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링 의류에 ‘정교하다’는 표현은 어딘지 어색하다.
왜냐하면 '정교함'이라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외부에서 질서를 주입하는 공학적·기계적 산물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오차 없는 구조적 완결성을 찬양하는 그 말은, 사람의 피부를 연장한 유기체적 존재인 옷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당신 참 정교하게 생겼군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어색함은, 생명체가 우연과 불규칙성 위에서 스스로 형성되는 존재이기 떄문이다.
즉, 그 질서는 외부에서 주어진 설계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존재다.
정교함이 의도된 설계와 인위적 통제를 통해 알던 답에 도달하려다면, 움은 인체의 예측 불가능한 불균형과 불완전함과 조화를 통해 자연스러움에 이르려 한다.
물론 옷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다. 대량 생산되는 기성복은 반복 가능한 공정과 계산된 패턴 속에서 ‘정교함’을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테일러링은 다르다.
테일러링은 다수를 향한 효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체형이라는 유기체의 불확실성을 완화시키는 작업이다.
또한, 정교함이 아닌,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재단사는 단지 그 상황에 따른 최소한의 질서를 부여할 뿐, 옷은 인체의 불완전함과 스스로 조화해야 한다.
따라서, 추구하는 것은 기계적 완벽함이 아니라, 불확실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적 완성이다.
그것이 바로 테일러링의 '움'이며, 정교함을 담지 못하는 이유다.
유기체를 흉내내는 기술이기에, 정교함을 추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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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움'은 미학이라는 말을 쓰기 싫어 만들어낸 신조어다.
'움’은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동일시하며, 그 자연스러움의 감각적 표현이다.
움은 자연스러'움'에서 따왔다. 그리고 움직임의 움이기도 하다.
싹이 움트듯, 생명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불균형 속에서 자라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의 조화..그것이 ‘움’이다.
구체적으론, 동식물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오는 감정이나.
옷과 신체가 부딪히면서 서로의 형태를 찾아가는 순간도 '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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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들 태어나서 처음 했던 말이지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