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듣는 것도 좋지만 부르는 건 더 좋다.
노래가 좋아서, 스물다섯 신입 때 40대 선배들과 함께 하는 노래방 회식도 싫지 않았다.
노래방 회식 문화가 사라진 요즘은 혼자 동전노래방을 종종 찾는다.
이런 얘길 하면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꽤 잘 부를 거라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진 않다.
성적은 대체로 공부량에 비례하고, 통장잔고는 아끼고 굴리는 만큼 불어나게 마련인데, 노래는 달랐다.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들은 처음부터 따로 있었다.
생김새와 마찬가지로 노래실력도 타고나는 재능 같았다.
그래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부러웠다. 결혼식에 가면 신랑, 신부 못지않게 축가자에게 눈이 갔다. 원래 알던 사람이 뜻밖의 노래실력을 드러내면, 그 순간부터 괜히 다르게 보였다.
노래를 잘 부르면 인생이 얼마나 즐거울까?
나도 노래를 잘 부르고 싶었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주고 싶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누구도 내게 축가를 맡겨주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노래를 배우고 싶어졌다.
100미터를 20초에 뛰던 사람이 갑자기 15초에 뛰기는 어렵겠지만, 계속 연습하면 18초는 가능하지 않을까?
달리기처럼 노래도 제대로 배우고 연습하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만 살아왔다면, 남은 인생은 '노래 좀 부르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졌다.
검색해 보니 마침 회사 근처에 보컬 전문학원이 하나 있었다.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수강생들의 before, after 영상이 주르륵 나타났다. 십수개의 영상을 보고 들으며 마음은 나도 이미 수강생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언제나 시간이었다.
아침 9시 출근, 퇴근과 동시에 시작되는 육아. 빡빡한 일상에 보컬 학원이 들어갈 틈은 없어 보였다.
회사를 관두면 할 수 있을까?
노래를 배우겠다고 퇴사라니,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남은 육아휴직을 써야 할까?
휴직을 하면 당장 수입이 끊길 텐데 학원비 낼 여유는 있고?
게다가 노래는 먹고사는데 아무 영향이 없는, 말하자면 '사치품' 같은 거였다.
따지고 들자 시작하지 못할 이유는 끝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월 어느 토요일, 나는 학원을 찾아갔다.
회사 동료 J도 함께였다. 노래를 배우고 싶다는 말에 자기도 그렇다며 맞장구를 치길래 덥석 끌고 왔다. 누군가와 함께 하면 의리 때문에라도 꾸준히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고 네모난 방에 보컬선생님과 J와 나, 셋이서 무릎을 맞대고 앉았다.
"타고난 재능이 없어도 잘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 방법을 배우는 게 보컬트레이닝이죠."
예상한 답변이었지만, 직접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얼마나 배워야 노래 좀 한다 싶은 수준이 될까요?"
선생님이 익숙한 질문인 듯 웃어 보이셨다.
"사람마다 달라요. 하지만 호흡법만 배워도 노래가 달라진 게 바로 느껴지실 걸요."
호흡이야 평생 해온 일이다. 자신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J와 나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고?
고!
"그럼 저희 지금 바로 배울게요!"
선생님이 갑자기 등장한 아줌마 수강생들의 저돌적인 태도에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셨다.
"아, 오늘은 제가 일정이 있는데..."
J가 나 못지않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내겐 위안이 되었다. 후배인 J가 내 제안에 마지못해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서.
"... 두 분, 다음 주는 언제 괜찮으세요?"
상담을 오기 전 미리 고민해 두었다.
회사에 다니며 초딩과 유딩 아이를 하나씩 키우는 40대 아줌마 둘이 노래를 배우기에 괜찮은 시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올 수 있는 시간.
남편도 아이도 직장 상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시간.
그런 시간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점심시간이요! 12시쯤 괜찮으세요?"
선생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예~! 우리도 이제 노래를 배운다.
영상에서 본 수강생들처럼 우리에게도 몇 달 후면 after가 있으리.
노래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 평소 좋아하던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J가 너무 잘 부르면 내가 위축될 것 같았고, 내가 잘 부르면 그녀가 위축될까 내심 염려했는데, 서로 위축될 일은 없겠다는 걸 확인한 시간이었다.
"노래에서 악기에 해당하는 건 뭘까요?"
헤어지기 전, 선생님이 물었다.
"음... 몸이요?"
"그렇죠. 노래를 부르는 사람, 그 자체가 악기죠."
그냥 노래만 배우려던 건데 덤으로 몸 관리까지 하게 생겼다.
그날 밤, J가 링크를 보내왔다. 우리 지역에서 다음 달에 '전국노래자랑'이 열린다는 홍보문이었다.
- 일단 예심 도전?
내 제안을 받아준 보답으로 나도 응해야 할 것 같지만, 미안하다.
- 응원할게요.ㅋㅋ 솔로로 먼저 데뷔하세요.
전국노래자랑은 아직 자신이 없지만, 슬슬 연말에 결혼할 지인이 있나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