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기능에 새 기능을 추가하기

기존 모델의 부품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고려가 필요하다.

by 이정원

신 차에 새로운 기능을 먼저 이야기하긴 했지만 새 모델을 내놓는다고 해서 매번 백지상태에서 창조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기존에 존재하는 모델을 기반으로 기존 부품과 빡빡하게 짜인 아키텍처에 새로운 기능을 얹는 진화의 과정이 R&D 실무의 8할 이상을 차지한다. 간단하게 기능을 추가하면 될 것 같지만 기존 부품과의 조화를 위해서는 베이스 모델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맞추어야 하는 항목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image.png 기존의 부품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지표로 COCA Ratio를 활용한다.


전체 부품 리스트를 기반으로 연구소에서는 신차에 들어가는 부품들 중에 기존 모델에서 Carry Over 할 수 있는 부품들을 먼저 추린다. 그리고 기존 모델에는 없지만, 다른 차종에서는 이미 적용해서 양산을 한 Carry Across 할 수 있는 부품들이 있는지도 따져 본다. 이미 개발되어 있고, 기능이 검증된 부품을 많이 적용하면 할수록 새로 투자해야 할 개발비도, 비싼 금형 투자도 아낄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부품을 이어서 적용할 수 있도록 검토하는 작업은 신차 개발의 규모를 결정하는 핵심 업무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면 가장 먼저 하드웨어를 맞추어야 한다. 새로운 기능을 제어할 스위치 하나가 추가되어도 정면 패드나 스티어링 휠의 플라스틱 사출 금형부터 새로 파야 한다. 새로운 부품이 들어갈 공간이 있는지도 보고 늘어난 크기로 위치가 바뀌면 조립에 필요한 지그나 기존 부품들의 배치도 달라진다. 차량 전체의 중량과 밸런스에 영향도 따지고 조립 순서도 새로 조정하기도 한다.


image.png 다양한 종류의 와이어링 하니스 - 유라코퍼레이션 홈페이지


물리적인 뼈대를 맞췄다면 다음은 자동차의 신경망과 두뇌를 수술할 차례다. 새 기능을 위한 신호를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온전히 전달할 와이어링 하니스의 핀 맵과 회로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부품 간 통신을 관장하는 E/E 아키텍처의 수정도 필수적이다. 연관된 제어장치들의 소프트웨어를 일제히 업데이트해야 하며, 늘어난 연산량과 전력 소모량을 감당하기 위해 하드웨어 사양 자체를 높이거나 추가적인 열 관리 대책까지 세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서는 안 된다. 새 기능이 추가되었다고 해서 기존 기능이 오작동하거나 먹통이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면 오히려 새 기능 때문에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그래서 단순히 새로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만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새 기능을 작동하든 하지 않든 원래 있던 기본 기능은 제대로 작도하는지를 확인하는 혹독한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추가된 새로운 기능이 고장 나더라도 차량의 핵심 주행 성능이나 기존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키지 않도록 방어하는 Fail-safe 설계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image.png Fail Safe 모드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정한다.


이 거대한 퍼즐 맞추기는 결코 한 부서의 독단으로 완성될 수 없다. 기능을 주도하는 메인 부서가 유관 부서들을 한데 모아 변경 사안을 설명하고 발생할 수 있는 사이드 임팩트를 크로스 체크해야 한다. 연구소 내의 협업을 넘어, 생산 라인 작업자의 조립 동선과 향후 서비스센터에서의 정비성까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치열하게 고민할 때 비로소 성공적인 업그레이드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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