌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다. 유럽이 1g에 90유로니 벌금의 규모가 대당 900유로 이 더 추가되는 상황이다. 순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가솔린 차량이 120g, 디젤 소형차가 100g에 하이브리드도 90g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동차 CO2 수준을 감안하면 벌금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은 전기차 판매 밖에 없다.


Cycle Change.jpg 배기 연비 기준 사이클이 실사용자들 모드에 가까운 WLTP로 바뀌었다.


그러나, 실제 2024년도 유럽의 전기차 판매는 190만 대 수준으로 마켓 셰어가 16%에 불과하다. 거기에 전기차만 파는 테슬라와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중국 전기차를 감안하면,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이 엄격해진 규제를 감당할 가능성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의 연합체인 ACEA가 나서서 벌금을 유예해 달라고 EU에 공식 요청할만하다. 유럽 입장에서는 트럼프 2기로 접어들면서 미국이 방향을 어떻게 선회할지를 보면서 규제를 조정할 기회를 찾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자동차 전 생애 주기 동안 탄소발자국을 관리하는 VLCA는 새로운 CO2 규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완성차가 소비자에게 전달된 후에 주행 중에 나오는 CO2 만 규제하는 CAFÉ 규제모다 원자재의 생성부터 제조과정에 드는 에너지까지 취합하는 VLCA가 더 실질적인 기후 위기에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배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금속을 제련하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더 많은 CO2를 생성해 낸다. 전기차가 진짜 친환경적이 되려면 이 모든 과정이 개선되어야 한다.


타겟2.png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탄소 발생 비율 - 전기차가 만드는 과정에서 CO2가 더 많이 나온다.


일반 전기차 개발에 뒤쳐진 유럽에게는 VLCA 탄소 발자국 관리 규제가 유리한 면이 있다. 대서양의 편서풍을 이용한 풍력 발전과 원자력 발전으로 이산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발전이 발달하다 보니 제조 과정에서 드는 에너지에서 합산되는 CO2는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거기에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수출되는 차량들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은 권역 밖에서 오는 자동차에 마치 관세처럼 장벽을 쌓을 수 있다. 거기에 주요 부품들의 생성과 이송 과정도 모두 합산되기 때문에 VLCA 탄소 발자국 관리 규제를 높일수록 외국계 회사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유럽 연합 내에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EU 입장에서는 유럽 자동차 회사들을 압박하는 CAFE 규제보다 VLCA 탄소 발자국 관리 규제가 더 전략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환경을 핑계로 하면서 관세 같은 효과를 내는 이런 “그림자 관세”는 다양한 형태로 이미 존재한다. 최근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서구 자동차 회사를 다 쫓아낸 러시아는 그 빈자리를 중국 자동차 회사가 채워 주기를 바랐다. 특히 비워진 자동차 공장을 굴릴 수 있는 부품 업체들도 같이 들어와서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했다.


타겟6.jpg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자동차 점유율 변화 - 중국차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 삼프로 TV 참조


그러나, 자국 내에서도 생산 물량 용량이 넘쳐 나는 중국은 최종 조립만 러시아에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했다. 기대와는 달리 러시아 자동차 산업은 답보를 걷고 중국 자동차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60%에 달하자 러시아 정부는 Recycling FEE라고 하는 환경세를 걷기 시작했다. 자국에서 생산되는 차에만 환급이 되는 이 회사는 관세는 아니지만, 관세와 비슷한 효과를 내며 중국 자동차 회사들에게 현지 투자 압박이 되고 있다.


관세5.jpg 러시아가 붙인 친환경 재활용 세금 - 결국 자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 회사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 삼프로 TV 참조


결국 피-아의 구분이 쉽지 않고 전기차 회사에만 너무 유리한 CAFÉ 규제는 점점 힘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트럼프는 자국 주의를 앞세우며 미국은 다른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유럽도 한국도 다른 나라들도 눈치만 보는 요즘 VLCA는 신경제 냉전 시대에 자국 산업을 보호할 적절한 명분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현대차는 VLCA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실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에게는 이미 2-3년 전부터 진행되었던 준비다. 결국 변화에 빠른 대응은 준비된 회사만이 할 수 있다. 번거로운 숙제라 생각하지 말고 산업군 전체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시스템을 다시금 돌아봐야 할 시기다.




자동차 산업동향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해 봅니다. 트럼프가 쏘아 올린 관세에 친환경을 빙자한 규제까지 자동차 산업의 벽이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https://autowe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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