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대신 노래 : 점심시간에 노래 배우기
음악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스물아홉 겨울, 타지에서 자취하던 나는 악보도 읽을 줄 모르면서 밴드 동호회를 찾아갔다. 모처럼의 뉴페이스가 반가웠던 선배들은, 인터넷에서 동호회를 검색해 제 발로 찾아온 내게 '뭐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악기를 다룰 줄 모른다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기타는 얼마나 쳐 봤냐 피아노는 어디까지 배웠냐 끈질기게 물었다.
마침내 내가 겸손한 게 아니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라는 걸 알게 된 선배들은 허탈해했다. 그래도 소도시의 밴드 동호회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한 법, 게다가 그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선배들은 나를 내쫓지 않고 마이크를 쥐여주었다. 일종의 보컬 오디션이었다.
그때 부른 노래가 '캔디맨'의 <일기>.
노래가 끝난 후, 마이크를 쥐여주었던 회장 오빠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목소리가 참 예쁘네. 음, 동요를 부르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
분명 칭찬처럼 들렸는데, 의아하게도 그날 이후 누구도 내게 다시 마이크를 주지 않았다. 마치 내가 마이크를 또 잡을까 두려운 사람들처럼. 대신 선배들은 악보도 볼 줄 모르는 내게 드럼스틱을 쥐여주었다. 드럼 칠 사람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마치 어린이가 동요를 부르는 느낌이에요."
선생님의 피드백에 12년 전 기억이 소환되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모든 음을 너무 '정직하게' 부르다 보니 노래가 '평평하게' 들린다는 뜻이에요."
회장 오빠의 말이 칭찬이 아니었음을 12년 만에 깨달았다.
잘 부르지 못하니 크게라도 불러야 했다. 모든 음을 또박또박, 힘주어 불렀다.
그래서일까. 노래방에 가면 3~4곡만 불러도 금세 목이 쉬었다. 이후에는 음이탈이 나기 쉬운 발라드를 포기하고 샤우팅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미 간 목, 아낌없이 질러라도 보자 싶어서.
고백하자면 나는 노래뿐 아니라 다른 일에서도 늘 '강-강-강-강'으로 사는 편이다.
뭐든 빨리, 밀도 있게 해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사서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이 준비물을 챙기는 일로 그랬다. 알림장에 뜬 그날, 모든 준비물을 다 챙겨 책가방에 넣어야 되는 줄 알았다. 파일박스 하나를 찾겠다고 새벽배송이 되는 사이트를 다 뒤졌다. 겨우 구해서 다음날 챙겨 보냈는데, 그로부터 2주가 지나고도 알림장에는 여전히 '파일박스를 챙겨 오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내 얘기를 들은 동기는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런 일에까지 조바심을 내? 마감일이 수요일이면 금요일에 내는 거야. 그래야 선생님도 학부모 핑계로 며칠 늦게 일하시지."
이해는 안 됐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그 동기가 나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것.
"리듬을 느끼면서 부르면 훨씬 편해지고, 듣는 사람도 듣기 좋아요."
간단했다. 모든 음에 힘을 주지 말고, 빼야 할 땐 과감히 빼라는 거다.
"근데 힘 뺄 곳을 어떻게 알죠?"
내가 묻자 선생님이 웃으며 대꾸하셨다.
"혹시 박자 기억나세요?"
"4분의 4박자 같은 거요?"
"오! 바로 아시네요. 이 곡이 바로 4분의 4박자죠."
"네. 강-약-중강-약."
초등학교를 허투루 다니진 않은 모양이다.
선생님이 엄지를 추켜세우며 칭찬해 주자 금세 의기양양해졌다.
"노래 부를 때 그 박자를 의식해 보세요. '강'에서는 힘을 주고 '약'에서는 힘을 빼면 돼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널 처음 사(강)진으로 본(강) 그날(강)...'
가수의 라이브 영상을 보니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이전에는 몰랐던 음절의 미묘한 차이가 들렸다.
아이를 낳고 세상이 새롭게 보였던 것처럼, 이제 또 전에 없던 세상이 펼쳐질 건가 보다.
못 보던 게 보이고 못 듣던 게 들린다.
선생님은 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뿐 아니라 발음이나 길이를 다르게 하는 걸로도 리듬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마이크를 쥐었다. 노래방 반주에 맞춰 불러볼 시간이다.
선생님이 손뼉으로 박자를 짚어주셨다. 손뼉소리가 크게 들릴 때마다 나도 목소리에 힘을 줬다.
오마이갓. 호흡에 리듬까지 신경 썼더니 노래가 아주 엉망이다. 지난 시간보다 더 엉망이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가능했다. 못 보던 게 보이고 못 듣던 게 들리는 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살던 대로 살 걸 그랬나.
가끔 에코가 좋은 노래방에 가면 내가 노래를 잘하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는데, 이제 그런 시절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할 것 같다.
어쨌든 오늘도 하나는 배웠다. '강-강-강-강' 대신 중간중간 힘을 빼야 한다는 것.
나도 편하고 남들도 편하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