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신사리’ 기증받아 적멸보궁으로 다시 태어난 대견사

스리랑카 정부-동화사 노력의 결실

by 예지리파파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수험생을 둔 부모들과 가족들은 시험일 100일 전부터, 전국 사찰 곳곳에서 좋은 대학에 붙을 수 있도록 기도를 시작한다. 불교에서는 백일기도라고 한다. 심지어 유명 사찰에는 지역을 불문하고 많은 부모들이 찾아, 절을 할 공간이 부족한 곳도 있다. 수능생을 둔 불심 깊은 부모에게 사찰은 절대적인 기도 공간이다. 하지만 종교와 관계없이 경치가 좋은 사찰이나, SNS에 사진 찍어 올리기 좋은 사찰이면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사찰 안 어느 한 곳이 핫스폿이면 줄서기는 일쑤다.


하늘에 맞닿은 적멸보궁-北 봉정, 南 대견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높은 사찰은 해발 1,244m 설악산 봉정암이다. 해발 1,470m 태백산 망경사, 해발 1,450m 지리산 법계사 다음이다. 봉정암은 내설악 백담사 암자로 5대 적멸보궁에 속한다. 적멸보궁은 부처님 몸에서 나온 사리인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진신사리가 곧 부처님이므로 대웅전에 따로 부처님을 모시지 않는다.


4조_손성준_3번_대견사 진신사리탑.jpg 대구 현풍읍 대견사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진신사리탑.


우리나라에 진신사리를 처음 가져온 스님은 신라시대 자장율사로 전해진다. 당나라 청량산에서 기도를 올리던 어느 날이었다. 문수보살로 현신한 석가모니로부터 가사, 진신사리 100여 과를 받았다. 이를 모시고 돌아와 전국 다섯 군데 사찰에 봉안하는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 나머지 한 군데가 설악산 봉정암이다.


봉정암에 오르는 일이야말로 제대로 된 등산이다. 로프를 잡고 오르기는 기본이다. 한 걸음으로 오를 수 없는 높은 계단을 오르려면, 부처님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듯이 누구나 두 손, 두 발을 다 사용해야 오를 수 있다. 그러므로 봉정암 가는 길이 곧 수행이다.


봉정암에는 오층석탑인 불뇌사리보탑이 있다. 법당 외 많은 사람들이 찾아 기도하는 곳이다. 또 다른 매력은 석탑 뒤로 펼쳐지는 내설악 풍경이 일품이다. 어쩌면 봉정암 하면 적멸보궁보다 오층석탑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북쪽에 봉정암이 있다면 남쪽에는 절대 뒤지지 않는 대구 대견사가 있다. 대구는 팔공산과 더불어 영산(靈山)으로 불리며 참꽃군락지로 유명한 비슬산이 있다.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대견사는 비슬산 해발 950m에 있다. 약 1,000m에 있어 절 마당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달성군 유가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4조_손성준_5번_대견사 전경.jpg 비슬산 해발 950m에 위치한 대견사 전경.


봉정암이 중국에서 모셔 온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면, 대견사는 스리랑카에서 모셔 온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이다. 2013년 11월 동화사가 스리랑카 쿠루쿠데 사원에 모시던 진신사리 1과를 기증받아 대견사로 이운한 것이다. 중국에서 모셔 온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이 5대 적멸보궁이다. 그 외에 단양 구인사, 서울 보명사 등과 같이 인도, 스리랑카에서 모셔 온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이 국내 흔히 있다.


4조_손성준_2번_대견보궁에서 본 진신사리탑.jpg 대견사 대웅보전에서 본 진신사리탑.


봉정암과 마찬가지로 대견사에도 절벽 위에 석탑이 하나 있다. 대견사 삼층석탑은 봉정암 오층석탑처럼 절벽을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삼층석탑을 세웠다. 삼층석탑은 남쪽 절벽 아래에 허물어져 흩어져 있었다. 흩어진 석탑 일부를 달성군에서 1988년도에 대견사보다 먼저 복원하여 지금 삼층석탑이 된 것이다. 대견사 삼층석탑은 봉점암 오층석탑과는 다르게 기도하는 곳보다는 사진 찍는 핫스폿으로 더 주목을 받는다.


4조_손성준_4번_대견사 삼층석탑3.jpg 대견사 핫스폿인 대견사 삼층석탑.


반복된 폐허, 일제강점기 강제 폐사된 ‘비운’을 겪은 사찰


대견사는 신라 현덕왕 때 보당암으로 창건됐고 조선 세종 때 대견사로 개칭됐다. 고려 말 몽골 침입으로 한 차례 폐허를 겪은 사찰을 1371년 고려 공민왕 때 중창했다. 다시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폐허가 됐다. 광해 3년인 1611년과 인조 11년인 1636년 두 차례에 걸쳐 크게 중창됐다. 그러나 18세기 들면서 다시 폐허가 됐다. 고종 37년 1900년에 영친왕(1897~1970) 즉위를 축하하기 위하여 이재인이 중창했다. 순종 2년 1908년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순종 3년 1909년 다시 폐허화 됐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일제강점기에 강제 폐사가 되기도 했다. 1917년 6월 조선총독부는 대견사를 강제 폐사시켰다. 이유는 대견사 대웅전이 일본 대마도를 보고 있어, 대마도를 조선으로 끌어당기고 일본 기를 꺾는다고 여겨 강제 폐사시켰다. 조선총독부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일환으로 전국 각지 산 정상에 쇠말뚝을 박은 것과 같다. 폐사된 절은 터만 남아 오랫동안 ‘대견사지’라고 불렀다. 중창한 현재 대웅전은 일본보다는 남서쪽을 바라보고 있어 예전 대웅전과는 방향이 다르다.


4조_손성준_1번_대견사 대견보궁.jpg 남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대견사 대웅보전.


그렇게 100년 가까이 방치된 대견사지는 대한불교조계종 동화사와 달성군청이 복원했다. 대견사 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이다. 2012년 1월 20일 동화사와 달성군이 비슬산 관광 명소화 사업과 병행해서 추진했다. 당시 동화사 주지 성문 스님은 “대견사 중창은 일개 사찰을 건립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사된 민족 문화유산을 재현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 뜻깊은 일로 평가될 것”이라고 했다. 2년간 공사를 거쳐 2014년 3월 1일 정식 사찰로 재등록했다. 이 무렵 스리랑카에서 동화사로 이운된 진신사리가 대견사 적멸보궁에 모셔졌다. 스리랑카 정부 기증으로 대견사는 적멸보궁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부처님 미소를 짓게 하는 대규모 참꽃군락지


전국이 봄이 되면 꽃축제로 들썩인다. 대구도 참꽃군락지를 대표해 매년 4월 ‘비슬산 참꽃문화제’가 열린다. 참꽃군락지는 비슬산 해발 1,083m에 있으며, 30만 평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개화가 절정에 이르면 분홍빛 경관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공교롭게도 대견사 대웅전 바로 뒤편에 참꽃군락지가 자리 잡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과거는 잊고 참꽃으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꽃은 오래전부터 불교와 함께했다. 어느 절이든 대웅전에는 꽃이 심어진 화분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불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연꽃이다. 사찰 곳곳에 연꽃을 형상화하거나 돌 또는 그림에 새겨 넣은 곳을 쉽게 볼 수 있다. 연꽃은 수행승을 비유할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봉오리는 사람이 두 손을 모은 모습을 닮기도 한다. 예전부터 꽃은 공양물 가운데 하나로써 부처님 전에 올려졌다. 꽃과 사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4조_손성준_6번_비슬산 참꽃군락지.jpg 현풍 비슬산 참꽃군락지 전경.


비슬산 참꽃문화제는 1997년 5월 4일 제1회 행사를 시작으로 해를 거듭해, 2024년 제28회 행사를 성황리에 마쳤다. 매년 10만 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지역 대표 축제다. 참꽃군락지를 보고 있으면 눈을 떼지 못하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다. 한참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 내가 짓고 있는 미소가 바로 부처님 미소다.




❘ 비슬산 여행 정보 ❘


비슬산투어관광버스 매표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휴양림길 236 / 053-659-4442~3


비슬산투어관광버스 또는 도보 이용 시 대견사 출입 가능

자가용 출입금지

5.8km / 편도 20분 소요 / 매주 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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