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너에게

by 귤예지

안녕, 엄마야.

평온히 잠든 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하루를 살아가기에 필요한 힘을 충분히 얻은 네 엄마.


뉴스를 보니 광주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무너졌다는구나. 건물에 깔린 시내버스에는 열일곱 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중 아홉 명이 죽었다고 해. 우리에게는 보통날과 별반 다를 것 없던 어느 오후에 벌어진 일이야.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 버스가 출발하면서 뒷자리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주로 희생자가 되었다는 대목을 읽으며 생각했어.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빨리 출발하지. 아마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가족은 이렇게 후회하고 있을지도 몰라. 버스에 태우지 말고 직접 데려다 줄걸. 오늘 하루만 집에 있으라고 잡아둘걸.


꼭 뉴스가 아니더라도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들은 꽤 가까운 곳에서 꽤 자주 일어난단다. 누구보다 건강하시던 네 외할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암환자가 되실 거라고도 우리 가족은 상상조차 못 했어. 2주 전 퇴근길 외할아버지의 암 진단 소식을 들은 순간 하늘이 빙그르르 돌더라. 며칠이 지나고는 여태 나를 둘러싼 삶이 아주 평화롭게 흘러왔다는 걸 깨달았고,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난 지금은 단정할 수 있는 미래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을 해. 주위에서, 뉴스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일이라는 거야.


너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걸 주고 싶은 이 엄마는,

내 앞에 닥칠지 모르는 어떤 일보다 그 일로 인해 네 앞에 닥칠지 모르는 미래가 더 무섭단다.

내게 너희 외할머니는 모든 걸 아낌없이 주시기도 했지만 주는 것이 없을 때조차 엄마의 마음을 단단하게 채워주는 존재였거든. 네게서 그런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무슨 일이 생기면 앞뒤 재지 않고 가장 먼저 달려가 네 편이 되어줄 한 사람이 세상에 없는 것이.


친구와 다툰 날, 남자친구와 이별한 날, 첫 생리를 시작한 날, 아픈 날, 면접에서 떨어진 날, 모두에게 있는 것이 너에게만 없는 것 같아 속상한 날, 아무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는 날. 네게 닥칠지 모르는 수많은 어느 날을 위해 조금 이른 편지를 써두려 해. 평생 네게 읽히지 않았으면 하는 편지야. 늘 네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렇지 않은 날에도 네 옆에 늘 엄마가, 혹은 너를 아끼는 다른 누군가가 옆에 있어준다면 해묵은 편지는 필요 없을 테니까.


네 아빠는 닥치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그래. 괜히 보험증권도 들춰보고 통장에 돈이 얼마나 들어있어야 할까 계산기도 두드려보게 된단다. 우습지?

훗날 미리 쓴 편지들이 엄마의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모르겠다. 교복을 입은 네가 눈을 똑바로 뜨고 '엄마가 편지에다 썼잖아, 등수 같은 건 인생에서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며 대들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 순간도 엄마는 행복할 거야.

우리가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의 요건은 다 갖춘 것임을

미래를 단정할 수 없는 오늘의 엄마는 알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