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런 눈은 처음 본 시골쥐
지난 2024년 12월 21일은 단양 지역에 비나 눈이 예보됐다. 오랜만에 여행인데 날씨가 저 모양이다. 미리 받아 놓은 날이라 일기예보를 확인하고도 취소하기는 무리였다. 사실 무리함을 앞세워 취소하지 않고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구미에서 출발해 예천을 지날 때쯤이었다. 눈이 본격적으로 날리는 것이 지난 일기예보가 떠올랐다.
10여 분을 더 달려 죽령터널에 다다를 때쯤 눈송이가 본격적으로 커지고 앞 유리를 향해 마구잡이로 돌진하고 있었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미끄러지면 어떡하지, 미끄러지면 몇 바퀴 돌고 멈추지, 사고가 나도 혼자 나고 말아야 하는데……와 같이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몹쓸 망상가 하나가 타고 있었다. 빙판 내리막 골목길을 걸을 때처럼 유난히 조심스럽게 가고 있었다. 눈길에 한 번 고생한 바가 있어 더 조심했다. 다시 한번 죽령이 고지대임을 실감했다.
죽령은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잇는 고개이며 해발 699m 고지대다. 해발 700고지를 차량으로 넘나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양에서 만들어지는 시멘트를 아래 지방으로 옮기려면 죽령을 넘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 수십 톤 무게를 가진 육중한 트럭이 700고지를 넘으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고개를 넘어 내려오다 브레이크 고장으로 사고도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개선책으로 터널을 뚫었다.
죽령터널은 5년여 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01년 4.5km로 완공했고, 완공 당시 국내 최장터널이었다. 국내 최고도 도로가 해발 1,100m 제주 1100도로임을 생각하면 무시하지 못할 고도이다. 죽령터널 상행선 기준으로 입구는 경북 영주이고 출구는 충북 단양이 행정구역이다. 강원 인제군과 양양군을 잇는 인제양양터널, 경남 밀양시와 양산시를 잇는 재약산 터널 등과 같이 두 행정구역을 잇는 터널이 흔히 있다. 고지대 터널, 해저터널, 연륙교 등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토목기술은 세계 수준급임을 알 수 있다. 진취적인 사고와 행동, 한국인 특유의 불굴 정신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혼이 담긴 터널을 눈을 맞으며 넘었다.
나를 기다리는 조원들이 단양역에 곧 도착한다. 그들을 픽업하기 위해서 시간을 맞춰야 한다. 이런 날씨에 연장자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갈수록 커지는 눈송이를 맞으며 열심히 달린 결과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남았다.
단양 IC를 나와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설경을 찍는 등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 여유는 보통 여유가 아니었다. 자랑질 섞인 눈 사진을 가족들에게 보내고, 뽀드득뽀드득 사운드를 들으려 힘줘 짓밟아도 봤다. 어디서 주워들었던 ‘수분이 많으면 눈이 잘 뭉쳐진다’가 떠올라, 눈 속 수분 체크도 해보려 두 손으로 뭉치고 비벼봤다. 마흔여덟에 동네 강아지마냥 그냥 신날 뿐이었다. 꼬리라도 있으면 분당 500회 속도로 흔들 기세였다. 그리고 조원들과 앞으로 함께할 10여 시간도 기대됐다.
신이 나기도 한 것이 아랫지방에서 눈 구경은 보통 일이 아니다. 지금 보는 눈도 아마 2년 만에 보는 눈이었을 것이다. 호사롭게 여유를 즐기는 동안 아이들에게 ‘아빠, 나도 데리고 가지!’라는 원망 섞인 답장이 왔다. 순간 미안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아빠도 즐기기 바빴으니 말이다.
단양역으로 이동하면서 겨울 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몇 가지 노래가 섞여 입에서 나오고 있는지 모른다. 시작은 ‘하얀겨울’인데 중간부터 ‘라스트크리스마스’로 바뀌었다. 몹쓸 망상가와 어설픈 편곡자가 하나 더 타고 있었다. 단양역에 도착해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차 밖으로 내려 담배를 한 대 피울 타이밍이지만, 금연한 지 10년이 훨씬 넘은지라 그냥 내려 단양 냄새를 한번 맡아봤다.
단양 냄새나 구미 냄새나 다를 게 없었고 코와 입으로 눈송이만 들어갔다. 알면서 뭐가 다를까 봐 그랬을까. 단양 IC에서 못다 즐긴 남은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 사이 조원들이 기차에서 내려 단양역 밖으로 나왔다. 수료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는 만남이었지만 반가웠다. 이유 없이 그냥 반가웠다. 일기예보를 뿌리치고 까지 출발한 만남인데 무슨 이유가 꼭 필요하겠나. 차 안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많이 내린 눈을 보며 같은 걱정을 했다. 버스로 도착하는 조원들을 픽업하기 위해 단양시외버스터미널로 출발했다.
시내는 역과 달리 건물과 차들이 많이 보였다. 단양역은 시루섬 건너산을 깎아, 산 중턱에 역사가 있다. 보통 역 주변에는 여행객들이 머무를 여관이나 끼니를 때울 식당 등이 즐비한데 단양역은 그런 시설들이 전혀 없다.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내와 같이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곳에 역이 없고, 산 중턱에 역이 있는 이유는 아마도, 역과 직선거리에 있는 시내 상류에 있는 매포읍 시멘트공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봤다.
시내로 들어서니 차들 위로 내린 눈은 슈거파우더를 뿌린 초코릿 쇼콜라처럼 보였다. 쇼콜라들이 끊이지 않고 연이어 갓길에 서 있었다. 터미널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더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들이부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그런 눈을 보고 어떻게 가만있을까, 차 밖으로 나가 모두 사진찍기 바빴다. 갑자기 많이 내린 눈은 곧 있을 만남과 한 해 마무리 여행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설국 사신들 행차라고 생각했다. 그사이 플랫폼으로 서울에서 출발한 첫 차가 뿌연 창을 보이며 들어왔다. 서울에서 오는 그들이 탄 버스가 틀림없다.
날씨가 저 모양이라고 했던 불만 섞인 표현은 취소했다. 도담삼봉에 도착했을 때 입이 방정이라는 게 절로 느껴졌다. 상당히 미안해졌다. 도담삼봉이 어떤 곳인가, 단양팔경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 아닌가. 으뜸 앞에서 저절로 겸손해지는 초라한 모습이 도담삼봉을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살면서 과연 이런 설경을 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봤다. 분명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도담삼봉은 있는 그대로도 입이 쩍 벌어지는데 그 위에 눈을 뿌려 놓았으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춥고 옷이 젖고, 신발이 젖어도 연예인 쳐다보듯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이구동성으로 날을 너무 잘 잡았다고 말했다. 분명 날을 잘 잡긴 잘 잡았다. 옆에 사진 찍고 있는 사람이 가기 전, 우리도 빨리 단체 사진을 찍으려 조심히 내려오는 일행들을 재촉했다. 나도 찍고, 너도 찍고, 다 같이 찍고 그렇게 한참을 사진찍기에 몰입 후 바로 앞 삼봉스토리관으로 체온을 올리려 들어갔다.
삼봉스토리관은 도담삼봉에 대해 간단한 소개와 내려오는 전설을 안내하고 있었다. 도담삼봉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 고향이기도 하고 호를 ‘삼봉’이라고 지을 정도로 애정을 가진 곳이라 전해진다. 삼봉 중 가운데 봉우리인 장군봉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정자는 1766(영조 42년) 단양군수 조정세가 ‘능영정’이라고 칭하며 지은 정자다. 수해로 여러 차례 유실된 후 1976년 콘크리트로 지은 ‘삼도정’이 지금 정자다. 우뚝 솟은 장군봉에 삼도정을 더한 것이 진정 화룡점정이 아닌가 생각했다.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어두움이 있어야 밝음이 있듯이 좌측 아들 봉과 우측 딸 봉 덕에 장군봉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과히 삼봉 정도전이 반할 만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지 않아도 삼봉스토리관은 내용이 많지 않아 금방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구인사와 온달관광단지 관람을 하기 전 이른 점심을 해결하려고 했다. 단양 유명 먹거리인 고기를 갈아 다시 뭉쳐 구운 떡갈비, 돼지갈비를 돌판에 올려 먹는 석갈비, 단양강이 있어 그런지 쏘가리매운탕이 유명하다. 석갈비 단짠단짠함을 맛보러 단양구경시장으로 가고 있다.
단짠함으로 속을 채운 일행은 다시 시장투어를 했다. 몇몇은 시장에서 살 리스트를 머릿속에 작성한 터라 시장으로 가야 했다. 난 석갈비를 먹는 내내 원망 섞인 답장을 보낸 아이들이 생각났다. 석갈비는 가위로 작게 잘라 아이들에게 주면 분명 맛있게 먹었을 맛이었다. 단양역에서 남은 여유를 부릴 때 짧게 느낀 미안함이 밥 먹는 내내 생각났다. 생각에 없던, 석갈비를 대체할 떡갈비를 리스트 첫 번째에 넣어 급하게 작성했다. 즉흥적인 리스트였다.
다행히 오면서 봐둔 떡갈비 집이 있었다. 식당 갈 때는 내리막이라 조심스러웠고, 시장 갈 때는 오르막이라 조심스러웠다. 어디서 넘어지면 덜 부끄러울지도 생각해 봤다. 내리막보다 오르막이 낫다고 판단했다. 엉덩방아 찧고 내려갈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르막 믿고 아이들과 떡갈비만 생각하면서 큰 보폭으로 선두를 걷고 있었다.
마음은 바쁜데 길이 엉망이었다. 도착한 떡갈비 집 떡갈비는 아이들과 와이프 입막음용이었다. 입막음은 뭐든 하나로는 못 막는다. 최소 둘은 돼야 된다. 하나를 들고 가면 분명 “이걸로 누구 입에 풀칠하는데!”라고 할 게 뻔하다. 이게 바로 주고 욕먹는 경우다. 하필 토요일에 눈이 와서 혼자 눈 구경 실컷 하고, 토요일을 하루 종일 혼자 놀다 왔는데, 빈손이나 뭐든 하나만 들고 왔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두 손 가득 들고 가고 현관을 들어설 때는 무거워서 비닐 끈이 자꾸 손가락을 조인다고 엄살을 부리면서 들어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일요일이 피곤해진다. 떡갈비 봉지를 손에 넣은 뒤 하루 일정 중 구경시장을 넣은 내가 기특했다.
단양에는 단양강을 따라 소백산이 있다. 소백산은 해발이 높아 곳곳에 활공장이 있다. 활공장은 낙하산을 매고 도약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경사지다. 패러글라이딩 동호회원들에게 단양은 성지로 불린다. 해발 550m, 그곳에 카페가 있다. 그 카페에 가려고 두 차례나 전화했다. 폭설로 인해 영업은 하는지, 올라가는 길은 제설이 됐는지 확인차였다. 첫 번째 통화에서는 올라오기 힘들다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제발 된다고 해주길 바라면서 두 번째 전화했다. 대답은 오다가 안 되면 돌아가라고 부쩍 움츠러진 듯한 목소리로 한다.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니다. 그냥 시원하게 ‘오세요’를 못 한 미안함이었다. 오가다가 일어날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가 있어 쉽게 된다고 말 못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진취적인 사고와 행동, 죽령터널을 뚫었던 불굴 정신을 가진 한국인 아닌가. 출발했다. 해발에서 느끼듯이 경사가 상당했다. 그런데 카페 직원 말과는 달리 제설이 상당히 잘 되어있었다.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아스팔트 도로 아래에 깔린 열선을 옮겨놓은 듯 너무 깨끗했다. 도착하니 차들도 많았고 사람도 많았다. 모두 불굴 정신을 가진 한국인들이었다. 카페 마당 끝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슈가파우더를 분당채에 곱게 쳐 놓은 단양 시내가 보였다. 카페에 올라오길 잘했고, 역시 날을 잘 잡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실내로 들어갔다.
따뜻한 커피를 받아 들고 2층으로 가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안부도 묻고, 서로 내년에 할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 있어 의논도 하고, 사진에 진심인 한 분은 안팎으로 열심히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하느라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카페에서 나와 활공장 입구에 서서 단체 사진도 찍었다. 이 순간만큼 진심으로 찍히고 싶었다. 올해 마지막 단체 사진이 될 테니까 말이다.
오른 만큼 다시 내려가 일정대로 천태종 본산인 구인사로 향했다. 구인사는 입구 주차장에서부터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왕복시간은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고 했다. 셔틀버스가 운행 중이긴 하나 입구 주차장에서 얼마 못 가 정차해 다시 걸어 올라가야 했다. 고민 끝에 가지 않기로 했다. 지금 그렇게라도 해서 올라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온달관광지라는 스페어 카드가 있었다. 온달관광지는 온달동굴, 온달전시관, 드라마세트장 등 테마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드라마세트장만 구경하고 다시 단양 시내로 돌아가기로 했다. 상경하는 분들 기차 시간과 저녁 식사 시간을 챙기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커피도 한잔할 시간을 만들기 위한 명분이었다.
온달관광지 드라마세트장은 중국 수-당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일반적으로 보는 조선 궁궐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출입문과 창문을 보면 반듯반듯한 네모 문보다 동그란 모양 문이 많이 보인다. 행각을 보면 경복궁 행각 처마는 기와 아래 단청이 올려진 보가 마감이라면 드라마세트장 궁궐 행각에는 단청이 올려진 보 아래 ‘버금 아’ 모양 장식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단청 무늬도 확연히 달랐다. 우리 단청이 조금 더 화려한 느낌이 있었다. 이런 것만 봐도 우리나라 궁궐은 아니었다. 살다가 오늘 같은 눈도 처음 봤지만, 이런 궁궐도 처음 봤다.
날씨 탓인지 기분 탓인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곧 헤어질 시간과도 관계가 있었다. 아침에 있던 여유는 온달동굴로 꺼져버렸는지 온데간데없어졌다. 오늘 헤어져야 다음에 다시 볼 것을 알고 있음에도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어린아이가 망상가, 어설픈 편곡가와 같이 있었다. 야외 세트장은 사람도 보기 힘들었지만 따뜻하게 몸을 녹인 공간도 없었다. 따뜻한 히터를 틀어 놓은 차가 생각났다. 잠깐 진취적이었던 나는 점점 출구로 가고 있었다. 단양은 한 해를 정리하는 여행이었다.
퇴직과 함께 조용해진 일과는 여행작가학교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그 안에서 좋은 인연이 되어준 그들과 있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느껴졌다. 다음 만남은 어디로 갈지, 누구랑 갈지 설레는 마음을 헤어지기 전에 마신 따듯한 커피 한잔에 넣어 마음 깊숙한 곳에 넣어뒀다.