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를 읊조림

by NOSTRAPARTENOPEA

작가가 너무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글쓰기 공부를 한다.

무딘 글을 쓰려고 오늘도 날을 눕히지만 여전히 서있다.


---


논리적으로 글을 쓴다는 거는, 글쓰기 책에서 확인한 바로는, 하나의 강력한 주장과 이를 뒷받침 하는 구체적인 근거들의 합이다.


그러다보면, 주장을 뾰족하게 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반하는 증거들은 제거하고 적당히 듣기 좋은 근거들만 추려서 글을 매듭짓는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찾은 반대의견에 설득되더라도, 말하고자 하는 주장이 약해질까 지워버린다.


그렇게 명쾌한 주장이담긴 뾰족한 글이 나오지만, 속으로는 어딘가 찜찜함이 남는다.


---


나는 테일러링에 관한 글을 자주 쓰는데 무엇하나 100퍼센트 후련한 주장을 펼치기 어렵다.


막말로, 인간사 문제중 과연 절대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다 양면성이 있고 진리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얼추 납득이 가는 결론은, 대개 양극단이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다만 살짝 어느 쪽으로든 향했겠다. 정중앙도 없을테니.


하지만 이 양면적인 부분을 다 서술하려면 여지없이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는 말이 나온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태도는 논리적이지 못한 것으로 치부된다.


억울하게도 명쾌할 수 없는 문제에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깊이의 부재로 오해되곤 한다


---


사람은 일관된 입장을 보여아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은 어느정도 모순적인 부분을 필히 품는다고 생각한다. 어느정도만 말이다.

몸 컨디션이나 감정에 의해 종종 갈팡질팡하기도 하고, 처한 상황에 따라 태도가 흔들리기도 한다.

어제의 확신이 오늘의 의심이 되기도 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도 그 시기 분위기나 다수라고 착각하게 하는 정보들에 영향받기도 한다.



---


그 정보들이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인터넷 공간 댓글에 익명성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굳이 필요하다면, 익명성을 통한 발언의 자유보다,

개인 발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보호적인 장치가 필요한게 아닐까.


엄청난 비약이고 허구인 것을 알지만,

급 다크나이트 오프닝 장면이 떠오른다.

은행을 터는 과정에서, 동료가 동료를 제거하는데 묵인한다.

그 이유는 그러할수록 자신의 몫이 커지니까.


조커의 그러한 계획이 가능한 것에는

인센티브 그리고, 광대 마스크라고 생각한다.


마스크 아래선 수치심도 도덕도 없어보인다.


---


그러고 보면, 중간없이 대놓고 극단으로 몰리는 장르도 있다.

개인 혹은 집단의 존속에 다수의 지지가 필수적인 분야가 그러하다 싶다.


톡까놓고 보면 서로간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나는 옳고 쟤는 틀리다는 식의 배타적인 확신만 있어보인다. 이러한 제로섬게임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화해도 없고 공존도 평화도 없다.

마치 각각 신체 부위들이 몸에 들어오는 영양소를 두고 서로 더 많이 가져가려고 싸우는 것 같다. 손바닥에만 영양소가 몰려도, 그렇다고 뇌에만 영양소가 몰려도 그 어느하나 건강한 인간이 될 수 없음에도 말이다.



---


그러니까.. 뭔가를 주장할때,

단순히 한쪽에 매몰된 명쾌함 보다는, 사물이 지닌 본연의 복잡성을 담아내길 바란다.


명쾌할 수 없는 세상을 억지로 선명하게 만드는 것이 실력이 아니라 그 과정에 진실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는 일종의 폭력일 수 있음을 염두해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시대 한정일지도 모르지만,

흑과 백사이의 회색지대,

그 중간의 애매하면서도 모호함 속 양면을 집요하게 고민한 과정이 담긴 답답한 주장이,

후련한 주장보다 더 큰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이 되길 바래본다.




---



한동안 그레이 수트만 팔아보겠다는 출사표를 던져보려다 오늘도 꾹 참아본다.


작가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