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이 곧 불행은 아니야

불운만 반복된다고 좌절하는 너에게

by 귤예지

엄마는 요즘 퇴근이 빨라졌어. 밤 8시를 넘겨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지난주부터는 6시에 딱 맞춰 나오기도 하니까. 게다가 여름이 가까워지니 해가 길어져서 저녁시간이 더 여유로워졌어.

환한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길에 핀 꽃이나 풀에도 눈이 가는데, 클로버가 꽤 많이 보이더라고. 어릴 적 네 외할머니랑 쭈그리고 앉아 네잎클로버를 고르던 기억에 나도 모르게 유심히 살피고 있었나 봐. 네잎클로버 하나가 눈에 딱 들어왔지 뭐야.

손에 들고 있던 가방과 휴대폰을 길바닥에 내려두고 혹여나 네잎클로버가 다칠세라 조심조심 줄기를 꺾었어. 작고 약한 이파리 네 개를 흔드는 바람이 야속할 만큼 소중했단다. 그런데 몸을 일으키기 직전, 바로 옆에서 또 하나를 발견한 거야. 마음먹고 찾아도 보이지 않던 네잎클로버를 두 개씩이나 발견하다니, 정말 어마어마한 행운이잖아!


더 놀라운 일이 뭔지 아니? 그 한 주 동안 네잎클로버를 두 개나 더 찾았다는 거야. 심지어 둘째 날 찾은 네잎클로버는 크기도 크고 잎도 더 단단하게 붙어있었어. 역시나 기쁘고 반가웠지만 처음만큼은 아니었단다. 첫째 날은 바람에 다칠까 봐 양손으로 감싸고 집까지 모셔와 사진을 찍어 가족들에게 보내고 가장 아끼는 책에 넣어두었거든. 그런데 둘째 날의 네잎클로버는 어떻게 가지고 왔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 네 아빠에게 선물이라고 주었더니 책상 위에 대충 얹어두었더라. 네 번째 네잎클로버를 찾았을 때는 기쁨에 조금 더 무뎌져 있었어.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큰 행운이 오려고 네 개씩이나 찾았을까 괜한 기대는 되었지.


그런데 말이야. 마지막 네잎클로버를 찾고도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 그렇다 할 행운은 없어. 괜히 안 사던 복권까지 샀다가 5천 원만 날렸지 뭐야.

행운은커녕 네 외할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았고, 부디 초기였으면 하고 바랐는데 암세포의 크기와 위치가 나빠 바로는 수술도 어렵다는 거야. 검사 중에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소견이 나왔을 때는 정말이지 하늘이 원망스러웠어. 이렇게 불운을 쏘아줄 거면 적어도 네잎클로버 따위로 기대를 주지는 말았어야지.

그런데 엊그제, 정밀검사에서 전이된 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지 뭐니. 휴, 네잎클로버 하나는 이렇게 사용된 것 같아.


가족이 아픈 건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어. 엄마를 비롯해 온 가족이 한순간 불행해졌지. 하지만 그 불행한 상태가 내내 지속되지는 않고 거기서부터 다시 행운을 바라는 거야. 부디, 부디 초기였으면 하고. 근데 그 또한 아니더란 말이지. 외할아버지는 아마 꽤 길고 힘든 치료과정을 지난 후에야 수술대 위에 올라가실 수 있을 거야. 그것만으로도 끔찍하지만 거기서부터 또 우리는 행운을 바라게 되더라. 암세포가 부디 다른 장기로는 전이되지 않았으면 하고. 다행히 여기서 불운이 멈춰주었네.

이걸 행운이라 불러도 될까? 모두가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던 이전과 비교하면 상황이 아주 많이 나빠졌는데도? 그래도 엄마는 행운이라고 여기기로 했어. 더 최악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바닥이 불행이고 천장이 행복인 방에 사는 것 같아. 힘을 빼고 있으면 우주인들처럼 행복과 불행 사이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는 거야. 천장에 가까워질수록 더 이상 올라갈 공간이 없으니 아래로 떠밀릴 가능성이 높고,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더 이상 내려갈 공간이 없으니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겠지. 아무리 행운이 겹쳐도 천장을 뚫을 수는 없고 아무리 불운이 겹쳐도 바닥을 뚫지는 못하는 거야.

행운은 순간의 기쁨일 수 있지만 내내 지속되는 행복이기는 어려워. 어차피 천장의 높이는 정해져 있으니까. 불운도 마찬가지야. '불행한 일'이 곧 불행은 아니라는 거지. 게다가 사람에게는 내성이라는 게 있거든. 불운이 겹쳐 바닥에만 내내 붙어있던 사람은 작은 행운으로도 부웅 떠오를 수 있어.


네게는 행운만 따랐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불운만, 혹은 행운만 따를 수는 없어. 멀리서 보면 틀린 말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정말 그래. 잠깐 보면 불공평해 보이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정말 공평해.

불운이 반복되는 순간이 지금이라면 네가 미래에 쓸 행운은 어딘가에 차곡차곡 적립되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불운 따위가 감히 널 바닥으로 끌어내리지 못하게 몸에서 힘을 빼고 기다려. 불운의 고리를 끊어줄, 곧 네게 올 작은 행운을.






인생에서 행복과 불행의 무게는 똑같거든.
신은 그런 식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정확히 안배해 주셔.
넌 어렸을 때 불행했으니까,
앞으로 반드시 그 불행의 크기만큼 행복해질 거다.


- 아사다 지로, ‘칼에 지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