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브랜드에 걸맞은 배터리 관리로 시장을 이끌고 있다.
전기차는 일반적인 내연기관차보다 비싸다. 그리고 충전하는 일이 번거롭고 한번 충전해서 갈 수 있는 거리도 짧으니 자주 충전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전기차를 타면 왠지 환경에 관심 있거나 트렌드를 잘 따라가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비싸고 불편하지만 남다르게 보이게 해 주는 물건을 우리는 보통 명품이라고 부른다. 전기차가 막 보급되는 시기에 전기차는 이렇듯 명품처럼 여겨졌었다.
지금은 저가형 전기차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일반 소비자들로 확대되지만, 전기차 수요의 큰 부분은 남다르게 보이고 싶은 럭셔리카 수요와 겹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테슬라의 등장으로 시장을 빼앗긴 기존의 럭셔리카 브랜드들도 속속 전기차 모델을 내놓으면서 기존 충성 고객들을 붙잡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포르셰의 타이칸, 벤츠의 EQ 시리즈 등 많은 모델들이 나오고 있는 전쟁터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회사가 바로 BMW다.
2024년 기준으로 프리미엄 EV 시장의 점유율을 보면 다른 유수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BMW가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준중형부터 대형 SUV까지 다양한 전기차 라인업을 선보이며 무언가 새로운 차를 원하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전체 판매되는 차량의 15% 이상을 전기차로 판매할 정도로 BMW의 매출에 있어서 전기차는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같은 그룹에 있는 디자인이 예쁜 소형차 MINI도 전동화가 한창이다. 콤팩트한 이미지에 전기차라는 프리미엄이 붙이면서 2024년에만 6만 대 가까운 Electrified MINI가 판매되었다. 전체 MINI 판매 중에 22%가 넘는 비율이다. 앞으로 BMW 그룹은 2030년까지 BMW 브랜드는 30%, MINI 브랜드는 50%를 전기차로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변화를 진행하고 있다.
전기차 규모를 늘리는 과정의 핵심은 배터리다. 좋은 품질을 보장하고 저렴한 배터리를 확보하는지는 전기차 사업의 가장 큰 숙제다. 트럼프 이전부터도 배터리는 관세의 영향을 많이 받는 비싼 부품이었다. 거기에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는 핵심 부품이기도 하다. 원가 저감만을 목표로 저렴한 써드파티 배터리 회사인 파라시스 배터리를 장착했다가 시장에서 품질 문제로 곤욕을 겪고 있는 Mercedes-Benz의 사례를 보더라도 럭셔리 브랜드라면 그 이름에 걸맞은 안전한 배터리 관리가 필수다.
배터리의 명확한 관리를 위해 BMW가 선택한 방법은 배터리 회사와의 합작을 통해 배터리 팩을 자체 생산 관리하는 것이다. 테슬라는 수익을 위해 기가 팩토리에서 혼자 만들려고 하다가 실패했던 것과는 달리 전 세계에서 차를 만들어 파는 BMW는 차량 공장 곁에 배터리 공장을 지으면서 지역별로 대응하는 "Local to Local"이라는 전략을 세웠다. 되도록 차량 공장 가까이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해서 공정은 더 단순하게 만들고 원가는 낮추었다.
이런 방법을 통하면 배터리 팩의 품질에 대한 검증을 좀 더 확실하게 할 수 있다. BMW 관리 하에 생산된 배터리 셀은 완전한 팩으로 조립된 후, 바로 옆 차량 공장으로 건너가 조립 중인 전기차에 설치된다. 이동 거리가 짧으니 이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품질 문제를 줄일 수 있고 각 단계마다 품질 검사를 BMW가 직접 수행하기 때문에 기준에 미달되는 부품은 차량에 설치하기 전에 미리 거를 수 있다. BMW의 전기차가 화재 이슈 발생 건수가 현저히 낮은 이유도 이런 구조적인 이점 덕분이다.
단순히 배터리를 생산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BMW는 자기가 쓸 배터리를 개발하는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BMW Neue Klasse Battery라는 차세대 배터리는 수차례에 걸쳐서 버전을 업데이트하면서 성능이 향상되고 있다. 같이 개발하는 배터리 파트너 회사도 하나의 회사에 의존하기보다는 삼성 SDI, CATL, EVE Energy, AESC 등 각 대륙을 대표하는 회사들과 지역별로 손을 잡았다. 자기 차량에 들어갈 배터리에 대한 기술적인 리더십을 BMW가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로컬 중소 배터리 회사들 입장에서는 BMW의 이런 정책으로 최소한의 생산을 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보니 BMW가 요구하는 최적의 설계 사양 요구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이런 대륙별 지역 우선 주의 정책은 트럼프 시대에 접어들어 더 빛을 발하고 있다. 관세 장벽이 높아지고 특히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지에서 생산되는 배터리와 전기차는 이런 정치적 상황에 의한 리스크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원가 저감만을 위해 가장 가격이 싼 업체를 찾아 글로벌 소싱을 내세운 기업들이 다자간 무역 전쟁 속에서 부품을 구하지 못해 차를 생산하지 못하고, 올라간 관세 때문에 수익률이 급감하는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과 비교해 보면, BMW는 흔들리지 않는 건실한 네트워크로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남다른 전략으로 전기차 시장에서 확실히 자리매김한 BMW는 차세대 기술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에너지 밀도와 안정성이 높다고 알려진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Soild Power라는 회사와 함께 개발해 이미 프로토 차량을 운행 중에 있다. 빠르면 2027년이면 양산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아직 수익이 크게 나지 않을 정도로 단가가 높겠지만, BMW에는 그만한 가격은 차값으로 커버할 수 있는 비싼 모델들이 존재한다.
도요타와 함께 수소를 이용한 연료 전지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일찍부터 수소차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 온 도요타가 수소 탱크와 수소 연료 전지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BMW는 전기차 연구를 통해 구축한 모터 구동 시스템을 활용하는 구조다. 두 회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수소 연료 전지 구동 시스템은 두 회사 모두의 모델에 적용될 예정인데 시스템 및 부품을 표준화하고 배터리 소재를 공동으로 조달하며, 재활용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규모를 통해 지금보다 저렴한 연료 전지차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같은 차를 다른 회사보다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프리미엄은 자동차 회사에게는 최대의 무기다. 높은 영업 이익률은 다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많은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그렇게 쌓인 이익에 안주하거나 더 높은 이익을 위한 원가 저감에만 집중할 때 BMW는 전기차를 중심에 두고 흔들리지 않는 공급망과 생산망을 구축했다. 그리고 품질에서 돈값을 하는 모델들을 통해 럭셔리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더욱 높여 가고 있다. BMW보다 더 많은 차를 파는 회사들은 많다. 그러나 BMW만큼 돈을 제대로 쓸 줄 하는 부자 회사는 드물다. 전기차 시대에 비싸도 제대로 된 전기차를 만들고자 하는 BMW가 선보일 새로운 자동차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