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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 보고서 - 상호관세를 통해 미국이 진짜 원하는 것

그러나 시장의 힘은 만만치 않다.

by 이정원

트럼프의 그날이 왔다. 그동안 맺었던 FTA를 모두 무시하고 미국은 앞으로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도 미국을 대상으로 큰 흑자를 보고 있는 위험 국가로 분류되어 25%의 관세 대상국이 되었다. 그동안 FTA로 이득을 봐 온 우리나라 기업으로서는 하루아침에 시장에 큰 장벽이 생긴 셈이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전 세계가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퇴라 했던가. 우리가 이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미국의 입장에서 도대체 왜 미국이 이런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단초가 되는 자료가 작년 11월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의 ‘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 일명 ‘미란 보고서’다.


트럼프 상호 관세.jpg 상호 관세를 발표하는 트럼프 - 관세율은 그냥 미국 적자를 교역량으로 나눈 것이더군요.


일단 관세와 환율의 관계를 알아보자. 한 나라가 환율이 높아져서 1달러를 사기 위해 자국 화폐가 더 많이 필요하면, 자연스럽게 수출 단가는 낮아진다. 우리나라에서 100만 원 하는 물건이 1달러에 천 원일 때는 1,000달러지만, 2천 원이면 반값인 500달러가 된다. 물건의 가치는 그대로인데 현지에서의 가격이 낮아지면 그만큼 매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환율은 수출에 유리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수출이 늘면, 그 나라의 물건을 사기 위해 지불되는 달러가 국내로 많이 유입되고 자국 화폐를 원하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환율은 낮아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환율이 낮아지면 수출은 불리해지는 대신 수입 물가는 낮아지므로 수입이 늘어난다. 그렇게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무역 적자가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달러 수요가 더 늘어나면서 환율은 다시 상승한다.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무역이 경제에 큰 영역을 차지할수록 환율과 무역 수지는 서로 얽혀서 이런 사이클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냉전 시대 이후 미국이 패권 국가가 되면서 모든 나라들은 무역에서 미국 달러를 기축화폐로 통용한다. 그리고 미국의 무역 수지와 상관없이 모든 나라들이 달러를 원한다. 특히 1990년대 말 아시아권에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달러를 일정 규모 이상 확보해 놓지 않으면 국가가 부도에 빠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금과 함께 외환 거래 안정화를 위해 달러를 모아 두기 시작했고 그 규모는 17조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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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 동안 환율과 S&P500 지수의 변화 - 혼란이 따로 없습니다.


거기에 미국 증시가 크게 상승하면서 미국에 직접 투자를 원하는 전 세계의 자본들이 달러를 원한다. 이렇게 달러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달러를 비싸게 사야 하는 이른바 강달러 추세는 꺾일 줄 모르게 된다. 기축 통화가 가지는 숙명과 같이 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가치이지만 달러가 강해지면서 미국산 제품은 외국에서 더 비싸지고 외국의 제품들은 미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더 싸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불균형으로 인해 미국 내의 제조업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수출보다 수입이 유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2003년 중국이 WTO 체제에 편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1,800만 명에 달하던 제조업 종사자가 2023년에는 1,200만 명으로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미국의 무역 적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더 많은 제품들을 수입할수록 그 대금으로 달러는 미국 밖으로 나가고 그렇게 나간 돈을 채우기 위해 미국 정부는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US_Trade_Gap.jpg 미국이 돈을 세상을 먹여 살리는 적자 추이 - 더 이상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긴 합니다.


그렇게 쌓인 미국 국채가 35조 달러를 넘어서고 이자만으로 1조 달러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 되자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패권을 쥐고 있지만 빚이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가 되는 것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 스티브 미란은 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강세 일변도로 가고 있는 달러를 약세로 바꾸고, 무역 수지를 흑자로 돌려 해외로 나가는 달러를 막고, 다른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국채들을 처리하면서 부채와 이자의 부담을 낮춰야겠다는 방향성을 정했다.


일각에서 나오는 기존 국채를 이자도 없는 100년짜리 국채로 전환할 수도 있다는 예측도 여기에서 나온다. 국채를 사는 국가나 투자자라면 당연히 이자 수익을 염두에 두고 투자하는 것이 정석인데 낮은 이자 또는 아예 이자도 없는 장기 국채를 누가 사겠냐 싶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거래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국의 군사적인 보호를 받아야 하는 한국 같은 나라에게 미군 주둔을 조건으로 미국 정부가 요청하면 과연 거절할 수 있을까? 이자 없는 국채로 전환하지 않더라도 국채를 상환할 때 이자에서 나토에 내는 방위비를 제하고 주는 식으로 나서면 실질적으로는 이자를 거의 주지 않는 것과 동일할 수도 있다.

CanadaMexico_Tarrifs-1024x796.jpg 미국 교역량과 GDP 비중을 다룬 JP모건 자료 - 중국은 양은 많지만 이미 미국 의존도를 많이 낮추었다.

관세도 마찬가지다. 높은 관세는 근시안적으로는 물가를 올려 인플레이션 압박을 주지만 경기는 악화시켜 금리를 높일 수도 없는 딜레마적인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무역에 의존도가 높은 나라 즉, 미국으로의 수출이 위축되면 자국 경제가 위험한 나라들은 높은 관세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런 절박한 국가들에게 관세는 미국 국채를 전환하고 부채를 줄이는 협상을 새롭게 하기에 가장 좋은 압박용 카드가 된다. 미국에 수출하는 무역량과 그 수출량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둘 다 높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왜 미국이 가장 먼저 관세 폭탄선언을 했는지, 왜 뜬금없이 베트남이 46%로 두 번째로 높은 관세 대상국이 되었는지를 맥락을 알면 이해할 수 있다.


Export_Ratio_History-1024x451.png 우리나라는 여전히 미국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렇듯 미국이 시작한 관세 전쟁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 내 제조업을 되살리겠다는 의도를 넘어 달러와 세계 경제의 판을 바꿔서 자국의 부채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읽힌다. 개별 기업들은 수출 단가의 상승으로 인한 매출 감소가 가장 우려되겠지만 판 자체를 바꾸겠다는 미국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가장 대처하기 어렵다.


경제 활동을 뒤에서 받쳐주던 정부가,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정부가 전면에 나선 작금의 상황을 일개 기업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31조를 투자한다고 발표해도 이틀 뒤 자동차 관세를 공표해 버리는 상대를 대응할 때는 냉철하게 득과 실을 따져야 한다. 전체 수출량의 18%에 달하는 미국 수출 비중을 대체할 시장을 확보하는 노력과 함께 정치적으로 기업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 이제 자기 돈을 들여가면서 세계의 번영을 지켜왔던 팍스 아메리카나는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다.




자동차 산업 동향 전문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트럼프의 예상과는 달리, 미국채 금리가 오르면서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상호 관세는 90일 유예되었네요. 생각보다 세상은 훨씬 더 많이 연결되어 있고, 시장의 힘은 통제하기 어렵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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