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 하는 짓이 얼마나 귀여운지 아니? 덕분에 네 아빠와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 내어 웃는단다.
아직 키가 1미터도 안 되는 네가 식탁의자를 끌어다 정수기 물을 컵에 받아 마시기도 하고, 어디서 리모컨을 찾아서는 에어컨을 켜기도 해. 우는 널 달래려고 두어 번 뽀로로가 나오는 티비를 보여줬더니 이제는 일부러 우는 시늉을 하며 곁눈질로 티비를 보는 거야. 우리가 먹는 건 그게 뭐든 한번 집어먹고 싶어 하고 우리 중 하나가 밖에 나가려는 낌새를 보이면 현관으로 쪼르르 달려 나가 신발을 찾아 신는 깜찍한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네가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정말 감사해.
지금은 놀이터에서 그네를 능숙하게 타는 언니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어른들이 하는 건 뭐든 다 따라 하고 싶어 하는 너지만 언젠가는 그 언니들보다 더 능숙하게 그네를 타고 더 이상 어른을 흉내 내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겠지. 침대에 가만히 누워 네 태동을 느껴보려 숨죽이던 밤이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이만큼 자란 걸 보면, 그 언젠가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처럼 여겨져. 몸이 작던 어린 시절에는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지만 나이를 먹고 다리가 길어질수록 점점 빨라지더라고. 시간이라는 게 그렇더라. 나이를 먹을수록 가속도가 붙어.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중에서도 기억에 새겨지는 날들이 있어. 엄마는 열아홉과 스물아홉의 어느 날을 기억해.
열아홉 겨울에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어. 수능까지 마쳤겠다, 이제 곧 교복을 벗고 어른이 된다는 기쁨에 취해있었지. 그해 마지막 날 자정을 앞두고는 친구들과 술집이 즐비한 거리에 모여있었어. 손에는 저마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다는 증거가 되어줄 신분증을 든 채로.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무섭게 손님이 가장 북적이는 가게 문을 열고 당당히 들어서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단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은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있었지.
연애의 쓴맛과 진로에 대한 고민, 메마른 통장과 하고 싶은 많은 것들 사이에서 갈등도 있었지만, 이십 대는 정말이지 그랬단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반짝반짝 빛났지.
이십 대가 너무 빛나서였을까. 서른을 앞두고 맞이한 스물아홉의 겨울은 열아홉 겨울과는 사뭇 달랐어.
엄마는 스물아홉의 마지막 밤을 부산에 있는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냈는데, 마침 그날따라 손님들이 모두 이십 대 초중반의 젊은 친구들이었던 거야.몇 시간 후면 서른이 되는 엄마를 모두들 동정하듯 바라보고 엄마도 서른이라는 나이를 마지못해 받아들인다는 태도로 체념한 듯 그 밤을 보냈어. 삼십 대가 되면 즐거운 일은 다시 없을 것 같았거든. 더 이상 실수를 해서도 안되고, 가슴 뛰는 사랑도 없고, 엄마를 예쁘게 봐주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았어. 당시 즐겨보던 드라마 주인공들도 하나같이 이십 대였거든. 서른이 되는 순간부터는 주무대에서 밀려나 평생 조연으로만 살게 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나 봐.
그로부터 6년이 더 지나 엄마는 올해 서른여섯이되었어. 스물아홉 그 밤에 걱정한 것처럼 직장에서 실수를 하는 것이 부끄러운 직급이 되었고 가슴 뛰는 사랑 대신 현실적인 고민을 네 아빠와 나누며 살아. 친구들과 분위기 좋은 술집을 찾아다니며 밤을 새우거나 미니스커트에 어울리는 굽 높은 구두를 고르는 건 엄마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지 오래란다.
이런 엄마, 정말로 인생의 주무대에서 밀려난 것처럼보이니? 전성기를 떠나보낸 것 같아 안타깝니?
아니.다행히도 그렇지는 않단다. 서른여섯 엄마도 이십 대의 엄마와 마찬가지로 지금 존재하는 이곳이 인생의 주무대이며 바로 오늘이 전성기라고 생각하고 살아.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래.
서로를 온전히 알고 평생을 약속한 네 아빠와목숨보다 귀한 너를 만나 하는 사랑이 이십 대의 철없던 사랑보다 훨씬 가치 있고 소중하게 여겨져. 어려서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소홀했던 엄마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을 본격적으로 깨닫게 된 것도 삼십 대에 들어서야. 엄마의 다이어리에는 하고 싶은 일들이 빼곡하단다. 여전히 꿈을 꾸고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살아.
올해 마흔이 된 엄마의 입사동기는 창업이라는 꿈을 펼치기 위해 지난달 회사를 관두었고,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 하나도 잘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몇 달 전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어. 네 할머니는 평생 주부로 사시다가 예순이 지나서 새로운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하셨단다. (작년에는 졸업도 하셨어.) 이만하면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식상한 멘트는 꺼내지 않아도 되겠지?
물론 나이가 들면서 잃는 것도 있지. 예를 들면 반짝이는 외모 같은 것들.
하지만 십 대나 이십 대에 걱정하는 것처럼 외모의 변화가 큰 절망을 안겨주지는 않는단다. 엄마는 벌써 흰 머리카락이 꽤 눈에 띄고 눈가에는 주름도 몇 가닥 졌지만 그래도 거울을 볼 때면 엄마 스스로가 예쁘다고 생각해. 피부에 윤이 나고 이목구비가 예뻐서가 아니라, 엄마가 가장 오래 알아온 엄마 자신이니까 예쁘게 봐주는 거야. 엄마의 주무대가 '여기'니까 여기서 즐거움을 찾는 거야. 엄마가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 지금 행복하기로 마음먹는 거야. 그러면 이십 대든 삼십 대든 나이에 관계없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어.
새로운 도시를 여행하는 것처럼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경험하는 것도 엄청 기대되는 일이야. 그 도시에서만 갈 수 있는 맛집처럼, 어느 때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전에는 미처 몰랐던 재미들이 있거든.
어제는 아빠의 여름옷을 사러 가는 차 안에서 엄마가 물었어.
"만약 이십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어?"
"아니. 왜? 난 지금이 좋은데."
엄마도 마찬가지야. 하루쯤 이십 대의 어느 날로 돌아가 봐도 재미있겠지만 내내 이십대로 살고 싶지는 않단다. 그때는 몰랐던 소중한 일상이 지금 이곳에 있기 때문이야.
네가 이십 대, 삼십 대가 될 무렵이면 나는 오십 대, 육십 대가 되어있겠다. 사십 대와 오십 대를 경험한 미래의 엄마는 네게 해줄 수 있는 말도 지금보다 훨씬 많겠지? 그때도 나이 듦에 대해서는 지금과 같이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는 오늘도 즐겁게 살게. 지루할 틈 없이 알차게 살아볼게!
모든 노인들이 고백하는 큰 비밀 중 하나는 70세, 80세가 되도록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