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대신 노래 : 점심시간에 노래 배우기
"연습 많이 하셨어요?"
첫 수업 날, 회사 로비에서 만난 J가 물었다.
"아니, 연습을 벌써 하셨어요?"
학창 시절 라이벌이 '너 어제 몇 시간 잤어?' 할 때처럼 묘한 경쟁심이 발동한다.
"자, 두 분 노래는 골라 오셨나요?"
부르고 싶은 노래 세 곡 고르기. 상담 때 선생님이 주신 숙제였다.
그중 한 곡이 앞으로 연습곡이 될 예정이었다.
좋아하는 노래야 열 곡도 거뜬히 말할 수 있다. 10대부터 자주 듣던 노래, 즐겨보던 드라마 OST, 노래방에서 나름 꽤 잘 부른다고 느꼈던 곡들까지, 언제나 열어볼 수 있게 저장해 뒀으니까.
추리고 추려도 도무지 더 이상 줄지 않아 결국 네 곡을 말씀드렸다.
- 연극이 끝난 후(샤프), 인연(이선희), 신청곡(이소라),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전미도)
"제가 너무 어려운 노래를 고른 걸까요?"
문득 민망해졌다. 선생님과 J가 덧셈도 서툰데 미적분을 욕심낸다고 웃을 것만 같다.
"예지님은 혹시 닮고 싶은 가수가 있으세요? 선호하는 노래 스타일이나?"
좋아하는 가수는 많다. 악동뮤지션, 에일리, 정인, 그리고 박은빈과 전미도의 노래도 즐겨 듣는다.
하지만 닮고 싶은 가수로 꼽기엔 거리감이 있었다. 난 그저 노래가 좋을 뿐인데.
"모르겠어요. 저한테 어울리는 스타일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요."
솔직히 선생님이 딱 정해주셨으면 했다. 단골 옷가게 사장님이 '손님 분위기에는 이런 셔츠가 딱이에요' 하듯, 선생님이 '네 목소리에는 이런 노래가 어울려요', 하고 알려주셨으면.
선생님과 함께 음정이 지나치게 높거나, 혹은 낮거나, 창법이 까다로운 곡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마지막 남은 노래는, 전미도의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듣고 좋아서 몇 번이고 불렀던 내 노래방 18번이다.
노래를 정하고 나자 선생님이 방긋 웃으셨다. 내가 '이선희'나 '이소라'를 고집하지 않아서 안도하는 웃음 같다.
"자, 먼저 숨 한번 쉬어볼까요?"
노래의 기본이라는 '호흡법'부터 배우기로 했다.
노래를 부를 때는 가슴이 아니라 배로 숨을 들이마시는 게 좋다고 하셨다. 말로만 듣던 복식호흡이다.
"어깨가 들썩이면 안 돼요. 손을 여기다 대고 다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왼쪽 윗배에 손을 얹었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마시고, 내쉬고. 처음 풍선 부는 법을 배웠을 때처럼 배가 볼록하게 부풀었다가 바람이 빠지고, 또 조금 더 부풀었다가 빠지기를 반복했다.
꾸르륵, 밥도 안 넣어주면서 숨만 넣어주니까 배가 아우성이다. 다음 수업 땐 배를 든든히 채우고 와야겠다.
"어깨 힘을 빼세요."
배로 하는 호흡이 익숙하지 않아 잠시만 정신을 딴 데 돌려도 어깨가 들썩였다. 선생님이 입시생들은 호흡만 몇 달을 배우기도 한하는 말을 덧붙이셨다. 설마 우리도? J와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다행히 우리 선생님은 그렇게 융통성 없는 분이 아니었다.
"일단 노래 한 곡 불러 볼까요? 집에서도 계속 호흡 연습은 하시고요."
꺄. 드디어 노래를 부른다. 복식호흡으로.
노래반, 공기반. 가능할 것인가!
자주 듣고 부른 곡인데도 호흡을 신경 쓰니 엉망이었다.
선생님과 J가 중간중간 박수를 쳐줬지만, 그게 칭찬이 아니라 배려와 응원이라는 걸 안다.
"어디서 숨 쉬어야 할지 헷갈리죠?"
"네!"
선생님이 모니터에 가사를 띄웠다.
"그럴 땐 가수가 어디서 숨을 쉬는지 보고 따라 하면 돼요."
전미도가 직접 부른 영상에서 숨 쉬는 곳을 확인해 '/'표시를 했다.
그 위치를 의식하며 다시 불렀다.
널 처음 사진으로 본 그날 /
구십구년 일월 삼십일일 /
그날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
나 하나만 기다려준 너를 /
방금 전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나아진 기분이다.
비로소 긴 여정의 첫 발을 내디딘 것 같다. 노래 좀 하는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더 많은 걸음을 디뎌야 할지 아직은 감도 안 오지만 말이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J가 말했다.
"어깨 긴장 빼는 게 어렵네요."
"그죠? 나도 그래요."
그 대화를 나누던 순간조차 우리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회사에 늦을까 봐.
잰걸음으로 걷다 보니 방금 배운 복식호흡은커녕 평소처럼 얕은 숨도 벅찼다.
몸에서 힘을 빼고 편하게 숨 쉬어 본 마지막이 언제였더라.
남편은 출장으로 일주일간 집을 비웠다. 혼자서 갓 초딩이 된 첫째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를 챙겨야 했다.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나 첫째 준비물을 챙기며 하루를 시작했다. 색연필, 사인펜 한 자루마다 이름 스티커를 붙이고, 새로 살 것을 주문하고, 제출할 서류를 작성했다.
여덟 살 아이가 그것들을 등에 메고 학교라는 사회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짠했다. 밥이라도 잘 먹여야지 싶어 아침 준비에 더 공을 들였다.
돌봄을 세 시간이나 넣었는데도 하교시간은 어린이집에 비하면 훨씬 빨랐다.
학원 차를 놓칠까 봐, 실수로 다른 차를 탈까 봐, 마음 한편이 늘 비상대기조처럼 긴장돼 있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근을 피하려면 더 빨리, 더 많이 일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키우는 내 상황이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눈치가 보였다.
화장실도 미루다 집에 와 저녁을 차린 뒤에야 마음 놓고 들렀다.
방광까지도 팽팽하게 긴장한 날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시간이 더 특별하다.
아이들 걱정 없이, 일 생각도 내려놓고, 의식적으로나마 힘을 빼고 온몸으로 숨을 마시고 뱉은 이 시간이.
이 시간이 앞으로 우리의 숨 쉴 틈, '/'이 되어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